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외면 받는 ‘PLS’, 한시적 유예 목소리 거세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왕안석은 ‘富國强兵(부국강병)’을 기치로 ‘新法(신법)’을 추진해 재정난을 해소하는데는 성과를 냈으나 반대파와 백성을 설득하는데는 실패했다. ‘新法(신법)’은 백성들의 세금과 군사 부담이 늘면서 불만이 팽배해져 결국 송나라가 큰 혼란에 휩싸였으며 ‘新法’은 철회됐다. 이는 소통하지 못한 정부 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이다.

정부 정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는데 있어 소통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정책 소통은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상호 의견수렴과 설득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소통 없이는 정책효과를 거두기가 어렵게 됐다.

특히 위기 극복이나 개혁을 추진할 경우 소통을 통해 이해당사자를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성패를 가늠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PLS(Positive List System,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가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일선 현장에서 도저히 시행할 수 없으니 연기해달라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이라며 반발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창간 48주년을 맞아 PLS 제도는 무엇이고 일선 현장에서 외면 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다.



PLS 제도는?

PLS(Positive List System, 농약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는 국내 사용등록 또는 잔류허용기준(MRL)이 설정된 농약 이외에 ‘등록되지 않은 농약은 원칙적으로 사용을 금지하는 제도’이다.

현재 국내 농약 잔류허용기준 미 설정 농약의 경우 국내 기준 코덱스(Codex)를 적용함에 따라 수입농산물에 대해 수출국의 잔류허용기준보다 높은 기준 적용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내 미등록 농약이 사용된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농약의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수입코자 잔류농약기준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시행 시기는 1차와 2차로 나눴는데 1차는 2016년 12월 31일부터 시행하고 있고 견과류와 열대과일류가 대상이다. 문제는 2차인데 2018년 12월 31일부터 모든 농산물에 확대 적용된다. 이 제도가 적용되면 잔류농약 허용기준이 설정된 농산물은 기준 이하에만 ‘적합’판정을 받지만, 설정되지 않은 농산물은 일률적으로 0.01ppm이하에만 ‘적합’판정을 받게 된다.

생산 유통 판매 단계에서 무작위로 진행되는 농산물 잔류농약 안전성 조사에서 농가가 부적합 판결을 받을 경우 출하 연기 또는 용도전환, 폐기처분, 과태료 처분 같은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제도 취지는 공감하나 내년은 어렵다

일선 현장 농업인들은 PLS 제도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국민의 건강을 위하고 무분별한 수입농산물 유입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라는 것은 공감하지만 충분한 홍보와 설명, 이해보다 규제 만능 원칙에 입각해 밀어붙이기만 하는 제도는 수용이 힘들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농가 피해가 충분히 예상되는 만큼 대책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그간의 영농의 형태에서 벗어나 정해진 농약만 살포해야 하는 것에 대해 농업인들의 걱정이 크다. 농업인들 입장에서는 농약 종류도 다양하고 작물별로 정해진 양만큼 살포해야 하는 것이 선뜻 와닿지 않는 것이다.

일례로 ‘아욱’은 농약 성분 ‘이미다클로프리드’에 대해 1.0ppm/㎏으로 기준이 정해져 있다. 다른 잔류 농약 성분 기준은 없어 또 다른 농약 성분인 ‘클로란트라닐리프롤’이 검출돼도  작물 기준인 3.0ppm/㎏에 따르면 판매가 가능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타 작물의 기준이 아닌 0.01ppm/㎏에 맞춰야 판매가 가능하다.

그나마 농약이 등록된 작물은 한시름 덜 수 있지만 농약이 등록조차 않된 작물 재배 농가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산마늘이나 느타리버섯, 조 등 재배농가들은 병충해가 수십 가지가 발생하는데 농약 사용은 제한적이다. 병이 발생해도 농약을 쳐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타 작물의 농약을 사용할 경우 판매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어 농가 입장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PLS 시행 한시적 유예 요구 빗발

PLS 제도 시행이 당장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제도 취지조차 모르는 농업인이 태반이다. 단순히 농약 사용량을 줄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농업인들도 적지 않다. 때문에 당장 내년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아 폐기 등 패널티를 받게 되는 농업인들이 기하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당장 월동작물부터 심각한 타격이 예상되는 제주도나 소규모 재배농가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제주도는 PLS 시행이 반드시 유예돼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제주의 월동채소는 파종부터 수확, 출하까지 2년에 걸쳐 이뤄지고 제주에서 많이 재배되는 더덕, 도라지는 다년생을 수확하기 때문에 2019년 파종되는 품목부터 적용되도록 유예하지 않을 경우 전량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또 주요 월동채소의 파종과 정식을 앞둔 시기에 작물에 살포할 수 있는 품목별 등록약제가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당근의 경우 등록된 약재가 19개, 무는 49개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이 와중에 콜라비는 1개, 메밀은 아예 등록약재도 없는 상황이다.

이대로 PLS가 시행된다면 제주도는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도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방문해 제주도의 품목별 사용가능 약제 등록이 완료되는 시기까지 시간을 정하는 잠정기준제도를 도입해 달라고 요구했다.

제주 농업인단체들은 “정부가 월동채소 작물은 식약처와 협의 후 직권으로 조기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또한 내년 2월까지로 한정돼 문제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제도시행 조건이 완전히 준비될 때까지 PLS 시행은 한시적으로 유예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소면적 재배작물의 경우 농약제조업체에서 수익성을 이유로 적극적인 등록을 꺼릴 수밖에 없어 농가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등록된 농약이 없다보니 소면적 재배 농업인들은 병충해가 발생해도 취할 조치가 없다. 

정부, PLS 차질없이 준비

정부도 현재 등록농약 부족 문제와 토양잔류 농약, 장기재배 농산물 적용시기, 고령농 인식부족 등 다양한 문제가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정부는 지자체, 관련 기관들은 농업현장 혼란 및 피해 최소화를 위해 농업인 인지도 제고와 소비자 공감대 확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PLS가 안정적으로 추진되기 위해 ▲고령농, 농약 판매상 등 대상별 맞춤형 교육·홍보 ▲소면적 작물대상 올해 직권등록시험 완료 ▲현장애로 등의 해결방안 마련을 위해 협의 추진 등 대응방안을 마련 중이다. 

특히 정부는 고령농의 경우 관행적 농약사용에 익숙해 PLS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 T/F를 구성해서 고령인들이 몰라서 못 지키는 경우가 없도록 교육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농식품부 김정욱 유통소비정책관은 최근 간담회를 통해 “정부는 농촌진흥청, 지자체 등 기관별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를  활용한 교육·홍보 계획 수립후 이행상황을 관리 중에 있다”면서 “부적합 품목 대규모 발생, 부정적 여론 급속 확대 등 가상 상황을 설정한 후 표준행동요령을 점검 및 보완하는 ‘농산물 안전사고 가상훈련’을 실시해 PLS 전면시행에 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올해에는 방제농약이 부족한 소면적 84개 작물을 대상으로 직권등록을 차질 없이 추진(1670개 이상 농약 등록 예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상반기부터 재배하는 상추, 들깨잎 등 46개 작물은 내년 1월, 하반기에 재배하는 대추, 조, 수수 등 38개 작물은 내년 4월까지 등록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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