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에서 패색이 짙은 팀은 침묵 속에서 경기를 합니다. 의기소침한 선수들은 서로의 시선을 피하거나 자꾸만 땅바닥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시간이 빨리 흘러 악몽 같은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듯 헛발질만 계속합니다. 농사일도 이와 같아 아내와 제가 머리를 맞대고 일하는 중에 정적이 감돌 때가 있습니다.

요즘처럼 밭이랑을 짓거나 여러 모종을 심는 일을 하루 내내 이어 하다보면 그렇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만, 심고 가꾸는 일은 대개 비슷한 일들의 연속이어서 지루하고 때론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코앞의 일에만 매달려 비지땀을 흘리는 게 한없이 초라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아내와 손발이 잘 안 맞는 상황이라도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향한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축구경기에서 팀워크가 깨졌을 때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유치한 말다툼 뒤에 다시 찾아드는, 어색하고 사람을 기운 빠지게 하는 이 침묵을 타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독도 없고 코치도 없는 농사현장에서 누군가의 주의나 독려, 응원을 기대할 수 없으니 그 침묵이 길어질 때가 많습니다. 바람 한 줄기를 틈타 땀을 식히며 먼 산과 들의 새로운 푸름을 깊게 바라본다거나, 깨알 같은 크기로 점점이 자신을 밝히는 냉이 꽃이나 꽃다지를 빤히 들여다보아도 가슴 속의 갑갑한 침묵은 안개처럼 무겁기만 합니다.


그럴 즈음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남세스러운 말씀이지만, 짝짓고 난 곤줄박이 부부가 둥지를 찾아다니며 내는 그런 울음을 아내가 노래합니다. 콧노래로 시작해서 흥얼거림으로 이어지는 아내의 가락입니다. 세상 모든 노래를 한 곡조로 통일하는 아내의 노래 솜씨입니다만, 그 웅얼거림이 제 가슴 속 안개를 흔들고 일렁이게 합니다. 고단한 일을 아기 다루듯이 살살 달래는 아내의 노래가 한줄기 햇살처럼 제 가슴을 개이게 하는 동안 저는 엉뚱하게 사진 한 장을 떠올립니다. 제 지갑에 품어둔, 저를 알지 못 하던 시절의 아내 사진입니다. 그 빛바랜 증명사진에는 긴장한 눈빛으로 살짝 억지웃음을 짓는 아내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제 코앞에서 호미질을 하건만 지금처럼 자신의 안으로 침잠한 아내는 사진 속의 아내로 돌아가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앳되고 싱그러운, 그리고 환한 모습으로 내일을 꿈꾸던 시절과 만나 자신을 위무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쩌다가 내가 이런 생고생이나 하고 있을까라는 신세한탄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 또한 사진 속 아내의 해말갰던 청춘에 너무 큰 짐을 지운 것 아닌가 자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내의 자존감을 업신여기는 생각입니다. 그저 아내의 곡조에 실려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아내에게서 사진 속 청춘을 한 갈피씩 읽어내는 게 남편의 도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요.

콧노래로 그윽해진 아내가 말합니다. “밥 먹고 하자, 막걸리도 한잔 하고.” 패색이 짙던 팀이 기적 같은 승리를 쟁취하듯 우리부부의 농사에도 역전승이 도래할 것입니다, 아내의 저 한마디 말이 이어지는 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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