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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의 또 다른 주역 궁녀 고대수
새로운 조선을 꿈꾼 어느 무수리의 처절한 이야기
2008년 05월 14일 (수) 11:34:56 박재호 pjaehool@nongupin.co.kr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축하연을 급습해 벌어진 갑신정변은 근대화 된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등의 개화파가 당시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사대주의 정권을 타파하고 자주국으로서의 새로운 조선을 꿈꾸며 일으킨 주체적이며 근대적인 혁명(또는 쿠데타)이다.

이 정변은 청나라가 신속히 개입, 순식간에 사태를 장악해 3일 천하로 끝나고, 주역들은 모두 외국으로 망명하거나 대역 죄인으로 몰려 멸문지화 당하는 등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갑신정변은 오랜 세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던 조선지식인의 자각과 행동이 표출된 것이며 근대화 운동의 선구자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이 사건의 주역 중에는 뜻밖의 인물이 존재한다. 궁녀 신분이었던 고대수(顧大嫂)라는 여성이다.


시구문(屍口門) 지나

“죄인을 끌고 나오라”
나졸들이 서연옥(瑞憐獄)의 여 감옥에서 한 죄인을 끌어낸다.
“으~윽”
그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낮은 탄식 같은 것을 내뱉는다.

“내 생전에 저렇게 기골이 장대한 여자는 처음 보겠네.”
“저게 축생이지 어디 사람이라고 할 텐가? 저런 흉물을 대궐에 들였던고.”
1884년 12월 어느 날, 몹시 춥고 희뿌연 하늘에는 잔설이 뿌리고 있었다.

대역죄인(大逆罪人)이라는 표를 목에 단 채, 맨발로 끌려나온 거녀(巨女)의 이름은 고대수라고 했다.
“고대수라면 수호전에 나오는 양산박 두령 중 여장부의 이름과 같네. 하이고~ 저 체격이라면 남자로 쳐도 대장부일세. 대장부야.”

그녀는 서울 타워호텔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마루에 위치한 광희문을 지나고 있었다. 한양백성들은 사람이 죽으면 광희문과 소희문을 지나 시신을 처리했다. 따라서 이 길은 시구문(屍口門)이라는 섬뜩한 별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고대수가 그 길로 막 접어들었을 때다.
백성들의 성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저 년이 상감마마와 중전마마를 죽이려고 폭약을 터뜨린 흉악한 년이라네.”

“저런 쳐 죽일 년이 있나. 저 몹쓸 것을 당장 요절내세.”
나졸들은 이 성난 수 천 명의 백성들을 통제할 힘이 없었다.
아니 그들의 분노를 방관하는 것처럼 보였다.

돌무덤

백성들은 미친 듯 달려들었다.
고대수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발길질하는 사람에 물어뜯는 어린놈에 여자들은 꼬집고 할퀴고 옷을 찢었다.
모른 체하며 내버려 두던 나졸들이 성난 군중들을 간신히 떼어 놓자 이미 고대수는 피범벅이 된 헝겊덩어리처럼 돼 있었다.

머리에서 뺨으로, 목에서 가슴으로 피가 줄줄 흘러내렸고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어깨며 등으로는 깊게 패인 손톱자국이 보였다.
거기다가 더 민망한 일은 누군가 그녀의 치마를 잡아당겨 하체의 앞 쪽이 가릴 수도 없는 지경이 된 지라 고대수는 수치심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구문을 지나 한 광장에 이르자 백성들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망루 위에서, 성곽에서,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수도 없는 돌들이 날아왔다.
그 중 몇 개 묵직한 것이 고대수의 머리를 강타했다.

거녀의 몸이 비틀거리며 쓰러진 후에도 투석은 끊이지 않았다.
꿈틀거리며 마지막 몸부림을 하던 고대수의 몸은 점 점 돌무더기 속에 덮여갔다.
돌들은 마치 누군가가 정연하게 무덤을 쌓아 올린 듯 봉분처럼 봉긋하게 솟았다.

몇 번인가 들썩이던 돌무더기기가 마침내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뱃속 오장육부의 온갖 더러움을 꺼내어 토해내듯이 카악~하며 침을 뱉었다.
돌무덤 속에서 피투성이로 죽어가는 고대수에게 지난 42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흉물

1842년 경 한양변두리의 한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숙덕이고 있다.
“저기 이 씨 네 집에서 이상한 것이 태어났다네.”
“아이를 받던 이웃 노파가 기겁을 해 잠시 숨이 멎을 정도였다네”

“보통 아이들보다 너 댓 배는 큰 계집아이가 나왔대”
조선시대에는 너무 크거나 건장한 아이, 또는 기형아나 특이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은 신고하게 돼있었다.

