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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데올로기, 격랑 속에 스러진 비운의 여인… 김수임
해방정국 뒤흔든 여간첩 김수임 사건…그녀의 진실은?
2008년 04월 02일 (수) 11:55:28 박재호 pjaehool@nongupin.co.kr
  
 
 ▲ 김수임이 1930년대말 세브란스 병원 근무 당시 자신의 치과과장 붓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 
 
종달새
1950년 6월 15일.
한국현대사의 최대 비극 6.25전쟁이 터지기 꼭 열흘 전이었다.
초여름답지 않은 후텁지근함에 숨까지 턱턱 막히는 무더운 날씨였다.
그러나 ‘간첩 김수임’ 사건에 대한 최종판결을 기다리는 군사재판소 재판정에는 서늘한 냉기마저 흐르고 있었다.

장안을 발칵 뒤집은 김수임사건은 국내를 넘어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김수임은 종달새라는 별명처럼 밝고 명랑하고 영혼이 투명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단지 사랑에 몰두해 자기 자신이 했던 일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가치판단도 못했던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두고 보지 못했으며 늘 성경을 읽고 명상하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김수임은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절대로 고의로 간첩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디 재판장님의 관대한 판결을 고대하고 또 고대합니다.“

이화여전 학우로 오랜 친구인 모윤숙 시인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재판부에 호소했다.
그러나 재판장 김백일 육군대령의 판결은 준엄하고 냉정했다.
“한 남성에 대한 사랑이 지고지순했다 해도 그것이 조국을 배신하는 간첩행위의 극악한 죄를 정당화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그를 사랑한 죄밖에는 없어. 나는 내 동포에게 총부리를 겨눈 적도 없고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지도 않았어. 다만 죽을 위기에 처한 내 님을 살리고 싶었을 뿐이야...’ 그러나 수임의 절규는 가슴 속에서만 메아리 칠 뿐이었다.
수임의 머리속에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지난(至難)
“잘 살아야한다.....불쌍한 것. 하지만 여기서 굶어죽느니 구박받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해도 밥숟가락이나 목구멍에 넘기고 사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어서 가거라 어서...”

11살 어린 딸을 민며느리로 보내는 어미의 가슴은 찢어졌다.
말이 며느리지 사실상 종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어미는 잘 알고 있다.
‘잘 살아야한다...잘 살아야한다....그저 살아야하느니라....’

수임은 오히려 담대했다.
‘부지런히 일하고 남편을 잘 모시면 시집 식구들도 나를 예뻐하실 거야. 잘 할 자신 있어. 사랑받을 자신 있다구...’

그러나 어린 수임을 기다리는 것은 네 살 연상 남편의 무차별 폭력과 시집식구들의 지독한 냉대뿐이었다.
종일 학대와 집안일에 농사일 까지 어린 수임이 감당하기 힘든 중노동이 이어졌다.
파김치가 된 몸을 하고 방에 들어서면 무식하고 막 되먹은 남편의 폭언과 폭력이 이어졌다.

‘아~ 너무 힘들어. 밥이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수임의 가시밭길 같은 고통의 끝은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어느 날 늦은 밤, 술에 잔뜩 취한 남편이 문짝을 부술 듯이 걷어차고 들어왔다.
남편은 다짜고짜 수임에게 달려들어 자리에 밀치고 치마 섶을 올리고는 일방적인 자기 욕심만을 채워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이유도 없이 수임의 얼굴을 마구 때리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 말대꾸라도 한다 치면 남편은 새벽녘이 올 때까지 매질을 그치지 않을 것을 수임은 잘 알고 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또 지른다 해도 말려주지도 않는 시집 식구들 이었다.

“오죽하면 저 착한 아이가 그렇게 때리겠나....아! 뭐해? 일 안하고!”
이런 면박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

새 하늘, 새 땅
그날 새벽, 기진해 질 때까지 수임을 구타한 남편이 골아 떨어졌을 때 수임은 조용히 보따리를 쌌다.
그래봐야 옷가지 몇 벌인 얄팍한 보따리는 수임이 가진 모든 것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날 거야. 어디 가서 거지로 살더라도 여기보다는 낫겠지’

수임은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고 깜깜한 새벽길을 마냥 걸어 대처로 향했다.
칠흑 같은 어둠처럼 수임의 앞날도 그저 깜깜할 뿐이었다.
그래도 수임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이 자유롭고 싱그러운 기분.... 이렇게 마냥 걷기만 하다가 죽어도 좋아’
그러나 마냥 걷기만 할 수는 없는 법. 수임의 다리는 퉁퉁 붓고 몸은 무거워만 졌다.

