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숯불에 굽는 음식 냄새는 늘 먼 기억 속의 아름다웠던 일을 불러온다. 그 속에는 어머니의 향기와 함께 자란 형제와 동무들의 얼굴, 뛰놀던 푸른 숲도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천진암이 가까운 곳이다. 조선조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 은신하며 생계를 위해 옹기와 숯을 구워 팔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만큼 산이 깊다. 지금도 구교 집안이라고 알려진 가정이 몇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숯을 굽던 사람들이 산 아래 동네로 내려온 지 7년여, 숯을 구워 생계를 잇던 사람들이 길이 뚫리고 아스팔트가 깔리고부터는 숯을 굽고 있는 집은 한 집뿐이다.

숯 굽는 날이 되면 온 동네가 숯가마에서 나는 냄새와 연기로 갇혀버린다. 맑은 날 숯가마에서 나는 연기는 그대로 하늘로 피어올라 흩어지지만 구름이 낀 흐린 날에는 참나무 타는 연기가 동네 지붕 위로 나직하게 깔려 숨쉬기도 힘들다. 비라도 한 줄기 뿌리면 뜨거운 숯가마에서 하얀 수증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와 안개처럼 퍼진다.

밤이면 숯을 굽느라고 때는 나무의 불꽃이 아궁이 밖으로 튀어나와 반딧불처럼 빛을 발하며 어둠 속으로 점점이 흩어져 숯을 굽고 있음을 알린다.

숯가마는 땅 위에 직경 5미터 정도 되는 굴을 만들어 사람이 들어가 설 수 있도록 했으며 흙과 돌로 벽을 쌓았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여 공기가 통하지 않게 했고 아궁이와 굴뚝으로만 공기가 드나들게 되어 있다.

숯 굽기에 적당한 참나무를 가마에 들어갈 만하게 잘라 가마안에 차곡차곡 세워놓고, 가로 1.5미터 세로1미터 되는 아궁이에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핀다.

다섯 시간 동안 불을 땐 후 아궁이 입구에 굵은 통나무 여러 개를 가로질러 막고 그 틈 사이는 흙으로 꼭 봉한다. 가마 안의 참나무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5일간 타고 흰 연기가 세파란 불꽃으로 변하기 시작할 때, 굴뚝까지 완전히 막는다. 숯은 흑탄과 백탄의 두 종류가 있는데, 이 집에서 만들어지는 숯은 흑탄이다. 흑탄은 700도의 온도로 구은 다음 가마 안에 며칠간 그대로 뒀다가 100도 정도로 식으면 꺼낸다.

젖은 참나무가 타는 동안 오지로 만든 굴뚝에서는 생나무에서 나오는 수분과, 참나무진이 타면서 물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어느 날 오지 굴뚝이 함석으로 만든 현대식 굴뚝으로 바뀌고 넓은 챙을 달아 이웃을 괴롭히던 연기도 모으고, 땅 속으로 스며 들어 수분을 받아쓰려고 굴뚝 아래에 물방울을 받는 큰 통을 달아놓았다. 참나무가 차면 나오는 수분은 화훼 재배에 좋은 양분이 되고, 과수원에서도 농약과 함께 요긴하게 쓰이는데, 땅 힘을 좋게 하고, 병충해에도 강하게 만들며, 식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숯 포대는 예전에 싸리, 억새, 조 짚으로 만든 포대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마대로 바뀌었다. 숯은 나무 모양 그대로 구워진 숯, 토막이 난 숯, 껍질이 탄 것과 가루가 된 숯의 세 종류로 분류되는데, 가루로 된 숯을 구경시켜주는 주인은 숯의 판로를 설명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연탄이 나오기 전까지 취사용으로 요긴하게 쓰인 숯에는 많은 애환과 꿈이 서려있다. 부엌에 참숯 한 포만 있으면 마음은 부자가 된다. 숯은 화로에 담겨 방안을 따뜻하게 하고, 풍로에 피워져 갖가지 음식을 만들며, 쇠 다리미에 채워져 옷을 다리는 데 쓰였다. 숯이 타면서 나오는 가스 때문에 머리가 아파 고생한 적도 많다.

연탄이 나온 뒤 숯은 자취를 감췄고, 특별한 손님을 접대할 때나 음식점에서 많이 쓰이던 숯조차도 지금은 인공 숯에 밀려 구경하기 힘들다. 장작을 때서 밥을 하던 시절에는 불을 때고 나면 생기는 숯을 갈무리하여 썼지만 참숯만큼 화력이 좋지 못했다.

뜨거운 불 속에서 견디고 나온 숯의 강인함이 잡귀를 물리친다는 믿음에서 아기를 출산한 집의 인줄에 소나무, 고추와 함께 숯을 걸기도 하고, 생 참나무가 타면서 생기는 무수한 구멍에 미세한 입자가 흡착하여 잡균을 흡수하므로 장 담글 때 고추와 함께 항아리에 띄우기도 한다.

손으로 빚은 도기와 자연 상태의 참나무는 같은 열과 정성으로 구워지지만, 도기는 예술품이라는 찬탄을 받으며 길이 보존되고, 숯은 제 몸을 사르며 사람을 위해 타다가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세상에는 자신을 바쳐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숯이 한 줌의 재로 사그라질 때까지 남을 위해 존재하듯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자신을 불사르는 삶이 보람된 일임을 알면서도 작은 실천도 못 하고 늘 부끄러움 속에 살고 있다.
오늘도 숯가마에서는 지난 삶의 후회스러움과 같은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유 지 순 ┃전 생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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