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들의 피를 발라 젊음을 되찾으려 했던 희대의 광녀(狂女)

  
 
  
 
엘리자베스 바트리(Elizabeth Bathory; 1560~1614)는 옛 트란실바니아 왕국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트란실바니아는 지금의 루마니아 서북부지방에 있던 중세 동유럽의 강국이었다.
바트리 가(家)는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일가와 비견될 정도로 동유럽에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명문가로 꼽힌다.

엘리자베스 바트리는 잔인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700명에 가까운 죄 없는 여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천하의 악녀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글에서는 엘리자베스 바트리의 성(姓)인 ‘바트리’로 부르기로 한다.


생지옥

“으윽~ 웩 웩”
“세상에 이게 다 사람 시체란 말인가?”
“아~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구나.”

왕실 조사팀이 ‘페렌츠’백작(바트리의 남편)가문의 성 주변에서 자꾸만 시체가 발견된다는 제보를 받고 페렌츠 성(城)에 도착한 것은 1610년 12월 30일이었다.

굳건히 잠겨있는 성문을 부수고 들어선 조사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성안의 광경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장교님. 저, 저기 온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간 여자 시체들이 지하실에 방치돼 있습니다.”

“온 몸이 칼에 난자돼 갈기갈기 찢긴 시체들도 나뒹굴고 있습니다.”
수십 구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음습하고 눅눅한 성 안은 역겨운 피비린내가 푹푹 풍기고 있었다.
이때였다. “살...려...주...세요....제발~”
어디선가 다 꺼져가는 여자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저 옆 방문을 열어봐라”
밀실처럼 생긴 방문을 열어젖히자 거기에는 쇠꼬챙이에 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알몸의 여인이 발견됐다. 여인은 죽음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구출됐다.

조사관은 성 안 이곳저곳에 설치된 잔인한 고문도구들을 살펴보았다.

새장처럼 된 철망 안에는 예리한 칼날들이 튀어나와 있고 칼날에는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철망 안에 사람을 넣고는 칼날이 조여와 사람을 찌르는 게 분명했다.

사람과 똑같이 생긴 남자인형의 두 팔은 사람을 껴안을 수 있도록 만들어 졌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센지 여자들이 그 품안에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인형의 가슴부분에서는 예리한 칼날이 튀어 나오도록 설계돼있었다.
“음~ 이정도 칼날이라면 웬만한 사람의 몸은 한 번에 꾀 뚫어 버리겠는걸.”
이때 지하로 내려갔던 부하가 올라왔다.

“장교님 지하에 이상한 욕조가 하나 있는데 욕조 안에 피가 가득 담겨있더군요. 아마 사람의 피인것 같습니다.”
“음 그러고 보니 이 고문도구들의 밑 부분에는 홈을 만들어 놓고 관을 통해 피가 타고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군. 이 피가 결국은 그 욕조로 들어가는 거야.”
그런데 도대체 왜?

‘젊은 시절부터 청순한 미인으로 소문 난 바트리 백작부인이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 바트리 일가 사람들에게 곧 잘 발견되는 간질병이 부인에게도 있는 것일까?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모든 것은 바트리 부인의 자백이 있어야 밝혀질 것이다.
“어서 부인을 포박해 압송하도록”

조사팀은 바트리와 성안의 하인들을 모조리 체포해 생지옥을 빠져나왔다.
조사관은 바트리의 방에서 바트리가 쓴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도 챙겨올 수 있었다.

우울한 어린 신부

바트리를 심문하는 조사팀은 조심스러웠다. 남편인 페렌츠 일가도 명문이지만 바트리 일가는 이 나라 왕실과 친척지간 아닌가.

조사관은 주변인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평범했던 여인이 어떻게 그런 천하의 잔인무도한 악마로 변해갔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바트리는 열한 살 되던 해에 페렌츠 가문의 성으로 들어왔다.

11년 연상이던 페렌츠 백작과의 결혼을 위해서였는데 결혼하기 몇 해 전부터 시집에 들어가 교육을 받아야 했던 것이 당시 동유럽 명문가들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어리고 소심하던 바트리는 엄격한 시어머니의 무차별적인 잔소리를 견디기 어려웠다.

“우리 나다스디 가문(페렌츠의 성(姓))은 1,000년 동안 이어져 오는 명문가문이다. 더구나 남편이 될 페렌츠는 무사로서 항상 전쟁터에서 살아야 하기에 아내가 하나에서 열까지 세심하게 보필해야 한다. 부정 타는 몸가짐은 일절 하지 말아야한다.”