몇 끼 째 굶은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어 의식마저 몽롱했다.
뾰족한 탑에 달려있는 십자가가 어렴풋이 보이는가 싶더니 정신이 아득해지며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가는 듯 다리가 풀렸다. 수임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여...여기가...어디죠?”
“정신이 좀 들었어요? 아유 선교사님이 발견하지 않으셨으면 큰 변 당할 뻔 했어요. 정말 주님의 은총이지요. 호호호. 조금만 늦었더라도 어쩔 뻔했대? 아유 생각 만해도 아찔하네.”

수다스러운 여집사의 얼굴 뒤로 한 서양선교사의 인자한 미소가 보였다.
며칠 후 자리에서 일어난 수임은 교회에 머물며 일을 도왔다.
그곳에서 글도 배우고 야학을 통해 신학문을 접했다.

수임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지식을 습득해 나갔다. 놀라운 학습 성취도를 보였다.
허드렛일에서 교회행정보조까지 수임의 야무진 일솜씨는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선교사는 수임의 비상한 머리가 아까웠다. 그는 수임에게 서울로 가서 공부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수임 양. 서울로 가서 신학문을 배우는 거야. 배우고 익힌 신여성으로 거듭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못 배운 사람들을 계몽하라. 그것이 너의 조국 조선을 위하는 일이다.”
수임은 선교사의 도움으로 상경했고 이화여전에 입학할 수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평생의 벗이었던 모윤숙을 만난다.

“지금의 내 생활은 그야말로 새 하늘과 새 땅이야. 신천지에 와 있는 거야. 나는 정말 축복받은 아이야.”
어린 시절의 암울했던 시절을 모두 잊은 듯 수임은 명랑했고 밝았다.
“후훗~ 하루 종일 종알종알 종달새 같아” 윤숙은 수임을 종달새라고 불렀다.

첫사랑
수임은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영어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쳇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데...너 그렇게 영어를 빨리 습득하는 요령이 뭐니? 어디 서양 애인이라도 숨겨놓고 있는 것 아냐?”

“선교사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그래. 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지 말고 자꾸 부딪히는 거야.”
“그건 그렇고 오늘 YMCA 강당에서 독서토론회가 있는데 가보지 않을래?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여성이 쓴 ‘자본축적론’에 대한 토론이라는데 여성이 쓴 책이라니 더 궁금해.”
토론회의 열기는 뜨거웠다.

젊은 학도들은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수임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남자답게 생긴 ‘이강국’이라는 청년이었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논지는 정연했으며 해박한 지식에 만만치 않은 카리스마와 내공이 느껴졌다. 그의 손짓 하나하나, 음성 한마디 한마디가 수임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다.

윤숙은 그런 수임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토론회가 끝나고 윤숙은 수임의 손을 끌고 이강국 앞으로 갔다.“자 서로 인사해요. 이 친구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김수임이고....이쪽은 경성제대 법학부에 다니는 이강국 씨......뭐야? 벌써 서로 반한거야? 왜 말들이 없어?”

서로 괜시리 얼굴이 붉어졌다. 좀 전의 그 격정적인 이강국은 어디로 간 것일까?
수임과 그녀의 운명의 남자 이강국의 첫 만남이었다.
며칠이 흘렀다.
“수임아. 일전의 그 이강국 씨 말이야.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고 말았대. 면회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어. 같이 가지 않으련?”

수임은 윤숙과 함께 함흥의 감옥까지 머나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니 이 먼 곳까지 어떻게.....이렇게 고맙고 죄송할 데가...”
수임은 그런 이강국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했다. 목이 메어져왔다.
“몸조심하세요. 건강히....”

울음을 참을 수 없었던 수임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수임은 강국을 위해 옷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뭔가 모를 아련한 슬픔과 함께 인생의 진정한 사랑을 만난 기쁨에 몸을 떨었다.

또 하나의 남자
그러나 이강국은 이미 어렸을 때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한 몸이었다.
수임의 가슴속은 복잡했다. 수임은 마음속에서 이강국을 지우려고 몸부림쳤지만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잠깐의 만남이 영원한 사랑으로 간직된 채 무심한 세월은 15년이 흘렀다.
해방 직전에 수임은 세브란스 병원장의 비서로 취직해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폐렴으로 병실에 누워있는 한 남성을 보고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랐다.
꿈에도 그리던 첫사랑 이강국이었다.
수임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강국의 손을 잡았다.

그때 이강국이 말했다. “옛날 수임 씨가 함흥으로 면회 왔을 때 이후로 당신을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소.”
강국의 이 말은 수임의 순정에 불을 질렀다.
수임은 퇴원한 이강국과 함께 살림을 차렸다. 잠시 동안의 일이었으나 이 시간들이 김수임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사이 해방이 됐고 남한은 미군의 군정을 받게 됐다.
“내 한 보름간 평양에 좀 다녀오리다. 가서 만날 사람들이 좀 있소.”
그러나 보름 만에 돌아온다던 이강국은 1년 째 소식이 없었다.

