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PC농법으로 쌀 품질 올리니 소득 늘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2리로 생태보존농장 대표 김상우(63)씨를 만나러 가는 길. 한국전쟁 당시 철원땅이 빼앗겼을 때 북한군의 아지트였다는 옛날 북한 노동당사를 지나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백마고지와 이때 숨진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옆으로 군인들이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지키고 서 있다.

‘대체 이곳에서 어떻게 쌀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김상우씨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든다. 이곳 철원군 철원읍 대마2리에서 35년째 쌀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농사를 짓는 친환경 농업의 선도자로 불린다.



땅의 힘 믿고, 친환경 농업 시도

경기도 파주가 고향인 김상우씨는 지난 1973년 이곳 철원으로 귀농을 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이기도 한 김씨는 군 제대 후 서울의 한 기계제작회사에서 근무하던 중 무작정 철원으로 들어왔다. 철원평야의 귀농 1세대다. 귀농 초기에는 땅 한 평 없이 3800여평을 임대해 벼농사를 시작했지만 가진 돈이 없어 추곡, 탈곡은 물론 농협 정미소 기계관리 기사, 여름철에는 양수장 기사로, 겨울은 농기계 수리센터 기사로 일했다. 그리고 김 씨도 이때는 여느 농업인들과 마찬가지로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는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돈이 한 푼도 없어서 남의 땅 빌려서 맨손으로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 말고도 돈이 되는 일이 생기면 무조건 가서 했습니다. 건강한 몸 하나가 재산이었죠.”

김씨는 현재 무농약, 저농약 농사법으로 4만3천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화학비료를 3분의 1 정도만 사용하는 무농약농법으로 1만3500평,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저농약농법으로 9000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다. 또 화학비료는 물론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1만8000여평의 벼농사를 지으며 귀농 35여년 만에 대농으로 성장했다.

“땅의 힘을 믿고 농사를 짓다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4만여평의 땅을 갖게 됐습니다.” “관행농법에서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전환한 농업인들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확량이 갑작스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친환경 농법이야 말로 우리나라 쌀의 경쟁력을 갖는 방법입니다.”라고 김씨는 말한다.

PC농법으로 친환경 농사지어야

김씨가 친환경 농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김씨는 당시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한 국제회의와 WTO협상으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던 중 친환경농업 밖에 없다고 판단,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김씨와 PC농법(Plant Clinic)의 인연도 그 때부터 시작됐다.

PC농법은 일본의 아베 세이코씨가 개발한 농법으로 원어로는 식물의사, 식물진단 이라는 뜻이다. PC농법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최원개 박사(전 진주산업대 교수)는 이를 두고 ‘균형영양농법’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성분 하나도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다.

“PC농법은 고도의 정밀함을 요하는 농사법 입니다. 하지만 어렵지는 않습니다. 많은 작물에 대한 표준수치가 있어 이와 비교하면 초보자도 쉽게 지을 수 있습니다. 작물의 상태를 확인해서 딱 필요한 만큼의 비료를 줍니다. 지금까지 비료를 덜 준다해서 작물이 덜 자라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김씨의 말처럼 내 눈앞에 있는 작물이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해 거기 맞는 적절한 처방을 해주는 것이 PC농법의 핵심이다.

김씨는 자신이 만든 왕겨와 등겨 60%, 돈분·계분·혈분 등을 40% 비율로 섞어 발효시킨 비료를 논에 뿌리고 있다.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직접 유기질 비료를 만들고 있다. 300평당 2.5∼3톤 가량의 충분한 퇴비를 뿌려주기 때문에 친환경농법에 따른 수확 감소는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량은 늘어난다고 한다.

또 생산한 쌀을 ‘황토와 우렁이가 생산한 쌀’이라는 상표로 판매하고 있다. 1가마니당 23만원에 출하, 일반쌀 보다 5만원 정도를 더 받는데도 없어서 못팔 정도다. 김씨 농사의 연매출이 2억 3천만원 가량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김씨가 생산한 쌀은 전량 선불 형식으로 납품돼 서울평화 유기농산물 직판장, 반딧물 유기농산물 직판장, 우리밀 유기농산물 직판장 등의 직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외에도 김씨는 쌀맛을 유지하기 위해 건조장과 정미소, 퇴비발효장은 물론 가공까지 자신의 농장에서 과학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깨끗한 환경이 명품 쌀 만들어

김씨의 논 일부는 민통선 안에 있다. 휴전 이후 40여년간 사람의 발길이 끊긴 민통선 이북에서 담수한 1급수는 열목어가 살 정도로 맑다. 청정지역의 기름진 철원평야에서 나온 맛 좋은 쌀이다. 또 철원은 화산지대로 현무암 바닥,용암이 뒤덮였던 대지로 철분함량이 많은 황토지라 쌀농사에는 축복받은 땅이다.

김씨는 농한기인 12월에서 1월까지 발효퇴비를 제조하고, 3월에는 발효퇴비를 살포한다. 이어 4월초 볍씨침종, 바이오 효소 및 토양미생물 효소를 사용해 모를 낸 후 목초액 바이오 효소, 아미노산 현미식초, 흑설탕 효소액 등을 3~4회 살포한다. 추수 때에는 정상회전 탈곡을 해 저온에서 건조시키는 재배방법을 이용한다.

이런 재배방법으로 김씨의 생태보존농장은 유기재배, 무농약 재배를 기본으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유기재배 품질인증을 받았다. 또 민북대마 유기농 쌀 작목반 홈페이지를 통해 재배지의 환경 및 상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농사짓는 과정을 보여주고, 청정지역에서 재배되는 벼를 소개하고 있다. 거래처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김씨는 “우리나라의 가장 좋은 자원은 자연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농법으로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친환경농비법 전수는 두 아들에게

현재 김씨는 두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둘 다 대학을 나와 사회생활을 꿈꿨지만 자라면서 아버지가 흘린 땀방울을 보고 농사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큰 아들 녀석은 대학 졸업하고 농사일을 하면서 잠깐 동안 방황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퇴비농법을 쓰니 고약한 냄새가 늘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얘길 들어보니 연애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는 자리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큰 아들은 곧 철원으로 돌아와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아버지의 친환경 농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친환경농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김씨는 자신감이 있기에 대학 나온 아들들에게 농사를 권유했고 아들들은 한 가지라도 빼놓지 않고 배우고 있다. 김씨는 자신의 35년 농법을 전수하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김씨는 아들들에게 농사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부지런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논에 물을 대도 아침 일찍 해야 낮에 물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인산분해 효과가 커져 뿌리 성장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설명하며 농법을 일러주고 있다.

김씨는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농법으로는 국제 경쟁력의 한계가 있다”며 “미생물이 살아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효퇴비를 써야 하는 등 이론적 근거에 바탕을 둔 친환경농법만이 수입 농산물에 맞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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