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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바우 부부의 농사이야기-노력보다 중요한 것
2019년 05월 31일 (금) 15:56:17 경북 김천의 유기농사꾼 이근우 씨 .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아내 말에 따르면 정성이 부족하면 노력해봐야 결과는 빤하다는 군요. 그 말에 토를 달자면 할 말이 없지도 않으나 마늘밭에 서서 마늘쫑을 뽑을 때에는 제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마늘쫑이 그 뿌리까지 고스란히 잘 빠지면 그 끄트머리에 속살의 보푸라기 같은 것이 묻어나오는데요. 밑동이 새하얗고, 투명한 수액까지 촉촉해서 무척 싱그럽고 탐스럽습니다. 매콤하면서 달달한 향마저 은은해서 그걸 뽑는 일은 늘 즐겁고 신기합니다. 더구나 밑동까지 뽑히며 내는 “뽁” 소리는 성숙한 마늘의 탄성이라는 엉터리 같은 감정이입까지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저는 부끄럽게도 뽑아내는 데에 재간이 없는 편입니다. 제 솜씨로는 반 토막 나기 일쑤고, 잘해야 삼분의 이를 건지는 게 다반사입니다. 어쩌다 한 번 통째로 나올 때는 스스로 감탄하지만, 아내 손아귀에서 능청능청 늘어진 쫑 묶음을 보면서는 서리 맞아 시르죽은 풀 신세가 되고 맙니다. 제가 고작 서너 개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이 몇 다발씩 해치우는 아내입니다.
 
아내가 마늘쫑 뽑기에서 저만한 흥취를 느끼기 보다는 서둘러 일을 끝내자는 단순한 생각밖에 없다고 저는 단정합니다. 물론 아내는 이런 제 생각을 단칼에 베어버립니다.

“흥, 손 무디고 게으른 걸 합리화하는 거지. 흉내라도 내봐요, 제발.”

도대체 어떻게 하면 마늘쫑 뽑기에서 아내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진심으로 마늘쫑 뽑기를 잘 하고 싶은 제게 어떤 이는 그게 원체 여자 일인데 좀스럽게 왜 그러냐는 투로 말합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에 여자일 남자일이 따로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자일이라고 치부되는 대부분의 일들이 사실 강제된 측면이 강합니다. 성의 본원적 역할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이죠. 아무튼 저는 볕 바른 봄날, 풋풋한 마늘쫑에서 알싸한 흥취를 만끽하고 싶은데 재주가 없어 아내가 일으키는 “뽁” 소리에 자꾸 약만 오릅니다.

 용을 쓰느라 안 그래도 허리가 굳고 뒷목까지 뻣뻣해지는 판에 이렇게 잡아라, 힘 조절이 그게 뭐냐, 잘 자란 놈을 골라라 등등 잔소리까지 듣다보면 결국 부화가 나고 맙니다.
“됐네! 됐고, 밭이나 갈아야지.”
이러며 따놓은 걸 슬그머니 아내에게 쥐어주면 또 난리가 납니다. 이런 난쟁이 쫑으로 무슨 장아찌 담겠느냐, 나눠 먹기나 하겠는가, 성의가 없다는 둥 내빼는 제 등 뒤에 대고 한바탕 잔소리를 해댑니다.

저도 지지 않습니다. 만날 저 잘 하는 일 할라치면 유난히 사람을 들볶는다, 마을 할머니들은 우리보다 큰 밭떼기도 혼자서 후딱 해치우더라, 그 분들 짜증내고 성내는 거 한 번도 못 봤다 등등으로 맞섭니다.

올해는 이른 봄부터 폭염주의보까지 내리는 날씨라서 마늘밭에 서서 마늘쫑 뽑는 일이 여느 해와 다릅니다. 산들산들 봄이어야 일하기 좋아서 실팍한 농사를 준비할 터인데요. 멀찌감치 보아도 아내의 볼에 땀이 뚝뚝 듣는 게 보입니다.

 제 투정에 골이 난 아내를 그냥 두고 밭 갈러 갈 수는 없죠. “이따 저녁에 풋마늘 구워서 한잔 하자고.” “올핸 마늘쫑 장아찌 없어!” 대꾸를 하는 걸 보면 정말 화가 나지는 않았군요. 문득 마늘쫑 밑동이 늘 장화를 신어 하얀 아내의 종아리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헛웃음이 나옵니다. 헛기침을 몇 번 하고나서 아내에게 외쳤습니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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