공산주의 활동에 진력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 외에 그의 거처도 연락처도 수임이 알 길은 없었다.
그 즈음 수임은 반도호텔로 직장을 옮겼다. 수임은 유창한 영어실력 덕에 미군의 실력자들을 많이 접했다.
미 육군 제8군 헌병감 ‘베어드’대령은 수임에게 유난히 친절했다.
베어드의 친절이 사랑임을 깨달은 수임은 베어드를 의도적으로 멀리하려 했지만 베어드의 구애는 점점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수임 양. 저와 결혼해 주시오. 평생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당신을 위해 살고 싶소.”
돌아오지 않는 사랑 이강국과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는 앞의 남자 베어드.
수임은 열병을 앓듯이 몇 달을 고민한 끝에 베어드의 구혼을 받아들였다.

‘안녕...사랑하는 님이여...부디 행복하시길...’
수임과 베어드 부부는 옥인동에 살림집을 장만했고 수임은 곧 아들을 낳았다.

운명의 끝
수임은 베어드와 행복하게 살았다. 예의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에 베어드라는 든든한 버팀목은 곧 그녀를 사교계의 여왕으로 만들었다.

수임의 즐거운 조크에 미군 고위당국자들은 배꼽을 잡고 웃곤 했다.
그러나 운명은 다시 그녀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다.
남한에 이강국이 나타난 것이다.

소식을 들은 김수임의 가슴은 요동쳤다. ‘이건 아니야. 나는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됐고 그의 아이도 낳았어...그를 찾지도 만나지도 않을 거야’

하지만 그가 미군 당국에 스파이혐의로 체포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김수임은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삼팔선을 사이에 둔 남북한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다. 북의 고위인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이강국을 돕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수임에게는 아무런 판단도 들지 않았다. 그저 사랑하는 이강국을 무사히 탈출시키고 싶었다. 수임은 결국 이강국을 찾았고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얼마후 그녀는 체포됐다.
이때 적막이 깨졌다. 검사는 김수임의 죄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피고 김수임은 이강국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그를 미국인 고문관의 집에 숨겨두었다가 1947년 남편의 지프차를 이용, 그를 월북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육군특무대에 수감 중이던 남로당의 빨치산책임자인 사형수 이중업(李重業)을 빼내 의사로 가장시켜 월북시킨 혐의도 사실로 확인됐다.”

“1947년부터는 1년 여 동안 여러 차례 이강국의 연락원을 숨겨주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조선은행권(朝鮮銀行券)을 서울로 운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가택수색에서 권총 3자루, 실탄 180발 및 북한으로 보내려던 많은 기밀물건들이 압수되었다.”
“또한 1947년 12월에는 이강국이 보내는 정치자금을 베어드대령이 보낸 트럭 땔감 속에 숨겨 들여와 남로당에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피고 김수임은 남편 베어드 대령을 이용해 국가의 일급정보를 북괴의 밀파원 이강국에게 수 십 차례에 걸쳐 전달했다. 김수임이 제공한 극비정보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의 안위까지 위협받게 되는 일급정보들로 이로 인해 남편인 베어드 대령이 미국으로 송환돼 조사받고 있기까지 하다. 김수임은 죄는 우방과의 신뢰까지 무너뜨릴 만한 극악한 행위로 면죄의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이 모든 일을 종합할 때 김수임의 행위는 명백한 간첩행위로 인정된다.”

잠시 후 최종판결이 내려졌다.
“피고 김수임에게 국방경비법 제32조 간첩이적행위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사형을 선고한다.”
수임은 다리가 확 풀렸다.
판결 열흘 후 전쟁이 터졌다.

북한군은 전쟁발발 사흘 만에 서울의 코앞까지 진격해 들어왔다.
그날 저녁, 그러니까 1950년 6월 28일 저녁 7시 50분에 김수임에 대한 형이 집행됐다.
종달새는 그렇게 서른아홉의 아까운 나이에 한 많은 일생을 마쳐야했다.

워낙 극적인 인생이었던 탓 일까? 김수임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로 책으로 드라마로 끊이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어떤 매체에서는 김수임을 냉전체제에 희생된 가련한 피해자로 묘사하기도 하고, 이강국에대한 사랑을 부각시켜 현대판 ‘낙랑공주’에 비유하기도 한다.

김수임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그녀는 사랑에 눈이 멀어 이강국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가?
그러나 그녀의 지적능력을 감안할 때 그런 판단은 너무 낭만적으로 보인다.

김수임은 순수한 사랑으로 이강국을 도왔지만 그녀의 행동은 전쟁 직전의 살벌했던 남북대치상황 속에서 이적행위임에 분명했다.

1955년 북한에서 숙청돼 총살당한 이강국도 적어도 김수임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그리 순수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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