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이 대개 그렇습니다만, 농사는 유독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토양을 돌보거나, 심고 거두는 작업이 겹치기 일쑤입니다. 이런 저런 잡다한 일까지 많아 질정 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맥이 탁 풀립니다. 아내와 제가 거느린 온 밭이 한꺼번에 등에 실린 것 같은 육중한 무게가 버겁기도 하고요.

마을의 어르신 농민들이 밭에서 펴는 함축적이고 간결한 농사가 한없이 부러운 순간입니다. 농업의 맥락을 이해하여 일종의 ‘문리’가 트인 그 분들의 짜임새 있는 움직임이, 한편으로는 우리 부부를 우울하게 합니다.흔히 전문가라고 칭할 수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일의 작동 원리에 관하여 잘 이해할 뿐 아니라 숙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익숙하다고 꼭 잘 하는 건 아니야.”

아내는 이런 식으로 전문가의 단점을 얘기하는 군요.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상은 가상하다니까, “당신처럼 농사를 무슨 예술처럼 생각하는 것도 폐단이지.”라는 말로 제 아픈 곳을 찌릅니다. 아내가 말하는 예술의 의미는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곁가지에 쓸데없이 몰두하는 제 태도를 이릅니다. 예술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방식이라고 중언부언 제가 우기면 아내의 답은 빤합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가을바람 더 심해지기 전에 고추, 참깨 받쳐줄 줄이나 하나 더 띄우시지?”

지금부터 초겨울까지 우리부부의 덤바우농장 최대의 이슈는 퇴비입니다. 전문가나 농민 누구나 농업의 시작이자 끝임을 공인하는 토양관리에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현재의 토양상태에 최적화된 퇴비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듬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할지도 모를 일이라 신경이 곤두섭니다. 자연스럽게 아내와의 다툼도 잦아집니다. 퇴비에 쓰려고 아내가 이곳저곳에 쌓아둔 풀 더미도 퇴비의 재료이자 말다툼의 불쏘시개가 됩니다. 아내가 원체 실천적 성격이라 그런 시각에서 보면 저는 굼뜨기 짝이 없는 나무늘보라서 그렇습니다. 아내는 어서, 빨리 하자는 쪽이고 저는 따져서 제대로 하자는 편입니다. 늘 그렇습니다. 아내는 성급하고 저는 신중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막상 바쁜 농사와중에서는 아내가 더 옳습니다. 제가 고민하는 사이 아내는 이미 풀 더미를 쌓아놓고 있는 것이 증거인 것이죠. 아내는 저 풀 더미로 저를 윽박지르는 셈입니다. ‘퇴비는 말로 만드는 게 아니거든.’매년 9월은 야구로 치면 9회 말과 흡사합니다. 다툼이 잦기는 해도 같은 편이 되어서 농사라는 경기를 잘 마쳐야 합니다.

올해 퇴비는 소량으로 여러 더미를 만들어 밭마다 비치해 두기로 아내와 어렵사리 합의했습니다. 앞으로 그 과정에서 여느 때처럼 분란이 있기는 하겠습니다.
어느 해나 마찬가지이지만, 올해도 이룬 것보다는 실패했거나 아쉬움이 남는 농사이기에 투정과 다툼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도 있잖아.”
제가 결기와 투지를 담아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보기 좋게 되받아 칩니다.
“자기는 지고 있는 편처럼 말하네. 난 이기고 있는 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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