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해서 이 밭, 저 밭을 둘러보던 중에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시험을 치를 때면 책상 가운데에 책가방을 올려놓고 그것도 모자라 두 팔로 답안지를 감싸 안고 문제를 풀었습니다. 누가 볼세라 꽁꽁 싸매고 답안을 작성했는데, 다들 자신의 답을 도둑질 당할까봐 그랬을 것입니다. 저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늘 노느라고 공부를 등한시한 까닭에 오답을 들킬까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짝꿍과 답안지를 바꿔들고 채점을 하면 다 드러날 오답인데도 자신 없는 답을 쓰는 순간을 들키는 게 그렇게도 싫었던 모양입니다.

함께 밭을 둘러보던 아내가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풀 관리 안 한 곳, 웃거름을 건너 뛴 고추밭, 수선했어야 할 하우스 지지대 등을 연신 지적하니까 속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옵니다. 오답을 들켰을 때에 나타나던 부끄러움과 이어지는 짜증입니다. 아내가 기어이 밭 귀퉁이에서 벌겋게 대가리가 녹슬어가는, 언제 썼는지 기억도 까마득한 망치를 적발해내면 마침내 폭발하고 맙니다. “이 밭, 나만 다 돌보는 거야?!” 제가 이렇게 소심합니다. 어려서나 지금이나 자신에서 비롯되는 흠결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늦깎이로 농사를 지으며 이런 성향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반성을 해도 이내 도루묵이 되고마니 자책도 습관이 될 지경입니다. “당신은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난 편이야. 그런데 결벽증이 있어서 탈이야.” 아내가 가끔 하는 말입니다. 농사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숱한 문제들의 근원을 따지는 습성이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시험을 치르다가 성질을 못 이겨 자신 없었던 여러 답을 까맣게 뭉갠 채 답안지를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선생님에게 몇 대 얻어터졌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한 토막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한 번 틀린 것은 고칠 수 없지만, 틀린 곳에서 출발해야만 바른 곳에 이른다.”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틀린 것 자체를 잘 인정하지 않고, 이미 지난 것을 고치려 드는 돈키호테 기질이 강합니다.

사실, 농사는 가릴 수도 없고 남몰래 쌓았던 성과를 갑자기 자랑할 수 있는 일도 못됩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한 해의 격랑 모두가 고스란히 남아 과거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이라면 누구나 그 중압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자 치른 시험의 점수를 확인하는 계절입니다. 덤바우를 휘 둘러보고 나서 가늠해보면 기말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숨을 내쉬는데, 아내가 불쑥 말합니다. “내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래, 그렇지? 일찌감치 확 밀어버리고 내년 농사 준비하자.” 제가 넙죽 답을 하자 아내가 쏴 부칩니다. “선생님! 어쩜 그렇게 하루살이 정신만 가득해?!”

아내의 말은 사과참외, 먹골참외, 개구리참외, 흑수박 등등 올해 장만한 토종 씨앗을 어서 뿌리고 싶다는 뜻이었습니다. 덤바우를 토종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하루 빨리 이루고 싶다는 것이죠. 매년 덤바우를 백지로 만들어 새로 시작하고 싶은 제 쳇바퀴 마인드 하고는 질적으로 다르군요.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이 새삼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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