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제게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해마다 3, 4월이면 덤바우 아랫자락 저수지로 날아드는 청둥오리 한 무리를 기다립니다. 잊은 듯 지내다가 줄지어 헤엄치며 물낯에 금을 긋는 녀석들과 재회할 때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매양 보는 산과 들의 풀과 나무들의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확연히 보입니다. 눈이 밝아지는 것이죠. 살아있는 것들이 해마다 같은 듯 다른 모양으로 어우러지는 풍경이 언제나 새롭습니다.
장마가 지고 더위가 덤바우 가슴팍까지 뜨겁게 달구는 시절로 접어들 때면 가려움 같은 제 조바심을 아내가 달랩니다.

“기다려 봐. 올 거야. 왜 안 오겠어?”

우리 밭 어딘가에서 한 철을 나는 게 분명해 보이는 두꺼비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조바심입니다.
제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만큼 크고 펑퍼짐한 그 두꺼비를 아내는 ‘뚜벅이’라고 부릅니다. 막상 뚜벅이가 나타나면 “야, 너 왜 이제 왔어! 거기 좀 있어 봐.”라면서 반기는 건 아내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한마디 합니다.

“이렇게 또 한 고비가 넘어가네.”

지난해보다 조금 더 자란 듯 등짝의 우락부락한 황갈색 돌기가 더 우직해진 것처럼도 보였습니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슬금슬금 피하면서도 데굴데굴 눈을 굴리며 엿보는 태도였는데요.

“우리 낭군도 너처럼 좀 듬직해지면 좋겠다.”
아내의 이 말에 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죠.
“나도 너처럼 혼자서 가고 싶다, 적막하게.”
철따라 오가는 것들은 이밖에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른 봄 ‘삐 비’ 지저귀며 농막 주위를 기웃거리다가 벽 틈에 둥지를 짓고 알을 까는 곤줄박이가 있는가 하면, 홈통 안에다가 둥지를 트는 새도 있습니다.

멀쩡하던 땅을 푹푹 꺼지게 만드는 두더지도 있고, 시퍼런 물뱀도 가끔 출몰하고, 날갯짓이 소란한 호박벌도 나무기둥에 숭숭 구멍을 내기도 합니다.

하루살이와 나방, 풍뎅이가 먼지처럼 몰려들 때가 있고, 요즘은 맵기가 달군 불침보다 더 독한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군요. 어쨌거나 우리부부의 그리움과 기다림에 짝을 맞추어 다가섰다가 멀어지기를 산바람 골바람 불듯하니 적적할 틈이 없습니다. 자연의 이웃이나 친구로 스며들었다는 뿌듯함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 고비, 두 고비 시간의 언덕을 넘어갈 때마다 아내는 먼 산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덤바우에서 겪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탄성을 발하면서도 그 끝에 한숨이 묻어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그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골에서 농사짓기는 관계의 단절을 감수해야 하고, 친한 사람들과의 격절을 아파해야 합니다. 저 역시도 아내와 다를 바 없으나 그저 무디게 추억을 기리다가 체념할 뿐입니다. 아내는 좀 다릅니다. 요즘처럼 열매채소가 주렁주렁 달리면 정성스레 꾸러미를 꾸립니다.

작은 박스에 풋고추, 호박,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골고루 담는 모습이 제게는 그리운 이들에게 편지라도 쓰는 자세로 보입니다.
“흔해빠진 것들이지만, 예전에 함께 먹었던 것들이잖아.”

택배 박스를 봉하면서 아내가 하는 혼잣말입니다. 언제든 아내의 친구들을 만나면 그 때 보내준 채소들은, 그렇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 아내의 일 년이 바쳐졌다고 말해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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