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최혜신 씨는 3년차에 접어든 콩을 키우는 농부이자 콩을 발효시키는 발효 농부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치과기공사로 일하다가 3년 전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충북 청주 황골마을로 들어왔다. 그녀가 만든 장류 브랜드 ‘공희명가’는 증조할머니에게 물려받은 110년 된 씨간장으로 장을 담근다. 할머니의 며느리, 또 그의 며느리 손을 거쳐 이어온 진득한 장맛을 그녀가 4대째 이어가고 있다.


■ 4대째 이어진 장류 집안

최혜신 씨의 고향은 충청북도 청주시 미원면 구방리 황골마을이다. 시내에서도 차로 한 시간 남짓 굽이굽이 들어가는 산골짜기에 자리한다. 그녀의 집안은 증조할아버지가 콩 농사를 지으면서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또 그 며느리에게 3대에 걸쳐 손맛을 전수하며 씨를 이어오고 있다. 무엇보다 110년 묵은 진득한 씨간장은 집안의 보물이다.

어려서부터 장 담그는 날이면 어김없이 온 가족이 나서서 가마솥에 콩을 삶고 메주를 짓는 모든 과정을 도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른을 돕는 일, 함께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1남 2녀 중 셋째인 혜신 씨는 누구보다도 진득하게 어른들 곁을 지켜 일을 도왔다. 장맛의 소중함을 느끼기 보다는 부모님을 일손을 돕는다는 기쁨이 앞섰다.

■ 직장생활 건강 악화…발효음식으로 치유

5년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며느리인 어머니가 장독을 이어받았다. 1,300평(4,297m2) 남짓한 콩밭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어머니가 먼저 내려와 장류 사업을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녀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내려오게 됐다.

고향에 돌아가기 전 그녀는 치기공과를 졸업하고 기공소에서 3년을 일했다.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인공 치아나 치아 교정 틀 만드는 일은 적성에도 맞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작업 중에 날리는 분진이 비염과 결막염, 피부 발진을 불러왔고 알레르기 반응으로 알 수 없는 병이 몸을 괴롭혔다. 매일이 콧물과 눈물,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고달픈 나날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병이 더욱 악화될 것 같은 위기감에 내몰린 그녀는 곧장 사표를 내고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갔다. 거기서 어머니가 해준 각종 발효음식을 먹고 나니 어느새 그녀의 몸을 괴롭혔던 병들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때 그녀는 ‘좋은 재료만 사용해 건강한 장을 담그면 누군가는 알아봐주는 사람이 나타 날거야’ 라는 확신을 가졌다. 때마침 어머니는 그녀가 도시생활보다는 농업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녀는 그길로 농업인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 소비자와 직거래 판로 구축

농업인의 길을 선택하면서 그녀가 당장 관심을 쏟기 시작한 분야가 바로 판로개척이다. 제아무리 좋은 장류일지라도 기존 유통구조를 넘어서 소비자에게 다가서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어머니도 판로 구축에 애를 먹어 고전을 면치 못해 매출도 곤두박질쳤다.

최근에는 유통업자가 찾아와 된장만 OEM으로 납품해달라고 요청도 왔지만 가격이 형편없었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등급이 낮은 수입 원재료를 사용해야 할 정도여서 과감하게 거절하고 농업회사법인 황골만의 독자적인 판로구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어갔다.

고민 끝에 그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떻게든 소비자와 직거래를 방식을 고수하자고 제안했다. 2주일에 1회씩 미원면 농업인들이 모여 본인 농가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구성하고 모임을 갖고 있다. 이 모임의 취지는 생산자가 갖고 있는 본인만의 이야기를 특색 있게 잘 꾸며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괴리감을 좁혀가며 모든 생산물을 100% 직거래로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현재까지는 목표를 100%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소비자와 직거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향후 2~3년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비워야 제맛낸 ‘공희명가’ 브랜드 출시

그녀는 단순한 된장, 고추장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직접 브랜드를 출시했다. 바로 ‘공희명가’이다. 그녀의 어머니 이경재 대표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2012년 귀촌하며 마을 이름을 따서 ‘농업법인 황골’을 세웠다. ‘공희명가’는 그녀가 농업인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새롭게 만든 장류 브랜드다.

“‘공희’는 스님이 비울수록 행복하다며 마음을 많이 나누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발효음식을 만드는 마음과 닮은 이름이죠. 공희명가에는 비울수록 건강해지는 음식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베풀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공희명가의 된장은 거무스름한 색을 띤다. 장을 담글 때 간장을 따로 빼지 않고 메주와 잘 치대어 고스란히 된장에 스며들게 하기 때문이다. 간장을 더한 된장은 맛이 깊고 진하면서도 깨끗하다. 된장에 가장 좋다는 ‘3년 발효’를 고집한 것도 맛에 풍미를 더했다. 그녀는 장맛의 비결 중 하나로 불순물과 독소를 뺀 ‘자염’을 들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염을 가지고 새로운 발효식품을 구상했다. 유익균이 풍부한 누룩소금과 뒷산에서 따온 뽕잎에 버섯, 다시마 등 9가지 재료를 넣어 만든 뽕잎소금이다.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장맛을 어머니가 이어왔듯이 그녀도 어머니의 손맛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익히며 전해 받고 있다. 다만 어머니는 절대 ‘늘 하던 대로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맛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그가 발효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발효의 섭리를 배우고 새로운 장맛을 연구하는 이유다.

■ 젊은 청춘이여 농업에 도전하라!

귀농 3년차 그녀의 만족도는 어느 정도일까? 그녀는 거침없이 ‘매우’라고 밝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가 시도했던 노력들이 조금씩 결과물로 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어머니가 일궈 오셨던 황골이라는 회사에서 탈피하고 ‘비울수록 해복해지는 공희명가’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만족합니다.”

그녀는 공희명가 브랜드 출시와 함께 먹거리를 많이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비울수록 행복한 공희명가라는 뜻과 마음이 일치하는 것이다. 매년 매출액과 상관없이 김장김치 혹은 장류를 기부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매출대비 기부금액이 지나치게 높다고 우려하지만 그녀는 더 많은 것을 비워야 채워질 수 있고 나눔을 공유하는 것 그자체가 더 좋단다.

특히 그녀는 청년 농업인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새로운 꿈을 개척하는데 주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녀 스스로 귀농 생활을 통해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꿈을 꿀 수 있게 됐다고 자부하기 때문. 그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씩 쉬어가기도, 뛰어가기도, 혹은 걸어가기도 하고 스스로 조절하며 앞길을 다져가니 이처럼 효율적인 직업이 어디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단다.

“다양한 미래학자들, 많은 투자자들의 동향이 농업에 몰리고 있는 것은 여담이 아니라 식량산업인 농업의 중요성과 가능성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농업이라는 푸르고 넓은 바다에서 젊은이들의 꿈을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저 역시 농업의 바다에서 꿈을 펼친 결과 희망의 결과물들이 세상에서 비쳐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이 희망을 안고 앞으로 거침없이 질주할 일만 남았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농업의 바다에서 많은 젊은 청춘의 물고기가 더 넓은 세상으로 헤엄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