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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지주(支柱) ‘장 폴 마라’의 가슴에 비수를 꽂다.... 샤를로트 코르테
창백한 얼굴, 가냘픈 몸, 그러나 뜨거운 가슴…
2008년 04월 10일 (목) 10:02:56 박재호 pjaehool@nongupin.co.kr
  
 
  
 
프랑스혁명은 인류사에 큰 의미를 갖는다.
프랑스혁명은 대 사상가 루소의 인민주권론에 입각한 ‘사상의 혁명’에서 시작된다.

2, 3%에 불과한 왕실과 성직자, 귀족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민중의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세금과 용역을 먹고 마시며 자기들은 ‘거룩하고 우아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모순을 격렬히 비판하자 잠자고 있던 민중의 가슴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거기에 마침 극도의 사치와 향락에 무능함까지 보이는 프랑스 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의 한심한 모습은 타오르는 인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어 얹었다.

마침내 1789년 7월 14일 시민들의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프랑스혁명은 시작됐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이상을 향한 작은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혁명의 과정과 결과는 그렇게 숭고하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았다.

혁명은 결국 승리자들끼리의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하고 만다.
이상의 깃발아래 모여든 자들은 그 이상이 실현되면 또 다시 자기들끼리 다툼을 계속한다.
샤를로트 코르테는 혁명의 승자인 ‘장 폴 마라’를 죽임으로써 유명해 진 여성이다.

그녀는 신분을 숨기고 잠입해 상대방의 수괴를 암살한다는 전형적인 스파이의 패턴을 보이고 있다.

소녀, 영웅에 빠지다
“어머니 난 수녀원에 가기 싫어요.”
“우리 같은 귀족 집안의 여성들은 수녀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꼭 거기가야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집에서도 얼마든지 성경을 배울 수 있고 가정교사를 통해 교육도 받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전 다른 책들도 많이 읽고 싶어요. 거기가야만 정숙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애가 왜 이렇게 천박한 백성들처럼 보채는 거야. 그리고 다른 책이라니 너 설마 신을 부정하는 무슨 철학서나 그 못된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들의 책을 읽고 싶다는 말은 아니겠지?”

샤를로트 코르테는 1768년 7월 27일 프랑스 노르망디 인근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샤를로트가 태어났을 당시는 그리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열세 살 즈음에 부모에 의해 캉 지역의 한 수녀원에 보내졌다.
어린 샤를로트는 잘 견뎌냈다. 마르고 가냘픈 몸매에다 순종적으로 보이는 선한 얼굴은 실제 샤를로트의 성격보다 그녀를 더 ‘착한’ 소녀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얘. 너 아니? 샤를로트는 성경공부 시간에도 다른 책을 몰래 보곤 한다는 것을.”
“어머 수녀님이 아시면 큰 일 나겠는 걸. 우리까지 함께 야단맞는단 말이야.”

“내가 이야기 했는데도 고쳐지질 않아. 절대 들키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면서.”
“차라리 그 책을 몰래 빼돌려 숨겨놓자.”
“좋았어!”

아이들은 샤를로트가 화장실에 간 사이 사물함을 뒤져 책을 꺼냈다.“이게 뭐야? ‘플..루..타..크..영웅전?”
“플루타크 영웅전?...그게 뭐야? 아니 여자애가 무슨 전쟁이야기를 보다니?”

보통 아이들은 성경속의 룻이나 미리엄, 마리아처럼 신께 순종하는 정결한 여인들을 동경했다. 아니면 오페라 속의 우아한 귀부인, 눈부신 미모와 왕자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작은 왕국의 공주 등…
이때 문이 벌컥 열렸다.
샤를로트였다.

“남의 물건을 훔치다니 정말 무례하구나. 수녀님께 달려가 말씀을 드린다면 너희들 경을 칠거야. 어때 내 책을 다시 사물함에 돌려놓겠니? 아니면 수녀님께 회초리를 맞겠니?”
아이들은 책을 다시 돌려줬다.

고대 그리스 영웅들의 무용담을 그린 서사시 플루타크 영웅전을 즐겨 읽는 소녀.
샤를로트는 보통 소녀들과 취향과 분위기가 아주 다른 독특한 아이였다.

망명객
그녀는 그 일 이 있은 후 얼마 있지 않아 수녀원 근처의 친척집으로 가서 지내게 됐다.
샤를로트는 허드렛일도 돕고 친척 동생들도 돌보며 조신하게 지냈지만 플루타크 영웅전은 놓지 않았다. 소녀가 영웅전 삼매경에 빠져있는 동안 프랑스 전역은 혁명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때부터 샤를로트는 영웅전과 함께 루소, 몽테스키외 등 계몽주의자들의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저자들은 한 결 같이 군주제(왕이 다스리는 전제정치)의 한계를 비난하며 인민의 주권을 주창했다.

