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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血)의 로자’로 매도됐던 ‘따뜻한’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그
꺾이고 만 이상적 사회주의에의 꿈
2008년 05월 07일 (수) 13:37:13 박재호 pjaehool@nongupin.co.kr
  
 
  
 
20세기 초의 유럽은 새로운 철학, 사조, 지성, 오랜 구습에 반(反)한 분출이 넘쳐나며 미지의 내일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 같은 시기였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왕에 의한 다스림(王政)은 이미 ‘끝 발’을 잃어가고, 산업혁명의 여파는 유럽의 시민들로 하여금 ‘인권’과 ‘평등’ 그리고 ‘사회모순’ 등에 대해 생각게 했다. 당시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열광케 한 것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였다. 마르크스, 레닌에 의해 태동한 사회주의는 공동생산에 공동소유하는 평등사회를 주창해 수 천 년 동안 농노(農奴)나 다름없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했던 대다수의 민중들을 위한 메시아적 선언으로 보이기도 했다.

20세기 초 당시의 사회주의이론은 곧 세상을 뒤엎을 듯 보였다. 민중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곧 무산계급의 세상이 올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다. 사회주의 이론은 동유럽, 특히 러시아에서 정치인들에 의해 고도의 정략적인 개념으로 이용됐다. 광적인 스탈린주의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개념을 흐려놓았다.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국가에서 국민들은 철저한 통제에 시달렸고, 만인평등을 주장하던 사회주의 국가 러시아는 다른 나라를 침공했다.
이런 시기에 ‘진정한 사회주의’ ‘본래취지의 이상적 사회주의’를 부르짖다 시대의 격랑을 견디지 못하고 스러진 여성 철학자이자, 혁명가요, 사회주의 이론가가 있었으니 그녀가 ‘로자 룩셈부르그’다.


혁명을 꿈꾼 여자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는 소멸하고 말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일 하지 않는 자본가들이 쉬지 않고 상품과 용역을 생산해 내는 노동자들의 땀으로 먹고사는, 그들을 위한 편리한 제도지요.”

자본주의의 붕괴를 예언하고 있는 로자 룩셈부르그(1871~1919).
그녀는 제정(帝政;황제에 의한 통치)을 타파하고 재산가들이 지배하는 자본사회를 뒤집어엎어 이상적 평등사회를 구현하려는 사회주의자였다.

멀고 험한 혁명의 길을 선택한 그녀의 형극(荊棘)같은 삶은 1889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폴란드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 대학으로 유학하면서 시작됐다.
탁월한 웅변가에다 이론가였던 그녀의 연설은 대중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고도로 산업화 된 국가에서 의회정치나 노동운동 등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위한 좋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이론은 모순입니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사회주의의 이상이 실현된다는 이론인데, 사회개량(改良)과 사회주의를 달성하기 위한 혁명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복지국가라는 것도 자본가와 정치인들의 유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적인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녀는 자본가들에 대한 불신과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가 골수에 박혀있던 여성이었다.
그녀가 꿈꾸는 세상. 그것은 순수한 의미의 사회주의. 그것이었다.

수석 아닌 수석(首席)
“로자. 네가 수석졸업생인 것은 맞지만 금메달을 줄 수 없게 됐구나. 정말 유감이로구나…”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제2여자 고등학교.

“너도 알다시피 너의 정치적 활동과 발언들 때문에 문제가 됐다. 러시아를 비판하는 언행과 써클 활동 때문이란다… 학교 당국도, 선생님도 너 때문에 많은 곤란을 겪었어. 슬퍼도 현실은 현실이야. 우리는 러시아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어. 미안하구나.”

“선생님 금메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요. 저 때문에 여러 가지 곤란을 겪으신 것도 알아요.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표현을 못했죠. 이제 졸업했으니 조금 편해질 것 같아요.”
“그렇지만 로자.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한다. 세상은 네가 학생 신분일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우할거야. 하나님의 가호가 항상 함께하길 빌께”

로자 룩셈부르그는 1871년 3월 5일 폴란드 바르샤바 인근의 부유한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근 2천년간 세계를 유랑하며 천덕꾸러기처럼 살아 온 유태인들은 현금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유럽인들은 정작 그들의 돈을 요긴하게 빌려 쓰면서도 그들을 수전노라고 조롱했다. 로자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곤 했다.
약간의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살짝 저는 작은 키의 곱슬머리 소녀의 머리 속은 아주 복잡했다.

‘도대체 돈은 뭐지? 그 돈은 왜 소수의 사람에게 편중돼 있지? 정작 하루 종일 나가서 힘들게 노동하는 사람들은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데 부자들은 축적돼 있던 돈을 굴리며 더 큰 부를 만들어 나가고 있어...이건 조금 이상해. 불공평한 것 같아’

소녀는 당시 동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던 사회주의 이론에 주목했다.
로자는 학창 시절부터 외부 써클이나 지하조직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어렴풋이 사회주의를 접할 수 있었다.

