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채소로 농산물 고급화 이뤄”

  
 
  
 
채소농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아버지께서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 뜻에 이어 농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한우를 키웠다. 소 5마리로 농사를 지으면서 100여 마리 규모의 축산농가로 성장시켰다. 축사 한복판을 고속도로가 뚫리는 바람에 축산업을 포기하고 1993년 채소를 시작했다. 새싹채소는 2003년부터 시작했는데 채소를 장식용으로 사용하면 먹기도, 보기도 훨씬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소비자들에게 적중했다. 새싹 채소를 가지고 고급화를 추구했다. 적은 생산량이 오히려 희소성 있는 농산물이 됐다.

건강나라농원은 독특한 협업방식을 적용하던데?
지금 특급호텔과 유명 백화점에서 주로 접할 수 있는 건강나라농원 제품은 100%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주문생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요구가 많아도 공급을 많이 늘리게 되다보면 언젠가는 가격경쟁을 해야 한다. 때문에 한정된 제품을 한정된 라인에만 공급하고 있다. 이래야 농가 수입도 보장되고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건강나라농원이 가진 유통망을 중심으로 15개 농가가 각자의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 각 농장주는 독자적으로 농장을 운영하면서 브랜드는 건강나라농원을 이용한다.

경력을 보니 한동안 농민운동을 했던데?
맞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농업경영인 소속으로 농민운동을 펼쳤다. 6년가까이 농민운동을 해 봤지만 변화시키기 힘들었다. 목이 터지도록 아무리 소리쳐봐도 사회가 받아주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서울역에서 분노한 농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젊고 유능한 후배들도 많아져 현장으로 돌아가 농업을 책임져야겠다고 판단했다.

농산물 개방화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왜 우리 농업시장을 탐내겠나. 그만큼 매력 있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좋은 시장을 우리가 갖고 있는데 뺏기지 말아야한다. 지금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건 우리 농업인들이다.
지금까지의 농업이 생산자 위주였다면 이제 소비자 맞춤 농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미국 시장이 원하는 상품을 생산하면 우리나라도 미국에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농업인만큼 세계에서 똑똑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없다. 네덜란드가 좁은 국토로 세계 최고의 농업강국이 된 것은 그들의 농업에 지식과 유통체계를 농업에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못 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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