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의 하나인 춘분이 지났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나뭇가지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땅속에 한겨울을 보낸 이름 모를 생명체에도 새 생명이 움튼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을 전후하여 우리 농가에서는 영농준비로 손길이 바빠진다. 과수농가에서는 전지·전정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일반농가에서는 재배목적에 맞게 종자선택도 해야 하고 땅심을 높이기 위한 퇴비도 내야 한다. 이처럼, 대지를 경작하고 상대하는 농부에게는 도시민들처럼 봄을 느끼고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다.

봄이 되면  농업인들은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도시민들이 돈만주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푸성귀나, 과일, 채소 하나도 우리 농사꾼에게는 수십 번의 손길이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고추 한포기 감자 한포기도 시기를 맞추고 정성을 쏟지 않으면 좋은 결실을 볼 수가 없다. 또 도시민이 봄나들이로 싶게 보고 즐 길수 있는 유채꽃이나 배꽃, 복숭아꽃도 농업인이 한겨울 농사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경관이다.

이처럼, 농업인들은 단지 농사일을 생업을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토정 이지암 선생은 농부의 마음은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작물 하나하나에도 나라님이 백성을 대하듯 정성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농업 농촌이 이처럼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농업인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농업·농촌을 바라보는 지도층의 시각은 농업인의 마음과 전혀 다르다. 농업을 단지 농업인이 생존을 위한 필요한 산업정도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천박한 사회적 인식 때문에 우리 농업·농촌은 많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한겨울 하우스를 통해 애지중지 키워온 채소를 갈아엎어야 하는 농촌의 현실을 헤아리는 곳은 없다. 우리 농업·농촌은 산업적인 측면보다 공익적 기능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고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해 우리에게 먹거리를 공급하는 역할을 단지 농업인만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4~5월이 되면 우리의 들판은 파랗게 물든 녹색경관이 된다. 이러한 경관은 도시민에게 휴식과 함께 행복과 편안함을 선사하기도 하고 새로운 활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농업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봄은 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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