옷차림, 머리매무새, 화장, 음식 만드는 법, 하인 다루는 법, 걸음걸이, 웃을 때 입모양, 말할 때 목소리크기, 귀부인들과 대화 할 때 써서는 안 되는 말....
시어머니는 하루 종일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하나에서 열까지 참견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아유 지긋지긋해 그런 일들이라면 우리 집안에서도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들이야’
그러나 기분 나쁜 내색이라도 얼굴에 드러내면 얼음처럼 차가운 시어머니의 눈총이 바틀리의 심장에 박혀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지옥 같은 감옥에 살고 있어. 저 여자는 시어머니가 아니라 악마야. 악마’
바틀리의 성격은 점점 음울해졌고 속내를 감추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없을 때는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안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악마로 변하는 백작부인

시집에 온지 4년이 지난 15세에 바트리와 페렌츠는 정식으로 부부가 된다.
시어머니의 견제와 감시는 나날이 더 심해졌다.

고급장교였던 남편이 전쟁터로만 다니던 까닭에 바트리는 남편의 따뜻한 한마디 위로조차 받을 수 없었다.
남편과 함께 있는 날이 거의 없던 까닭에 아이도 낳지 못하던 바트리는 결혼 후 10년이 지나서야 딸 하나를 낳았고 그 후 13년이 더 지나서야 외아들 ‘파울’을 낳았다.
그러나 그 긴 결혼생활 동안 바트리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아직 아이가 없던 어느 날 아첨하기 좋아하는 집사 ‘야노스’가 바트리에게 말을 걸었다.
“마님. 노마님의 잔소리에 우리 모두가 지쳐있었죠. 견디기 어려운 일상 속에서 우리가 위안을 찾은 것은 우리만의 특이한 종교체험이었습니다. 그것은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오는 위안 과 쾌락입니다. 마님께서도 이 상태로 살다가는 정말 미쳐버리고 말걸요?”

뭐 하나 기댈 곳이 없었고 위안도 없었던 바트리는 오래 전부터 형식적인 교회예배에도 회의를 느껴왔었다. ‘정말 신(神)이란 있긴 있는 거야?’ 이런 생각이 바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정말? 그런 것이 있어? 그렇다면 집사와 유모가 가끔가다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날이 새서는 들어오곤 하던 것이 그 의식 때문이었단 말이야? 나는 둘이 어디 가서 음탕한 짓이라도 하고 오는 줄 알았더니”

“마님도 보셨군요. 저 숲 너머 오두막집에는 마녀들이 서너 명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떠돌이 처녀들을 잡아다가 그 피로 사탄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럴 때마다 사탄께서는 우리에게 황홀경을 보여주시고, 삶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시며, 육체의 쾌락 따위와는 비교할 수없는 참 기쁨을 선사해 주시지요.”
이후로 바트리는 이들과 수시로 어울렸다.

숲 속 오두막집에서는 말 안 듣는 젊은 하녀와 떠돌다 잡혀 온 집시 처녀 등이 고문을 당하며 피를 흘렸다. 이 모습을 보는 바트리에게는 전에 느끼지 못한 쾌감이 들었다.
횃불에 비치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러대는 젊은 처녀들, 숲 속의 마녀들과 악마숭배에 빠진 하인들이 웅얼거리는 이상한 주문소리.....

이 엽기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바트리는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남편이 전쟁터에서 돌아오자 한 동안 이 비밀스러운 집회는 열리지 못했다.

그리고 결혼 10년 만에 큰 딸이 태어나자 바트리도 약간은 정상을 되찾았다.
그 후 두 딸을 더 낳고 결혼 23년째는 아들도 보았지만 바트리의 마음 속 깊은 곳은 늘 악마숭배의 그 묘한 쾌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안 돼 참아야 해~ 이래서는 안 돼’

그러나 1604년 남편 페렌츠가 51세의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하자 그녀 속에 잠재돼 있던 악마본능은 활화산처럼 터지고 만다.

살아있는 흡혈귀

“저 쭈그렁 할멈을 당장 성 밖으로 내쫓아라. 누가 물으면 노망나서 나갔다고 하면 될 테니까.... 추위에 떨다가 굶주려 죽을 때까지 고생 좀 해 보라지”

남편이 죽고 성의 안주인이 된 바트리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바로 시어머니 추방이었다.
성 안은 이제 바트리와 예전 악마숭배의 멤버들인 수석집사, 하녀 우두머리, 유모 ‘일로나’의 세상이 됐다.
그들은 성 안에서 마음 놓고 그 사특하고 혐오스러운 짓을 공공연히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즈음 나이 40에 들어선 바틀리는 자신의 피부와 용모가 예전 같지 않음을 한탄하고 있었다. 바트리는 그날도 자신의 청춘이 다했음을 한스럽게 여기며 하녀에게 머리를 맡기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하녀가 정성스레 머리를 빗고 있는데 갑자기 바트리가 소리쳤다.

