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생활 행복 가꿔가는 당찬 여성농업인

  
 
  
 
전남 화순군의 생활개선회장을 지내고 올해부터 전라남도생활개선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박민자 회장(45세·화순군 도곡면)은 그 표정과 몸짓에서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앞으로 2년간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는 박 회장을 만나 한 가정의 아내와 어머니로, 생활개선회원으로, 여성농업인으로 걸어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생의 동반자 만나
전남 화순군 토박이인 박민자씨는 20대 초반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농협에서 근무하던 중 연애 반 중매 반으로 도로공사에 근무하는 남편 이병인(47)씨를 만나 23살 때 결혼했다.

“남편과는 화순의 아랫마을 윗마을에서 근무했는데 출·퇴근길에 지나치면서 눈빛이 오고 가고 서로 좋은 감정만 가졌었죠.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차 한잔하자고 말을 거는데 눈빛에서 진심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연애를 시작했죠.”

남편과 연애 중에 시어머니가 간경화로 투병하자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8남매의 막내인 남편의 뜻에 따라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간호를 시작해 18년 가까이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건강하게 더 살게한 효부이기도 했다.

그녀는 원래 작은 시골에서만 자란 터라 큰 도시로 시집가서 멋지게 살아갈 꿈을 갖고 있었다. 비록 화순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만나 큰 도시로 나가진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 너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여동생 잃고 실의에 빠져
1990년에 농촌지도소의 지도사업으로 판넬 느타리버섯 재배사업을 시작했다. 그녀는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할 땐 공부하고 교육을 받는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교육을 받는 예는 잘 없었어요. 기술센터나 농업교육장을 가도 전부다 남자들만 있어서 그 틈바구니에 껴서 교육을 받았죠. 그래도 전국적으로 버섯 관련된 교육은 거의 다 받으러 다녔어요.”

노력하고 애쓴 보람이 있었는지 힘들었지만 버섯사업은 매출이 꾸준히 오르고 판매망이 확장되는 등 번창했다. 이후 복숭아농사도 시작해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녀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은 원래 여동생이 그녀로부터 땅을 임대해 건물을 짓고 운영했다. 하지만 음식점을 1년정도 한 시점에 여동생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건물값만 치르고 그녀가 인수했다. 지금은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어 버섯농사는 잠시 중단하고 복숭아농사와 음식점에만 매진하고 있다. 처음에 1년만 하겠다고 생각했던 음식점은 벌써 8년이 지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여동생의 사고 전에는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하지만 동생이 그렇게 떠나고 난 뒤에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자신감을 잃고 실의에 빠지기도 했었어요.”


◇회원 한 명 없던 면회 군 단위 조직으로 키워
지난 1990년 화순군생활개선회는 당시 농촌지도소 새마을 부녀회에 속해 독립되지 못하고 귀속된 단체였다.

“결혼하고도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여성농업인 단체여서 등록을 하고 교육도 받으면서 농촌여성들에게는 꼭 필요한 조직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이옥선 계장님하고 적극적으로 뛰어 한 명도 없던 생활개선회 회원을 1년에 30명으로 늘였어요.”

처음에는 서로의 안부나 연락만 주고받는 정도의 일만 했지만 점차 회원이 늘고 면단위 그룹이 되자 면회장을 맡았다. 그리고 1992년에 초대 화순군 생활개선회장을 맡았다.
모든 것은 주위 선·후배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으며 20대~50대까지 다양한 층이 있어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다.

배움의 욕심도 많은 그녀는 2002년 조선대학교 사회교육원 21세기 지도자과정, 레크레이션 2급 과정을 수료하고 지난해부터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홍보 자원봉사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랑스런 여성농업인 장관표창, 효부상, 장한어머니상, 평등부부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

◇전남생활개선회장 당선
“선거 출마에는 큰 욕심이 없었는데 주위에 보는 사람마다 박민자씨 아니면 안된다며 격려와 자신감을 심어줘 출마를 결심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왕 결심한 거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 했었어요.”

그녀는 지난 달 17일 개최된 연시총회에서 제 7대 전라남도생활개선회장 선거에 출마해 도 산하 22개 시군의 생활개선회와 1만2천여명의 회원을 대표하는 회장으로 당선됐다.

생활개선회 임원으로는 군회장을 비롯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전남생활개선회 총무도 했었고,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음식점이나 가정생활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 도회장직에는 뜻을 두지 않았던 그녀였다.

“2007년도에는 농촌여성 지도자인 생활개선회의 위상을 높일거에요. 또 친환경 유기농업 실천, 친환경농업 선진국 해외 연수기회 확대, 전남에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농업박람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농촌여성들의 농가소득 증대에 앞장 설 계획입니다.”

◇“항상 봉사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농사 하나는 참 잘 짓는 것 같다”는 그녀는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 2남 2녀의 자녀들에게 특별한 교육을 시켜준 것도 아닌데 큰 말썽없이 모두 바르고 건강하게 잘 커주어서 고맙단다. “자식 교육은 부모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교육인 것 같다”면서 어느새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군복중인 큰 아들 이훈기(23)씨는 서울의 명문대에 재학 중이고, 셋째도 서울의 대학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들한테 손해 본적도 많고 대가를 보상받지 못한 것도 많아요. 그런데 처음에는 내가 손해 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항상 더 많은 것들이 저한테 돌아오더라고요. 그것이 아마 항상 봉사하는 마음을 늘 가지려고 해서 그런가봐요.”

그러나 대외활동 때문에 만사를 제쳐놓고 나갈 땐 내 생활이 먼저인데 내가 왜 이러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고 한다.

“할 수 있다고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시도를 해보는 성격이라 실패도 많이 하고 성공도 하지만 시도해보지도 않으면 결과도 모르잖아요. 앞으로 2년 동안 가정생활도, 생활개선회 활동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열심히 해서 꼭 좋은 결과를 낼 것입니다.”

신임 박민자 회장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서 전라남도생활개선회의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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