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목 때문에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더위를 이기는 법은 없습니다. 아내가 호미를 내동댕이치고 뽕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나 헐떡일 정도면 8월 폭염에 대처하는 법은 최대한 비겁하게 재빨리 피하는 것이 상책인 듯싶습니다.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겨 먹으려고 하지 마.”

부부 사이에 언쟁이 벌어질 때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농기계의 볼트를 너무 세게 조이거나, 막무가내로 밭일에 힘을 탕진하거나, 사소한 일에 정력을 낭비할 때에도 하는 말입니다. 아내는 과연 그러한 과유불급을 얼마나 잘 실천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말이 필요할 때 놓치지 않고 한다는 것이 제게는 경계가 되어 소중합니다.  

이기고 지는 것에 관한 한 농민들은 이골이 났습니다. 농사만큼 인위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기술이 이만큼 발전했는데도 일정 규모 이상의 농사를 짓다보면 자연과 자연현상에 치여 성과를 못 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농사는 인류의 최초이자 최후의 자연에 대한 도전, 아니 저항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막걸리 한잔하면서 이런 투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면 놀랍게도 아내는 토를 달거나 하지 않습니다. “(자연을) 이겨 먹으려 하지 마.”라는 식의 말을 기대하는데 말입니다.

어디 시원한 데라도 가서 대낮 뙤약볕을 피했다가 오려고 마을길을 내려가는데, 농로와 개울 사이 밭이랄 것도 없는 세모진 풀밭에 마을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계십니다.

“어머나, 또 저러신다.”
아내가 혀를 한 번 차고 나서 대뜸 새된 소리를 내지릅니다.
“어머니, 날도 더운데!”
그러자 할머니는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변명하십니다.
“그쟈, 그렇지. 내년부터는 이거 안 해야겠다. 풀 때미 안 되겠네.”

자세히 보니 풀 사이로 다문다문 심은 들깨 이파리가 보입니다. 할머니는 작년에도 이맘때쯤 ‘내년부터는 이거 안 해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젊은 우리도 못 견디겠는데, 그러시다 쓰러진다며 이러시는 거 아드님도 아냐는 제 말은 아내가 제 옆구리를 찔러 막았습니다. 대신 운전 중에라도 더우면 마시려고 가져온 찬 음료수를 내밀며 가져다 드리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한 손에는 한 움큼의 풀을 쥐고, 다른 손에는 음료수를 받아든 채 구부정하게 서서 헤벌쭉 웃습니다. 제가 재우쳐 대낮에는 댁에서 쉬시라고, 큰일 난다고 걱정을 했더니,“집이 더 더버.” 이러십니다.

더위를 피해 뙤약볕으로 나오셨다니 할 말을 잃고 맙니다.
“그냥, 같이 풀 매드릴까?”
제가 큰 맘 먹고 이렇게 말했더니 아내가 실소를 터트립니다. 저도 따라 웃었습니다.

“근데, 음료수 뚜껑 따드렸어?”
“아니.”
“그거 드시지도 않겠네.”

저는 뜨끔했습니다. 아내는 마을 할머니의 완고한 삶의 방식에 살짝 끼어드는 법을 알고 있군요. 저는 찬 음료를 시원하게 마시는 할머니를 상상하며 만족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내년부터는 이거 안 해야겠다.’는 할머니의 다짐이 꼭 실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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