“아야야~ 이년 내 머리를 다 뽑아버릴 셈이냐?”
바트리는 하녀의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 하녀의 뺨은 바트리의 반지에 긁혀 찢어졌고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피는 바트리의 손목에도 묻었다.

“에잇 더러운 년. 더럽게 피가 여기 묻어버렸네...... 어? 그런데!”
바트리는 순간 피가 묻은 손목 부분의 피부가 탱탱해 졌다고 느꼈다.

‘오호 이것 봐라! 그래 피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라더니... 처녀의 피가 피부에 닿으니 탱탱 해지는 게 정말 놀랍구나!’
그 작은 사건은 바트리를 피에 굶주린 흡혈귀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바트리는 옛 멤버들과 함께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집 안의 하녀들을 하나하나 고문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는 바트리와 처녀의 피를 잔에 담아 사탄에 바치며 예배하는 집사와 유모, 마녀들이 다시 성의 주인이 됐다.

점 점 잔혹해 지는 바트리는 공인(工人)들을 성 안에 불러 자신이 직접 고안한 희한한 도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기묘묘한 고문도구, 살해도구들이었다.
공인들의 입을 단속하며 협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악마, 지옥에 떨어지다

성은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어디선가 떠돌이 집시 처녀들이 잡혀오면 그때부터 이 흡혈귀들이 달려들어 성안의 (악마를 위한)예배 실을 피 칠갑으로 만들었다.
그 끈끈하고 더운 피를 욕조에 받아 흡족한 듯 몸을 담그고 있는 바트리의 모습은 악마 그 자체였다.

하루는 바트리의 과수원에서 배를 따먹다 들킨 소녀가 잡혀왔다. 바트리는 소녀의 몸을 발가벗기고 온 몸에 꿀을 발라 숲 속에 묶어놓았다. 이, 삼일이 지난 후, 소녀는 수십만 마리의 개미와 벌레들에게 물어 뜯겨 퉁퉁 부어 버린 시체로 발견됐다.

옷을 잘못다린 하녀의 뺨을 인두로 지지기도 했고, 수다를 떠는 하녀의 큰 목소리가 귀에 거슬리면 커다란 바늘로 입을 꿰매놓기도 했다.

성 안 사람들과 성의 통제를 받는 마을 사람들은 누구하나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바트리의 충실한 대리인 수석집사가 마을을 완벽하게 통제했기 때문이다.
조사를 마친 조사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조사관은 다름 아닌 바트리의 사촌 ‘투르조’ 백작이었다.
‘아~아름답고 총명해서 친척들 간에 천사라 불리던 엘리자베스(바트리)가 어떻게 저렇게 변했을까? 일기를 보니 612명이나 죽였던데 그 불쌍한 영혼들은 어디서 위안을 받아야할까? 도대체 왕실과 관리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아무도 몰랐던 걸까?’

10년 간 무려 612명이 끔찍하게, 아무 저항도 못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해야했다.
재판부는 처녀를 구하기 어려워진 바트리가 가난한 집안의 소녀들에게 글을 가르쳐 준다고 속여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을 모아 하나, 둘 씩 죽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충격적인 사실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석집사와 마녀들 그리고 유모는 살아있는 채로 화형에 처한다. 바트리를 도와 악행을 저지른 하인들은 불가항력이었음을 참작해 목을 벤 후 시신을 불태운다.”

그러나 재판부는 ‘엘리자베스 바트리’가 왕가의 친척이므로 죽일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바트리는 탑 꼭대기의 작은 방에 투옥 돼, 음식쓰레기를 받아먹으며 연명했다.
4년이 지난 1614년 8월, 바트리는 숨을 거두었다.

바트리 가문은 시신을 수습했지만 분노한 백성들의 반대로 매장도 할 수 없어 헝가리 북부 어딘가에 몰래 묻었다고 한다.

우유 빛 살결에 아름다운 용모, 로마어, 라틴어, 헝가리어 등 언어와 학문에도 능통했던 흔치않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바트리가 그렇게 된 데는 어릴 적 앓았던 열병의 후유증과 어린 시절의 시집생활에서 얻은 지독한 우울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트리 가문이 풍비박산 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후 100년간이나 이 나라에서는 ‘바트리’라는 이름을 입에 오르내리는 것조차 법으로 금했다.

바트리 사건은 수많은 뱀파이어(흡혈귀) 소재의 창작물, 연쇄살인사건소설 혹은 잔혹물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엘리자베스 바트리’에 비하면 이 지역이 낳은 또 하나의 유명인사(?) ‘드라큐라’ 백작은 차라리 귀여워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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