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개미 좀 어떻게 해야 한다니까!”
아내가 참깨 씨를 밭이랑에 넣다가말고 새된 목소리로 외칩니다. 밭을 고르던 괭이를 내던지고 아내 곁으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까만 개미 한 마리가 하얀 참깨 씨 하나를 입에 물고 유유히 비닐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개미에게 분노하기보다는 득의양양한 표정입니다. 매년 참깨를 심을 때마다 낮은 발아율에 고민이 많았던 아내거든요.

날씨 탓을 하거나 눈 밝은 산새들 소행으로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자책하며 파종방식을 바꾸기도 하는 등 애를 써왔는데, 비로소 원흉을 발견한 기쁨마저 엿보였습니다.

잘록한 허리가 상징하듯 죽을 때까지 죽어라 일만 열심히 한다는 개미에게 바쳐진 성실과 근면, 협동의 이미지가 싹 가셨습니다. 무심히 가는 개미 한 마리가 달리 보였고, 그들의 족적에 행여 묻어 있을 범죄의 냄새를 맡느라 분주했습니다.

“이 날강도 놈들! 땅콩, 들깨, 해바라기 씨, 어쩌면 콩 새순도 이놈들이 다 따먹는 지도 몰라.”
“맞아. 고추에 진딧물도 옮기잖아.”
“그러게 말이야.”

우리부부는 이미 사라진 개미에 대고 주거니 받거니 성토를 이어갔습니다.
“아니, 이 너른 밭에 소매치기가 수천만 마리는 될 거 아냐?”
아내의 소매치기라는 말에는 급기야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새로 적발한 개미의 소행만이 아닙니다. 덤바우농장 주변에 사는 대부분의 짐승과 곤충들은 끊임없이 우리부부의 농작물을 위협합니다. 지금처럼 자두가 익을 무렵이면 고라니가 낮은 가지의 열매를 따먹는가 하면 불현듯 나타나는 멧돼지는 아예 가지를 찢어 부러트려놓고 탐식합니다.

새끼라도 이끌고 나타나면 해코지 할 수도 있어 슬슬 피해야만 합니다. 도시 한가운데에도 불쑥 나타는 녀석들이니 이런 첩첩산중이야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땅속도 다르지 않아 두더지가 숭숭 낸 굴 때문에 뿌리가 말라 작물이 시들기 일쑤입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김매어진 밭이 깔끔한 밥상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농작물이 이미 그들의 주 식량원이 되었기에 파리 쫓듯 손사래 몇 번으로 피해를 막을 도리도 없습니다.


짐승들의 이러한 기식 습관은 농사짓는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짐승들 역시 저들의 형편과 처지에 맞는 생활의 틀을 짜고, 그렇게 배타적으로 살 뿐인 것이죠. 따지고 보면 해충이니 유해 조수니 하는 말들은 사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일 뿐 그들의 속성과는 무관한 말인 것입니다.

 “개미야, 너 먹을 건 저기 농막 뒤안밭, 우엉 잎에 올려놓았거든? 알았지? 친구들한테도 그리 전해라. 모자라면 언제든 말 하고. 그리고 말이야. 진딧물 뒤나 빨지 마. 더럽잖아. 설탕물 좀 개서 매일 내놓을게. 알았지?”

개미와 말이 통하면 아내가 이렇게 말할 텐데요. 아내는 모든 생명체들이 의사소통 하는, 그런 날이 오면 평화보다는 전쟁이 올 거라는군요. 끼리끼리 살며 서로 다른 삶에 지문을 새기는 게 그들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운명일지도 모르겠군요. 예전에 아내와 개울에 발 담그고 놀다가 합동으로 지었던 짧은, 동시 아닌 동시가 떠오릅니다.

 ‘시냇물이 조약돌에게 말했습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자꾸 야위어 가는구나. 조약돌이 시냇물에게 말했습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여전히 푸르게 멍들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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