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참여농정포럼·평택농업희망포럼 ‘농민수당’ 토론회

▲ 경기참여농정포럼과 평택농업희망포럼이 3월 28일 평택시농업기술센터 대강당에서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발제자와 토론자들.
“정부는 원래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수많은 예산을 그들에게 직접 주지 않고 각종 공모사업과 개발사업 등으로 낭비하고 있다. 현재의 많은 농정사업과 농업직불금은 농촌 내 불평등과 불균형을 가속화해 중·소농의 생존을 어렵게 하고 농촌공동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충남연구원 박경철 책임연구원의 주장이다. 그는 경기참여농정포럼과 평택농업희망포럼이 함께 마련한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아 농민기본소득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실행방법 등을 역설했다.

박 연구원은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농민에게 직접 주면 농민이 원하는 농업과 그들이 살고 싶은 농촌을 스스로 만들어갈 것”이라며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농정대개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민기본소득 개념과 필요성

“모든 농민에게 영농규모, 영농형태 등에 상관없이 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금액을 균등하게 지급하는 제도.”

박 연구원이 제시한 농민기본소득 개념이다. 공업화, 도시화, 개방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희생양이 된 농민의 삶을 보장하는 한편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 증진과 지속성을 위해 일정한 금액을 직접 보상하는 제도라는 설명이다.

기본소득이 부각한 배경에는 공정과 분배의 실패,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각한 사회, 저출산과 높은 자살률, 지역 소멸 등이 도사리고 있다. 이대로는 더는 지속하기 어려운 사회라는 점이다.

농민기본소득의 원리와 원칙은 중요하다. 앞으로 제도 도입 논의과정과 시행방침 결정과정에서 그 근거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기본소득 개념으로 지급”하는 원리를 제시했다.

농민기본소득의 원칙으로는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성이 제시됐다. 이는 향후 제도 논의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정기석 마을연구소장의 경우 기본소득의 조건으로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 충분성을 들었다. 농민기본소득의 경우 ‘실질적인 소득보전 효과를 발휘할 정도의 금액을 지급하는 충분성’은 아직 요원하다는 입장이다.

박 연구원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농업직불제도 개편과 함께 농민기본소득을 연계해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의 농정개혁은 단순히 수정이나 개선이 아니라 농촌붕괴를 막을 특단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그 유력한 대안이 농민기본소득이라고 강조했다.

농가소득 감소와 불평등 심화


박 연구원은 농민기본소득의 필요성으로 △농산물 시장개방 확대와 농가소득 감소 △농업직불금 규모의 부족과 형평성 문제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 등을 들었다.

농가소득의 상대적 하락은 지속되고 있다. 2010년 3천212만1천 원이던 농가 평균소득은 2017년 3천823만9천 원으로 19퍼센트 증가에 그치고 있다. ‘상대적 하락’은 도농 간 소득격차 추이로 알 수 있다. 농산물시장 개방의 단초가 된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시점인 1993년 말 도시근로자 가구소득 대비 농가소득은 95퍼센트였는데 현재는 63퍼센트 수준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27년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57퍼센트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경우 연평균 3.1퍼센트 증가해 2027년 7천886만 원에 이르고, 농가소득은 연평균 2.1퍼센트씩 늘어 같은 해 4천490만6천 원에 그친다고 추정했다.

턱없이 적은 농업직불금


“우리나라 농업직불금은 유럽 등 선진국에 견주면 턱없이 낮다. 게다가 직불금제도도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고 농촌 내에 양극화마저 초래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현행 농업직불금제도에 관해 혹독히 비판했다.

쌀 소득보전 직불제, 친환경농업 직불제, 밭농업 직불제, 경영이양 직불제 등 제도가 너무 많고 복잡한 데다 행정비용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 지적됐다. 전체 직불금의 82.6퍼센트가 쌀에 집중된 점, 토지면적 기준인 탓에 대농에게 유리한 점 등이 문제점으로 꼽혔다.

쌀 직불금의 경우 대농과 영세농의 수령액이 큰 차이를 보이며 농촌 내 양극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권 의원실에 따르면 1헥타르 미만 농가는 전체농가의 71.6퍼센트로 평균직불금액이 40만 원인 반면 2헥타르 이상 농가는 평균 440만 원이다.

농업직불금이 턱없이 적다는 점은 뼈아프다. 선진국과 격차가 크다. 박 연구원은 “유럽은 농업직불금이 곧 농민기본소득에 해당한다”고 했다. 유럽도 면적 기준으로 농업직불금을 지급하는데 평균경지면적이 30헥타르에서 50헥타르에 달하다 보니 “면적 자체가 농가기본소득”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농업소득 대비 농업직불금 비중은 우리나라의 경우 10〜20퍼센트, 유럽은 50〜70퍼센트로 큰 차이를 보인다. 농가소득 대비 농업직불금 비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농가소득의 약 3퍼센트가 농업직불금인데 유럽의 경우 약 30퍼센트로 열 배에 달한다.