‘그래도 나라와 백성은 왕께서 다스리는 것이 옳은 것 같아. 아마 신의 뜻도 그럴 거야. 다만 어질고 바르게 정치하는 왕이어야 하겠지.’ 샤를로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때 그녀가 머무는 캉 지역의 마을에는 낫 선 사람들이 여럿 보이기 시작했다.
샤를로트는 어른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샤를 바바루아라는 그 망명객에게 너무 잘 해주지 말아요. 잘못 하다가는 큰 화를 입게 돼있어요.”
“그래도 우리 먼 친척뻘 되는데 어떻게 내치겠어요?”

“소식도 못 들었어요? 혁명군 내에서 자기들끼리 권력싸움이 시작됐대요. 그 사람은 그 싸움에서 지고 도망 온 사람이어요. 그러니 숨겨주었다가 걸리게 되면 큰일 난다니까요. 지금 파리에서는 사람들 모가지가 하루에도 수백씩 뎅겅뎅겅 잘려나가고 있답니다.

혁명의 불순분자라고 찍히면 그날로 이 세상과는 영영 이별이란 말입니다.“
샤를로트는 망명객 샤를 바바루아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녀는 샤를에게서 막연히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용사의 이미지를 연상했다.
샤를로트는 망명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터진 옷을 꿰매주기도 했다.

망명객들의 눈에 비친 샤를로트는 그저 순진무구한 시골소녀에 불과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그녀는 그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도대체 혁명은 왜 일어난 것인가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단다. 여러 가지가 복합됐지…그러나 그 뜻은 절대적인 왕권을 제한하고 백성들의 민의를 존중하자는 뜻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제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귀족들이 좀 더 많은 특권을 누리기 위해 평민들이 좋아 할 공약을 내세워 권력을 잡은 후, 그 다음에는 먼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 버리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잖아요?”

그랬다. 프랑스 혁명의 또 다른 원인을 보면, 미국의 독립전쟁 때, 영국과 싸우는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프랑스는 영국과 철천지원수이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던 왕실이 적자 폭을 메울 길이 없자, 특권층(귀족 들)과 상공인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려 한데서 찾을 수 있다.

로베스피에르 같은 인물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공인(부르주아 계급; 평민출신으로 산업을 이용해 많은 돈을 모은 사람들)들을 부추겼다.

그들이 좋아 할 법을 만들고, 그들의 자금을 이용해 정적들을 제거해 나갔다.
특히 루이 16세의 실정을 부각해 교묘히 평민들을 선동했던 것이다.

진정한 혁명
“혁명이 일어난 그해 10월 5일에는 기어이 파리 시민들이 왕궁까지 난입 해 왕을 개처럼 끌고나왔다. 그리고 그 즈음 귀족과 상공업인 평민 가리지 않고 뜻을 같이 하는 과격분자들이 당을 결성했다. 이것이 자코뱅 당이야. 로베스피에르는 그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사람이었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후 민중들은 과격해 졌다. 그들은 성난 황소처럼 거칠 것이 없었지.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들의 심리를 이용하려고만 했다. ‘자코뱅’ 당 사람들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처음에는 당신들 지롱드 당이 주도권을 가졌었잖아요. 저는 왕의 권위는 인정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들은 너무 온건했지. 우리는 온건하다 못해 우유부단한 면을 보였기에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그 틈을 이용해 왕의 목까지 베는 선동정치를 펼친 과격파 자코뱅 당에 밀리게 됐지. 백성들은 착취와 억압의 상징으로 왕을 바라보았고 왕의 머리가 단두대에서 잘려나가자 그 모든 모순의 근원이 없어졌다고 믿게 된 거야.“
“왕을 처형하다니…전 세계에서 유일한 일일걸요?” 어떻게 그런 일까지...“

“그래. 그렇게 권력을 잡은 자코뱅 당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뭔지 아니? 그들은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체포해 지지자들 앞에서 목을 치는 거야. 점점 피에 익숙해지는 민중들은 더 열광하는 거지. 점점 미쳐가고 있어…”

샤를로트는 자코뱅 당에 밀려 피난 온 지롱드 당 사람들과 만남이 잦아지면서 점차 이들의 사상에 동화됐다.
“지금 자코뱅 당에 의해 벌써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이 날아갔지.”

“하지만 제가 들은 바로는 그들은 나라와 프랑스 민족의 안녕을 바라며 부당하게 행사된 왕권을 증오한다고 알고 있어요. 특히 당신들이 증오하는 로베스피에르 같은 사람은 올바른 정치를 위해 독신을 고수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의 돈도 바라지 않는다고…정말 철저하게 금욕하고 엄격한 사람이라고요.”

