개헌안 처리 무산으로, 농업부문 공익적 가치 ‘수포’로

최근 대통령 개헌안이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끝내 무산된 것과 관련, 이번 개헌안에 담겼던 농업의 공익적 가치는 ‘농민헌법’의 독립적 존재 형식으로 지속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지금 헌법에 명시돼 있는 ‘종합개발’ ‘가격안정’ 등, 농업을 단순한 산업이나 경제논리만으로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은 농업계에서 미리 삭제해서 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24일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으나 의결정족수 미달로 처리되지 못했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4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된 것이다. 공고후 60일 이내에 표결처리해야 하는 규정상 이번 개헌안은 부활이 불가능하게 됐고, 개헌논의는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게 됐다.

이와관련 농업계는 일제히 실망스럽다는 입장과 함께, 좌초된 농민헌법 조항에 대해 책임요구를 주장하고 나섰다. 특히 개헌안 농업부문에서 무엇보다 높게 평가받던 식량의 안정적 공급, 농업의 공익적 가치, 농업의 지속성 등을 담은 내용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음 개헌안에 승계해야 한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한농연은 24일 성명을 통해 “1천150만명이 넘는 서명을 통해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 반영을 간절히 염원했던 농업계와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가 허망하게 좌절됐다”면서 “국회는 농업·농촌의 공익적·다원적 가치를 반영한 진정한 헌법 개정의 동력을 되살릴 수 있게끔, 진일보된 헌법 개정안의 마련과 정치협상에 적극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회 여야, 정부 등 정치적 분석과 이해관계를 떠나 현행 헌법의 농업분야 독소조항은 먼저정리하고 대안책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게 농업계 주장이다. 일례로 헌법 123조 제4항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농업과 식량의 문제를 철저하게 상품으로서의 성격을 고착화시키는 개념정립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농업분야를 다룬, 헌법 제123조 위치 자체가 경제의 장에 묶여 있다는 것. 그 보호의 대상 또한 식량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수급균형의 유통구조 틀에 한정돼 있는 것도 고쳐야 할 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법학계 한 전문가는 “현정부 들어 개헌논의가 활발해지면서도 현행 헌법의 농업관련규정은 그 어떤 해석의 방법론을 동원하더라도 식량주권이나 농업의 다기능성에 부응하는 헌법실천의 틀을 찾아내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이 전문가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농업개념, 즉 생산성과 경쟁력에 입각한 농업정책을 철저히 옹호하는 역할 뿐이었다”고 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때문에 농민단체 등 농업계에서는 정부나 국회가 개헌 논의를 시작하기 전, 헌법 전문가가 포함된 별도 농업계 농민헌법개정준비위원회(가칭) 성격의 자치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헌법전문에, 이번 개헌안에 신설·포함됐던 공익적 기능과 농업·농촌·농민의 기본권 조항을 실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경제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난 농업분야에 대한 명시, 농업의 공공영역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구성에 관한 규정 등의 내용을 담은 ‘농민헌법’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준비된 ‘농민헌법’을 정부나 국회의 개헌안에 포함시키자는 계획인 것이다.

농업계 한 관계자는 “다행히 야 4당 공히 농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농업분야 개헌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하지만 농민 스스로가 이 문제를 헌법적으로 이슈화하고 규범적으로 정리해 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이를 헌법명령으로 승화시켜 주지 않을 것이라는 냉철한 현실정치를 맞이 할 것”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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