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콩 볶는 것 같은 빗소리가 나자마자 아내가 비닐하우스 저쪽 끝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뱀이라도 나왔나싶어 부리나케 뛰어갔더니 “비 온다, 비 온다고.” 하면서 헤벌쭉 웃는군요.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반사적으로 약이 오릅니다. 제가 비 오는 날이면 대낮부터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노래나 흥얼거리기를 즐겼는데, 비닐하우스가 생기고서는 꼼짝없이 그 안에서 일해야 하니 고소하다는 웃음이겠습니다. 그게 무에 약까지 오를 일이냐 하시겠지만, 사연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대부분의 채소는 일 년 농사가 고작 6개월 만에 끝납니다. 제가 고심 끝에 작기를 앞뒤로 2개월 늘일 수 있는 비닐하우스 설치를 아내에게 제안하자 아내는 투자대비 경제성이 낮다고 반대했습니다. 갑론을박하던 차에 하우스 자재를 지원하겠다는 반가운 소식이 왔습니다. 문제는 설치였습니다. 기술자를 쓸 경우 자재와 맞먹는 비용이 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짓자.”
아내가 코웃음 치며 되받았습니다.

“개집 하나 못 지으시면서?”
사실입니다만,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베갯머리에서 아내의 이공계 유전자를 살금살금 일깨웠습니다. 아내에겐 그런 기질이 있거든요.

그리하여 겁도 없이 비닐하우스를 직접 짓게 되었습니다. 변변한 연장도 없이 우여곡절 끝에 뼈대를 세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농사일하랴 하우스 지으랴 매일 파김치가 되는 날들이었습니다.

괜한 일 벌여 사람 고생시킨다는 푸념까지 듣느라 저는 곤죽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이러구러 활대까지 올라가자 외양은 여느 하우스와 다르지 않아 오랜만에 두 부부가 뿌듯했는데, 공중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 걸 깨닫게 되자 난감했습니다. 별 수 없이 중방이라고 부르는, 기둥 사이를 가로지른 2미터 높이의 파이프 위에 파이프를 덧대놓고 작업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주섬주섬 올라서려는데 아내가 홀짝 올라서면서 저는 무거워서 파이프 휜다고 하더군요. 아내가 그 위에서 파이프들을 결속하는 조리개를 끼우는 중에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떨어지면 우얄라카노, 하우스 혼자 다 짓나, 누나?”

일손 거들겠다고 먼 길 온 큰처남이었습니다. 저는 야릇한 난처함에 휩싸였습니다. 하우스 파이프를 외줄 삼아 이리 걷고 저리 뛰는 아내가 참으로 야속하기도 했고요.
처남과 나란히 서서 아내를 올려다보며 침묵할 수만은 없어 나사 박느라고 가슴팍에 피멍이 들었다고 했더니 처남이 답했습니다.

“나사를 와 가슴으로 박는교?”
전동드릴을 쓰더라도 파이프에 나사박기는 무척 힘이 듭니다. 수백 개를 박자면 어깨 힘이 빠져 가슴으로 드릴을 밀어야 겨우 박힙니다. 이를 다 알 법한 처남이 그렇게 말을 하니 처남조차도 야속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하우스 공사가 끝나고 난 뒤 어느 날 처갓집 식구들과 조촐하게 삼겹살을 굽는데, 작은 처남이 헤실헤실 웃으며 연신 제 앞으로 익은 삼겹살을 놓아주며 살 좀 더 찌셔야 파이프 휜다고 놀리더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 하우스 나도 지었다니까!”
좌중의 웃음 끝에 문득 소쩍새가 앞산에서 울었습니다. 호된 시집살이를 상징하는 소쩍새 울음이 딱 제 심정이었습니다.
아무튼 엄연한 사실은 저의 비닐하우스 구상으로 우리 덤바우농장의 새 지평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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