“그래 그의 신념은 정평이 나있지…하지만 그거야 말로 광기란다. 가롯 유다가 자기 신념에 따라 예수님을 로마병정들에게 넘겼다고 한다면 그것이 신념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 온 샤를로트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신념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남을 위한다고 다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코뱅 당에 밀려 여기저기 숨어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지롱드 당 사람들은 옳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거야...하지만 저들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자코뱅 당은 우리 프랑스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어. 그것은 진정한 박애정신이 아니야.’

며칠 후 그는 다시 샤를을 찾아 당신들은 무엇을 추구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왕정보다는 공화정을 주장한다.. 그것은 우리를 내친 자코뱅당과 같아. 하지만 그들과 같은 독재와 억압은 반대하지. 온화한 의회주의, 백성의 소유권·재산권을 옹호하고 통제경제는 반대하는 입장이야. 미국처럼 연방주의를 제창하고 정당하게 돈을 모은 부르주아 계급은 인정한다는 거야.”
샤를로트는 그들의 노선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동의했으며 점차 그들 당의 일원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나 사실상 당시의 지롱드 당은 거의 소멸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진정한 혁명은 질풍노도처럼 나라를 소용돌이로 모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백성을 위하는 것이어야 해요.”

샤를로트는 얼마 간 그들로부터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다.

욕탕 속의 자객
어느 날 샤를로트는 신문을 통해 ‘장 폴 마라’라는 자의 기고문을 보고 격분했다.
그의 논지는 강렬했다.

스위스 태생인 장 폴 마라는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였다. 내과 의사, 철학자, 정치 이론가, 과학자로 활약하는 등 다재다능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새 정부 편(자코뱅 당)에 서서 지롱드 일파 등 혁명의 적들을 격렬히 비난했다. 사실 자코뱅당의 권력쟁취에는 그의 역할이 지대했다. 수많은 민중들이 그의 글에 매료돼 자코뱅 당을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샤를로트의 친지 한 명이 자코뱅 당에 체포돼 참수됐다.
샤를로트는 생각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겼어.“그는 지롱드 당 사람을 만났다.“사람들이 장 폴 마라의 기사를 보고 열광하고 있어요. 장 폴 마라는 그런 식으로 백성들을 속이고 있어요.
자기들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주장하면서 엄청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어요.
그들에게 그런 힘을 주는 장 폴 마라의 펜을 꺾어 놓지 않으면 이런 비극은 계속되겠지요.“
샤를로트는 장 폴 마라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글은 정말 놀랍군요. 백성들이 열광하고 있어요. 제 면담요청에 부디 응해 주시기를 바래요.” 장 폴 마라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물론 장 폴 마라는 샤를로트가 어떤 사람인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시골에 있는 한 여인이 청원서를 가지고 오나보다 했던 것이다.
샤를로트가 마라의 집으로 인터뷰를 가장해 들어간 것은 1793년 7월 13일 이었다.
“주인님은 지금 목욕 중이십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인이 말했다.
집안 하인들은 샤를로트를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호리호리하고 유난히 창백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시골 처녀에게 무슨 경계심을 가지랴.
그러니 잠시 후 “으악~”하는 비명 소리가 났다.
하인들은 황급히 달려갔다. 거기에는 가슴을 단칼에 꿰뚫린 자신들의 주인이 욕조 안에서 피를 내뿜고 있었고 그 연약한(?) 여인의 손에는 예리한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장 폴 마라는 절명했고 샤를로트는 당장 체포됐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샤를로트는 혁명재판소의 재판을 거치고 나흘 뒤엔 7월 17일 단두대에 올랐다.
“위대한 혁명가를 죽이다니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년”

“더러운 마귀 년을 산채로 화형 시켜야 돼”
성난 군중들이 고함이 무서웠다.
샤를로트는 생각했다.

‘나는 전제자, 독재자를 죽인 것이다. 당신들은 그것을 모른다. 이들은 얼마 못가 망하게 돼 있다.’
샤를로트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의 목이 떨어지자마자 한 의사가 달려가 뺨을 치고 비난을 퍼부었는데 이때 샤를로트의 표정이 기묘하게 뒤틀렸다는 엽기적인 이야기도 일설로 전해진다.

어쨌든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자코뱅 당은 공포정치에 신물 난 민중들에 의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고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루이 16세와 앙트와네트 왕비 그리고 샤를로트 의 머리가 떨어진 그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말았다.

샤를로트 코르테는 어떤 집단에 속한 스파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신념에 의해 일을 저지른 보기 드문 케이스의 여성이다.
그녀야 말로 진정한 ‘열혈인(熱血人)’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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