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집은 전 주인이 작은 앞마당은 물론 뒷마당까지 온갖 정원수들을 잘 가꿔놓아 집을 보러왔을 때 첫눈에 반하고 말을 정도였습니다. 골목이 시작되는 첫 집이기도 했지만 지붕을 훌쩍 넘겨 자란 향나무와 옆집 담을 넘은 석류나무는 물론, 골목과 나란한 주목나무 서너 그루는 그 무성한 잎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보기가 너무 좋았던 겁니다.

금강초롱이나 둥굴레, 백년초를 비롯해 맥문동 같은 다년생 꽃이나 약초들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을 정도였으니 집사람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20여 평 집터를 제외하고 불과 47평에 불과한 앞뒤 마당에 그만큼 집주인의 정성이 들어간 정원은 도시에서라면 사람을 혹하게 만들고도 남았을 게 분명합니다.

풀과 나무가 아름다운 건 계절에 따라 다 독특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록이 움트는 봄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여름의 짙은 잎새 사이로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 또한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줍니다. 가을, 주목에는 빨갛게 열매가 맺기 시작하고 온 동네 참새들이 주목가지 마다 열매를 차지하기 위한 재잘거림이 시끄러울 정돕니다.

이곳에 와 이름을 알게 된 명자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엄청난 속도로 자랍니다. 가지마다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했음에도 작은 새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쉼터인 걸 보면 가시는 사람에게만 불편한 존재로 보일 뿐입니다.

밭을 가꾼다는 핑계로 코앞 마당을 돌보지 않은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멋대로 자란 석류나무는 지난해 열매조차 맺지 않았고, 키가 너무 자란 향나무는 옆집 나무보일러 연통과 키 재기를 해야 될 판이라 결국 윗부분을 절단하고 말았더니 꼴이 말이 아니게 됐습니다.

주목은 무성한 가지를 골목까지 영역으로 삼을 양 뻗어내다가 골목 사람들의 원성 탓에 가지치기를 당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하기야 이곳 사람들 눈에는 마당에 쓸데없는 주목이나 심어놓은 전 주인이나 그걸 베 버리라는 억지를 무시하는 저나 다 마음에 들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고추나 상추라도 심으면 먹기라도 하지 주목이야 어디 써먹을 데가 있느냐는 게 그네들의 생각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몇 그루의 엄나무와 가시오가피, 제피나무가 먹을거리를 제공하니 촌집 마당에서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명자나무에 오늘도 동네 참새들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다가가면 후루룩 날아올랐다 어느새 다시 제자리를 찾아 재잘거립니다.

올해는 방치했던 마당 정원에 신경을 집중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남의 밭 풀 뽑기에 몸만 힘들고 말았으니 올해는 쉬엄쉬엄 마당이나 손보는 게 정답이라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지난 가을 쉴 새 없이 올라오던 강아지풀이 올해는 마당을 점령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벌써부터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렇다고 한겨울 대처할 방법이 없으니 그저 봄을 기다릴 밖에 별 도리가 없긴 합니다.

가을에 캐야지 캐야지 하면서 미뤄놨던 우슬도 아마 올 봄에는 엄청나게 올라올 거고 이래저래 다가오는 봄은 정신없을 게 틀림없습니다.

제멋대로 자란 불두화도 손을 봐야 될 거고, 잣도 열리지 않는 이상한 잣나무는 베어 버려야 될지 고민스럽지만 아마도 그냥 제 수명대로 살라고 놔둘 게 뻔합니다.

제법 키가 자란 소나무도 모양을 잡아야지 그대로 뒀다가는 또 석류처럼 옆집 담을 넘을 공산이 큽니다.
제집 마당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주제에 남의 땅 빌려 농사를 짓겠다고 힘쓰다가 몸에 이상이 생긴 것도 몰라서야 어디 전원생활 좀 한다고 말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뒷마당 화초들 정리해 몇 포기 고추와 상추 정도 심을 공간 만들어 심심풀이 호미질로 세월을 낚는 것도 그럴듯하지 않을까요.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