짚단에 숨어 스위스로
“더러운 자본가들. 러시아에 빌붙어 석탄, 철강, 섬유, 식품 등 모든 분야를 자기들 손에 거머쥐고 민중들의 피를 빨고 있어. 로자 너는 어떻게 생각해?”
써클 동료의 질문에 로자는 즉답을 할 수가 없었다.

폴란드는 동유럽의 요충지에 있는 나라로 수백 년 간 주변의 강국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왔다. 1815년부터는 러시아의 직할령으로 전락해 러시아 짜르(황제)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됐다. 이때 전통적인 폴란드의 왕족과 귀족 계급은 몰락하고, 재빨리 새로운 세상의 시류에 편승한 폴란드의 신흥 자본가들이 러시아의 비호 하에 산업전반을 장악, 폴란드의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게 된다.
로자는 이런 ‘매국노 자본가’들에 저항하는 지하 써클에서 활동했다.
1889년의 어느 날 이었다.

“이봐 빨리들 도망가야겠어. 이제 곧 러시아 경찰들이 들이 닥칠 거야. 우리 써클의 반 러시아 활동이 발각됐어. 잡히면 시베리아로 잡혀가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한대. 서둘러.”
특히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했던 로자는 형이 무거울 것이었다.

“자~로자 이렇게 하자. 너는 무조건 외국으로 도망해야 해. 스위스 취리히가 안전할거야.”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간다. 이미 수배가 내려져 국경 초소마다 경비가 사업 할 텐데...”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로자는 동료가 권한대로 했다.

유태인이었던 로자는 국경을 넘나드는 농부에게 부탁했다.“저는 유태인이지만 스위스로 가서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하고 싶어요. 그런데 집안에서 이를 알면 저를 죽이려고 들 거예요. 국경을 넘어야하는데 저는 통행증이 없답니다. 아저씨는 늘 다니는 길이니 군인들이 의심하지 않겠지요? 저를 마차 짚 단 속에 숨겨주세요.”
독실한 크리스천인 농부는 기꺼이 로자를 숨겨주었다.
로자는 그렇게 취리히로 탈출했고 곧 취리히 대학에 들어갔다.

단근질
취리히 대학에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과 새로운 사조에 목말라 하는 피 끓는 청춘들이 모여든 지식의 용광로였다.
‘세상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정치학을 공부해야겠어. 그리고는 자본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아야 해. 그러자면 경제학도 배워야겠네. 휴~ 세월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

로자는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공부했다.
고향에서 도망 온지 8년만인 1897년, 로자는 <폴란드의 산업적 발전>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따냈다.
로자는 자본의 속성과 자본주의의 병폐성에 대해 주목했다.

“어떤 주의(主義)든 인민들이 행복하고 풍족하게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해. 문제는 그런 사회제도들을 돈 있는 자, 힘 있는 자들이 만든다는 것이야. 그들은 이런저런 논리를 내세워 자기들이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특히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는 소비를 조장하고 생산을 위한 생산을 고착시키며 확대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힘없는 나라를 식민지화 해 또 다른 시장을 창출하려하지. 그러나 그런 무한 팽창은 언젠가는 종말을 맞게 될 거야.”

그즈음 로자는 취리히에서 러시아에서 온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접촉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그들은 러시아 전통의 ‘제정’을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상가들이었다.
로자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깊이 빠져들었다.

‘황제(짜르)에 의한 통치를 종식시키고, 자본가들의 독점이 없는, 인민 평등과 공동 소유의 이상적인 국가라~ 그래 내가 꿈꾸던 세상이야!’
로자는 독일 행을 결심한다. 당시 독일은 유럽 철학과 신사조의 중심지였다.

또한 독일은 노동자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노동자문제, 자본과 사회체제와의 상호관계,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주의 국가 건설…. 이 모든 것들에 좀 더 배우고, 꿈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 로자에게는 독일과 같은 좀 더 큰 무대가 필요했다.
로자는 1898년 위장결혼으로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 강연 등의 활동을 시작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로자의 나이 34세가 되던 1905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났다.
“폴란드로 돌아가 투쟁해야 해. 러시아 혁명이 성공해 짜르(황제)체제가 무너지고 사회주의 세상이 실현되고 있어. 폴란드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돼 노동자계급이 많은데다 러시아 짜르체재에 대한 적대심도 강한 곳이지. 빨리 돌아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해.”
그녀는 폴란드로 돌아가 대중연설에 힘을 쏟았다.

“노동자 계급은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제국주의라는 망령을 깨뜨려야 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뛰어 넘어 노동자 계급은 단결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애초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없이 사는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은 잘 뭉치지 못했다. 당장 그들은 그들을 고용한 고용주나 농장주의 눈치를 봐야했으며 어쨌든 당장의 생계를 위해 윗사람(?)에게 복종했다.

