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쌀개방 통상문제 ‘가닥’…나라별 거래물량 배정 관건

정부가 쌀수입을 완전개방하면서 적용하던 관세율 513%를 사실상 확정키로 했다. 그 대신 고율관세에 대해 WTO에 이의를 제기했던 쌀수출국들과의 갈등에 대해서는, 그들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하는 합의점, 즉 나라별로 수입물량 할당제(국별쿼터, CSQ)를 다시 도입키로 잠정 결정했다. 농민단체들이 주장하는 현재의 곡종별 입찰제(글로벌쿼터)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농식품부는 최근 농민단체 실무진들과의 회의 및 언론보도 등을 통해 2015년부터 진행해 온 WTO 쌀 관세화 검증 협의를 끝낼 시점이라고 밝혔다. 검증 5년째로 접어들면서 쌀 관세화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돼 온 것을 제거하고, 이제는 513%의 관세율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부는 2014년 관세화 유예를 종료하고 쌀 완전개방 조건으로, ’86~’88년 국내외 쌀값 차이를 매겨 관세율 513%를 산정해 WTO에 통보했다. 이에 대해 미국,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5개국은 한국의 통보내용이 고관세인데다, 그간 자국들의 수출비중을 안정적으로 배분했던 저율관세할당물량(TRQ) 운영상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관세화 유예 기간에 적용했던 안정적 수출물량 확보 차원의 국별쿼터제를 요구해온 것이다. 이후 각 나라별 양자협상을 통해 ‘513% 관세율 사수’와 ‘국별쿼터제 부활’을 두고 지난한 협상이 5년간 이어왔다.

결론적으로, 정부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513%의 고관세를 지켜, TRQ물량 이외에 쌀 수입 문턱을 차단한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제 고관세를 매길 경우, 중국이나 미국산 쌀에 비해 2.5~3배 비싼 국산 쌀에 대한 보호장치가 마련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513%의 관세를 적용하게 되면, 국내 시장에서 수입쌀 판매가격은 국내산의 2~3배 비싸기 때문이다.

수출국 입장에서도 쌀과잉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시장의 수요가 한계에 도달해 추가 수출은 어렵다는 것을 간파했다는 분석이다. 한국민의 정서상 제어장치없는 완전개방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협상장에서 충분히 전달됐다는 전언이다. 때문에 2004년부터 시행해온 국별쿼터제를 요구해서 자국의 수출비중을 안정적으로 배분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농식품부 농업통상과 관계자는 “쌀 수출국들과의 4년간 협상 내용을 종합해보면, 관세율 산출근거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던 것과, 국별쿼터 배분에 대해 상당한 의견이 있었다”면서 “국별쿼터로 전환하더라도 TRQ물량 40만8천700톤에 대한 물량변화는 없기 때문에 심도깊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국들의 국별쿼터제 요구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곡종별 입찰제로 인해 수출물량 확보가 불안해지면서 주장이 강해졌다. 그동안은 곡종별 입찰제를 하더라도 쌀종류별 수입량을 정하면, 단립종은 중국, 중립은 미국, 장립은 태국과 베트남 등 해당 수출국이 구분됐으나, 최근들어 베트남 등이 장립종 이외에 단립종 생산을 늘리면서 곡종마다 입찰에 참여하게 됐다. 경쟁이 붙으면서 수출국들 입장에선 수출비중에 적신호가 켜졌다. 안정된 수출 쿼터량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농민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관세율도 지키고, 현재의 글로벌쿼터제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농 한 관계자는 “나라별 할당량을 배정할 경우 의무수입량으로 굳어지고, 입찰제 때와 달리 가격 책정 문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여기에다 수출물량에 대한 효율성을 따져 밥쌀용 쌀을 거래하자는 집요한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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