전체농업예산 중 직불제도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보여주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는 17퍼센트(2018년)로 추정되는데 일본은 33퍼센트(2015년), 스위스는 85.5퍼센트(2016년)에 이르고 유럽연합 전체로도 71.7퍼센트(2016년)나 된다. 농민기본소득을 농업직불제도 개편과 연계해 논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농업과 농촌 자체가 공공이익


박 연구원은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가치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농민기본소득 도입을 강조했다. 농민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시장개방에 따라 희생양이 됐으니 ‘시혜’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농업과 농촌 존재자체가 공공의 이익을 지키고 있으니 마땅히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업과 농촌이 품은 다양한 가치를 구체적 수치로 나타내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다. 농촌진흥청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82조5천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논의 홍수조절 효과가 댐 20개의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포함해 환경보전기능의 경제적 가치만 따져도 연간 67조7천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최소치를 추산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연구에서는 수백조 원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경제적 가치를 수치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농업과 농촌을 보호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재정투입이 가능했다”며 “이제는 그 방식이 농지면적 기준이 아니라 농촌주민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방식이 좋을까

농민기본소득제도와 관련해 지급방안 등을 두고 크게 세 갈래가 논의되고 있다. 재원규모, 지급대상 규정, 방식의 효율성 등 각기 장단이 있으나 대체로 △농가단위 기본소득제도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도 △농촌주민 기본소득제도가 유력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농가단위 기본소득의 경우 친환경농업직불금만 남기고 나머지 농업직불금은 농가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방안으로, 농가통계 활용에 유리하고 농가경영체 등록제도가 있어 실행이 용이하다. 세대분리의 문제가 발생하고, 인구유입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평이다. 모든 농가에 월 50만 원을 지급한다면, 2017년 104만 가구를 기준으로 연간 6조2천4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개별 농민에게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제도는 농가단위보다 발전한 모델로 볼 수 있다.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등 기본소득 원칙에 부합하고 여성농민의 권익보호 차원에서도 장점이 있다. 인구증가 유인, 공동체 활동 활성화도 유리하나 행정비용이 증가하고 연령 설정을 포함해 농민 ‘정의’가 쉽지 않다는 것은 단점이다.

농촌주민 기본소득은 마을단위 기본소득제도라 할 수 있다. 농가, 비농가 구분 없이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수당을 지급하되 정규소득자는 제외하는 방안이다. 과소고령화로 공동체 유지가 어려워 소멸위험에 처한 ‘한계지역’을 우선 실시하고 점차 확대하는 방식이다. 농촌과 지역공동체 유지 차원에서 유리하나 기본소득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첫술에 배부르랴, 시작이 중요

전남 해남군의 ‘전체농가 월5만원’ 지급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이웃한 강진군의 농민수당 도입도 마찬가지다. 강진군은 논밭 경영안정자금 지원제도를 통해 7천100농가에 균등하게 7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절반은 현금으로 계좌입금하고 절반은 지역화페(상품권)로 지급한다.

해남군의 경우 농산물품질관리원 농업경영체 등록을 기준으로 1만4천579농가에 연간 60만 원을 지급한다. 논, 밭 농업뿐 아니라 축산업, 임업까지 전체 농가를 대상으로 한다. 특히 해남군은 농업의 공익적 가치 등을 인정하는 측면에서 ‘농민수당’을 도입했고, 지난해 12월 21일 전국최초로 농민수당 지원제도와 관련 해남군 조례를 제정했다.

농민기본소득제도는 확산일로에 있다. 강진, 해남에 이어 장흥 순천 무안 함평, 전북 고창, 경기 여주, 경북 봉화와 상주, 충남 부여 등이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했거나 준비를 마친 곳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 전국 기초단체 대부분이 도입 논의를 적극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고 전남과 충남을 비롯해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방안 마련과 제도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편 경기도 농민수당 토론회에서 이종한 평택시의원은 “농업인은 점점 소수정예화가 될 수밖에 없다”며 농민기본소득을 도가 주도하고 평택시가 함께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근영 쌀전업농 화성시 회장은 “화성시는 농업인월급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예산상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농업직불제 개편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주 가톨릭농민회 수원교구연합회장은 “월 5만 원이 도움이 된다는 해남 농업인들에 공감한다”며 “축산 전업농으로서, 농민기본소득 논의에서 축산을 배제하지 말길 바란다”고 했다.

김충범 경기도 농업정책과장은 “왜 하지, 그 다음 어떻게 하지를 두고 깊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경영체 등록, 농업인의 정의, 주거지와 경작지 관할 문제 등 세부사항도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덕일 평택농업희망포럼 대표는 “농민기본소득이 농업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무기가 되리라 생각지는 않는다”면서도 “농업과 농촌이 소멸하거나 왜소화되는 측면들을 농민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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