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섰습니다. 고추밭의 새빨간 고추가 제격이고, 한껏 몸을 불려 뚱뚱한 점박이 참개구리의 거동이 또 가을을 느끼게 합니다. 미구에 닥칠 겨울잠을 일찌감치 채비한 모습이 보기 좋다가도 괜히 샘이 납니다. 가을걷이하느라 하루 내내 북새통을 벌이는 아내와 견주어 보면 얄밉기도 하고요.

사실, 아내와 제게 2019년 가을은 각별합니다. 십 오년간 애면글면, 때론 좌충우돌 지어온 농사를 뭉뚱그려 새 판을 짜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펼칠 우리부부 미래 농업의 기반을 닦자고 결의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노후 농사대책을 세우자는 것이죠. 마을의 노인 농민들은 대개 어린 시절부터 농사로 잔뼈가 굵은 분들이라 팔순에도 웬만한 농사일에는 끄떡도 없습니다.

반면 우리부부는 늦깎이로 세세한 준비 없이 덜컥 뛰어든 농사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밑천이 두둑해지기는커녕 젖 먹은 힘까지 탈탈 털리는 지경입니다. 농사를 고령에 맞게 재편하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도시인들이 노후 경제활동 설계에서 골머리를 앓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적정 규모의 합리적인 생산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노후에 적합한 영농생활을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나이 들면 텃밭이나 일궈야지, 뭐.” 저는 아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에서 착안하여 노후 농업 설계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면 텃밭농법을 응용하자고 제가 제안했습니다. 말만 앞서지 늘 실행력이 부족한 남편의 말이니 아내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수천 평에 달하는 농사를 텃밭 운영하듯 수월하게 경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노후 농사의 맥을 제대로 짚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다만, 개선이 아니라 혁신이 필요한 고비에 서 있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농막 앞의 틀밭을 가다듬다가 제가 외쳤습니다. “틀밭으로 가자!” 틀밭은 ‘쿠바식 텃밭’으로 알려진 경작 형태로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자투리 땅을 효율적으로 농사에 활용하던 방식입니다. 사방을 막고 그 안의 흙을 약간 북돋아 밭으로 쓰는 이 농법은 몇 가지 전제조건만 충족하면 밭에 들이는 노동을 대폭 절약할 수 있습니다. 목적에 맞게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만, 밭갈이가 필요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노후에 적합한 형태입니다.

노후 틀밭경영에 아내도 내심 만족하는 것 같아 열심히 부수적인 인프라 구상을 밝히는 와중에 아내가 불쑥 한 마디 합니다. “이거 말이야. 일인분에도 적합할까?” 부부 감수성이 부족한 아내인지라 홀로 짓는 농사를 저렇게 말하는 군요. 우리 부부가 농사라는 먼 길을 하루살이처럼 살아왔습니다만, 그 모든 하루는 늘 두 사람의 ‘살이’였습니다.
 “일인분은 안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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