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호미는 배가 불룩한데 비해 가는 호미는 갸름하고 끝이 거의 직각으로 꺾여 있는 모양입니다. 모종 심을 자리에 홈을 내는 데에 요긴하게 쓰입니다. 밭 이곳저곳에 두고 쓸 작정으로 세 개나 장만했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아내가 짜증을 낼만도 합니다.
마치 바둑 두는 이들이 복기를 하듯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마지막으로 호미를 썼던 자리를 열심히 떠올립니다. 제 딴엔 간신히 기억해 내서 한 장소를 외쳤더니 아내가 그건 며칠 전이었다고, 그 후에 다른 곳에서도 썼다고 툴툴댑니다. 이쯤 되면 별 수 없습니다.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격으로 호미 수색에 나서며 제가 한마디 합니다. “쓰고 나면 농막이나 창고에 가져다 놓아야지.” 말을 뱉어놓고는 아차 합니다. 다행히 아내는 못들은 듯 휘적휘적 비닐하우스가 있는 밭으로 가버리는 군요. 하나마나 한 소리나 한 게 머쓱합니다.
덤바우는 평지가 아닙니다. 산비탈에 가까워 모든 밭이 계단식 다락밭입니다. 묏채가 모든 밭을 양분하며 낮게 흘러내려 일을 하려면 둘러 다녀야 해서 밭 사이의 거리가 꽤 되는 편입니다. 이 밭 저 밭으로 셀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농사가 아니라 등산이라는 푸념이 절로 나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베이스 캠프격인 모든 밭의 맨 위에 위치한 농막에 두고 온 것이라도 있을라치면 아주 고약합니다. 지금처럼 행방이 묘연한 손바닥만 한 호미를 물색하자고 온 밭을 헤매는 건 차라리 고난에 가깝습니다.
저는 비닐하우스의 반대편 위 다락, 다듬다 만 양파와 마늘 심을 밭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밭고랑에는 놓아둔 풀이 무성해서 맨 바닥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더듬더듬 몇 군데 짚어보다가 밭가에 둔 공구함에서 낫을 꺼내들었습니다. 어차피 베 눕힐 풀들인지라 정리하다 보면 호미가 불쑥 나타날 수도 있겠습니다.
한참 그러다 보니 호미 수색을 깜빡했나 봅니다. 아내가 밭 비탈을 오르며 막대기 하나를 흔들며 말합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야지, 뭐.” 막대기로 구멍을 내가며 가을 채소 모종을 뚝딱 심고 온 모양입니다. 저는 답례로 낫을 허공에 몇 번 흔들어 보였습니다.
잃는 건 별로 없는데 잊는 게 너무 많은 생활입니다. 따져보면 부끄럽습니다. 자동차 열쇠 없이 차에 오르는 건 예사고, 밭가에 방치한 휴대폰을 강아지가 물어뜯은 바람에 망가진 적도 있습니다. 밭을 갈다보면 외짝 목장갑이 수두룩하게 발굴되는가 하면, 몇 해 전 잃었던 장도리가 새빨갛게 녹슨 모습으로 불뚝 일어서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금빛 도장이 된 시계가 나온 적도 있는데, 다행히 우리 것이 아니었습니다. 덤바우의 오래 전 주인도 우리부부만큼이나 바쁘고 고된 생활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농사는 진득하게 지어야 합니다. 서둘러서는 곤란해서 머릿속에 ‘천천히, 조금씩, 자주’라는 말을 새기고 또 새겨야 합니다. 늘 바쁜 사람이야말로 정말 게으른 사람이라는 말도 있듯이 형편과 때를 잘 가리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저나 아내나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매양 서둘다가 엎어집니다. 아내는 치매증상일지도 모르겠다는데, 제가 보기에는 일에 적합한 습관을 아직 익히지 못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평생 밭 뒤적거리면 고대 유물도 발굴하게 될지도 몰라.” “맞아. 유물들이 말이야, 죄다 옛적 분실물들일지도 모르지.” 호미는 까맣게 잊었는지 아내가 키득키득 웃으며 풀을 베 눕히는 군요.
경북 김천의 유기농사꾼 이근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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