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추는 약해서 묶어 세워줘야 하지요?” 어떤 분이 이렇게 자문하면서 과보호로 의존성이 높아져 약해빠졌다고 진단합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만, 저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나아야 하는데, 자칫 찢어질 순간이 많은 우리 부부가 떠오른 것입니다.

외줄기였던 고추가 자라 처음으로 두 갈래 줄기로 갈라지면서 고추가 왕성히 자라는 이맘때에는 바람과 비가 잦아 서둘러 지주를 박고 줄을 띄워 고추가 바로 서는 것을 도와야 합니다. 줄을 띄우는 목적이 고추의 쓰러짐을 막는 것인 만큼 들쭉날쭉 자라기 시작한 고추들 대부분을 양 갈래 줄 안쪽에 가둡니다. 그러자면 한 사람이 줄을 지주에 돌려나가면 뒷사람이 줄의 높낮이를 조정해야 합니다. 줄기가 무성하고, 고추도 많이 달려 능청 늘어진 상태에서 두, 세 번째 줄을 띄울 때에는 주의를 요합니다. 줄기나 이파리, 고추 열매가 다치지 않게 줄의 팽팽함과 각도를 잘 재가며 뒤에서 줄 안쪽으로 줄기를 여미는 이를 보조해야 합니다.

아내는 목적에 부합하는 규칙을 정하면 철석같이 그것을 지키는 성격입니다. 지주의 간격이나 줄띄움의 높낮이, 팽팽함의 정도까지 목적에 맞게 일일이 맞춥니다. 문제는 일 욕심이 많아 고추 한 그루, 한 그루를 관찰하여 병든 고추를 따내거나 뒤늦게 나타나는 곁순마저 따내며 나아가기 때문에 앞서서 줄을 잡은 제가 한참 벌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누가 이를 본다면 저는 멀뚱멀뚱 서 있고 일은 아내가 다 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고스란히 고추 줄기들의 무게가 얹혀있는 줄을 팽팽하게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듭니다. 줄 높이 따라서는 허리를 숙인 채 그래야 하므로 더욱 고달픈 것이죠.

“아, 좀. 그건 따로 하자.” 급기야 아내가 구멍 난 고추들을 까면서 담배나방 애벌레를 잡는 걸 보면 제 입에서는 절로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애벌레가 고추 열 개는 조이 망치는 거 모르남?” 말이야 바른 말이어서 저는 계속 벌을 섭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지는 않습니다. 허기가 져서 밥 먹고 일 하잘 때 재깍 일어서지 않고 미적거린다거나 한 번에 여러 가지 작업을 하는 통에 주위가 산만해진다는 말 등으로 불평을 쏟아냅니다. 아내의 반응은 빤합니다. 진득하게 일할 줄 모른다, 만날 딴 생각하느라 해 놓은 게 죄다 엉터리니 고치느라 힘들어 죽겠다는 식입니다. 모기에 한 방씩 쏘일라치면 아내는 쪼그리고 앉아서, 저는 멀뚱히 서서 누가 덜한 법 없는 말싸움을 질펀하게 벌입니다.

오늘 그 첫줄을 띄웠습니다. 고추가 어려 저 혼자서도 가능한 일입니다. 건너편에서 고추 밑동의 잡초를 뽑는 아내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백지장속담은 협동의 중요성을 일깨우자는 말입니다만, 부부에게는 찢어질 듯 팽팽한 의존성의 공유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지장 한쪽이 풀썩 땅바닥에 떨어지는 일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군요. 대신 줄띄우다 말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그러면서 흙부스러기를 아내 쪽으로 던졌습니다. 줄이 오선지가 되고 고추는 음표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제가 춤까지 곁들이자 흙먼지에 샐쭉하던 아내가 말갛게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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