아직은 노동운동이 개념조차 정립되지 못하던 시절…
“아!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뭉치는 것이 이렇게 어럽단 말인가!”
대중들이 봉기해 진정한 사회주의를 이루자는 그녀의 외침은 1906년 3월 폴란드 당국에 체포되면서 일단 날개를 접어야 했다.

로자는 약간의 돈을 써 몇 달 뒤 옥에서 나왔다. 그녀는 다시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사회민주당이 설립한 학교에 강연하며 다시 내공을 쌓았다. 그녀는 이때 마르크스 이론을 보완한 <자본축적론>을 탈고하는데, 이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상호관계를 조명한 사회주의 이론의 명저로 꼽힌다.

폭풍 속으로
20세기 초의 유럽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극심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의 횡행은 그 끔찍했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암운이었다.
로자는 이러한 시대상황에 대해 절망했다.

“제국주의로 인해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가 깨지는 것은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이 나라에서 핍박받던 노동자들이 군인이 되어 저 나라에서 천대받던 농민들과 싸워 서로를 죽여야 합니까?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의 이해가 걸린 전쟁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이지요?” 로자는 반전운동에 뛰어든다.

믿었던 독일 사회민주당이 전쟁 예산을 승인한 것은 로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사회주의 계열도 믿을 수는 없다. 그들도 역시 정치논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무산계급을 위한 진정으로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해.”

그녀는 ‘스파르타쿠스’ 단을 조직했다. ‘스파르타쿠스’란 2천년 전 로마제국 시절 제국의 부당한 통치에 반기를 들었다가 좌초한 노예출신 반군 대장의 이름이다.
로자의 스파르타쿠스단은 전쟁 반대를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기어이 전쟁은 터지고 말았다.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 것이다.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종전을 외치던 로자는 다시 체포 구금됐다.(1915년 2월)
구금 1년 동안 로자는 독일 여기저기 형무소를 옮겨 다녀야 했다. 그녀를 찾는 사상적 동지들을 따돌리기 위한 당국의 수작이었다.

유럽은 연합국과 동맹국의 두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를 살육했다.
로사는 1년 만에 풀려났고, 전쟁은 4년간 지속됐다.
“8백 5십만 명이 죽었고, 2천 1만 명이 병신이 됐으며, 8백 만 명의 행방이 묘연한 이 전쟁…사회주의와 복지국가를 부르짖던 그들마저 기꺼이 전쟁에 뛰어들었…. 이것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냐. 민중들을 위한 사회주의란 이런 게 아냐”

로자는 이때 중대한 결심을 한다. 자신의 스파르타쿠스 단을 독일 공산당으로 만들어 정권을 쥐고 독일을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이었다.

좌절된 이상
그러나 전쟁을 통해 민족주의가 유령처럼 떠돌던 독일에서 그녀의 꿈은 한계가 있었다.
수파르타쿠스 단은 테러집단으로 매도되며 언론과 국가기관을 통해 노골적으로 흑색 선전됐다.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 제 2위의 자본주의 국가가 된 독일에서 로자와 같은 이는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걸림돌에 불과하다.
1919년 1월, 로자를 반대하는 세력이 ‘스파르타쿠스’ 단의 봉기라는 사건을 조작했다.

엄청난 살육을 저지르고는 스파르타쿠스단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운 것이다.
전쟁 직후라 이웃나라에 대한 증오가 뼈에 사무친 군중들은 전쟁을 반대하고 민족주의를 경고하는 로자를 증오했다.

“피에 굶주린 미친년 로자를 처단하라”
“절름잘이 폴란드 유태인 마녀를 죽여라”
군중들의 소요는 점 점 더 했고 당국은 이를 묵인했다.
1919년 1월 군부는 로자를 체포했고 곧 로자를 살해했다.

그녀는 운하에 던져졌으며 시신은 4개월 후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된 채 발견됐다.
로자는 그후 오래 동안 피의 로자로 매도됐다. 대표적인 이미지 조작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로자는 사실 연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여성이었다. 14년 간 교제한 ‘요기네스’같은 학자와의 편지에서 보여준 그녀의 감성은 여린 소녀와도 같았다. 감옥에서 쓴 옥중 서신에서는 애벌레 같은 작은 생물에 대해 경이로운 애정을 표현하기도 해다.

그녀는 모든 이들이 평등한 행복을 누리는 이상적, 복지적 사회주의 국가를 꿈꿨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이었고 백년 가까이 흐른 지금 꿈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가 꿈꾸던 진정한 사회복지주의의 구현은 어쩌면 인류가 추구하는 진정한 비전일지도 모른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는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부담스러운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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