대개는 나라나 가문에 액운을 가져 올 것이라 하여 몰래 유기하거나 죽여 암매장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어미에게서 아이를 빼앗아들었다. 산에라도 갖다 버리려는 것이다.
이미 여러 아이를 먼저 보낸 어미는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아비는 그런 아내의 눈물을 보며 차마 아이를 버리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소문을 들은 관아는 며칠 후 아이의 집을 찾았다.
용하다는 박수무당도 함께 대령했다.

“흐음~ 형태와 얼굴의 생김새를 보니 이 아이는 살려 두어야 이 나라에 도움이 되겠소이다. 언젠가 궁으로 들여보내 일을 시키면 오히려 대궐에 닥칠 액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박수무당이 돌팔인지, 용한 점쟁인지는 후일 밝혀지게 될 일이지만, 어쨌든 아이는 그 말 한마디에 가련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말 벗 하나만’

아이는 열 살이 되자 이미 마을의 어떤 어른들보다 키가 컸다. 골격도 힘깨나 쓴다는 남정네들보다 튼실해 보였다.
아이는 남들의 눈을 피해 집안일을 돕곤 했는데, 집안일이란 것이 어미의 일을 돕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거운 것을 나르고 구부린 것을 펴고 무너진 곳을 고치는 등, 힘을 써야 할 일이었는데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저것 좀 봐. 저것 좀. 저게 장사지 어디 여자야?”라며 수군댔던 것이다.

아이에게는 또래의 친구가 없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이 흘러갔고 열 대 여섯이 지나며 혼기가 왔어도 그녀의 집을 찾는 매파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는 남들보다 크고 얼굴이 못생겼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남자들이 나를 피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또래의 친구조차 없다는 것은 너무한 일이야. 왜 다들 나를 피한 것일까? 아~ 이야기라도 나눌 말 벗하나만 있었으면~’

이야기라도 나눌 말 동무하나가 이 외톨이 여인의 평생소원이었다.
그녀에게는 어떻게 배웠는지 모를 글(文)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책이라도 주어들고 돌아오면 몇 번씩이고 그 유일한 낙을 즐겼다.

세월은 흘러갔다.
외로움이 뼈 속가지 사무친 아이도 어느 덧 십대, 이십대를 지나 서른 줄에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피했고, 피해가면서 그녀를 힐끔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녀가 어느 저자거리에서 마주친 한 서양여성은 그녀의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 됐다.
길을 걷다 마주쳐 서로 이리저리 피하려다 방향이 겹치자 아마 미안하다고 한 것일 테지만 뭐라 뭐라 하면서 방긋 웃어주던 그 서양여자.

그녀의 관심은 그 서양여성의 커다란 체격에 있었다.
조선 사람에게선 볼 수 없는 엄청난 체격에 이상한(?) 얼굴생김새, 흉해보이는 금빛머리, 파란 눈동자. 치마를 입을 걸로 봐선 분명 여잔데.....

자신과 버금가는 큰 키에 당당한 체격을 가진 여성은 난생 처음 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하던 조선의 하급관리들은 그녀를 호의하는 듯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크고 이상하게 생긴 사람도 존중을 받는구나!

입궁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 그녀는 우연히 개화당이라는 것을 알았다.
개화당은 양반·중인·군인·평민·승려·상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한 근대적 자각운동으로 1874년부터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양반과 평민의 구분을 철폐하고 서얼을 차별치 않는 등의 신시대적 신분제도를 확립하고 여성도 남성처럼 존중받는 세상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녀는 이즈음 개화당에 입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갑신정변 후 대역 죄인이 된 고대수의 죄를 더 중하게 하기 위해 ‘옛날부터 개화당에 몸담았었다’고 덮어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37세 쯤 되자 관아에서 연락이 왔다.

궁중의 무수리로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집에 밭은 조금 하사한다는 것이었다.
나라님은 옛날 박수무당의 예언을 이제야 기억하는 것일까? 느닷없는 궁중 차출에 어머니는 불쌍한 딸이 너무 가슴 아파 우물에 뛰어들려 했다고 한다.

궁에 들어가게 된 계기에 대한 또 하나의 가설이다. 그녀의 큰 체격은 한양 일대에서 화제가 되곤 했는데 아마 개화파의 주역 김옥균도 소문 속의 그녀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김옥균은 개화당에 가입한 그녀의 사고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김옥균은 말이 없고 뭔가 고독과 우수 속에서 사회에 대한 막연한 울분이 가득해 보이는 고대수를 주목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로부터 옛날 박수무당이 저 아이가 궁으로 가야 나라의 횡액을 막는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이에 김옥균은 궁 안에 있던 측근을 통해 이 소문을 명성황후의 귀에 들어가게 했다. 측근이란 명성황후 전의 나인 송 씨를 말하는 것인데 명성황후는 금강산 봉우리 마다 호화로운 상을 차려놓고 굿을 하는 등 무당의 말을 지나치게 맹신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궁으로 들어간 그녀에게 붙여진 이름은 고대수(顧大嫂)다.

수호전에 나오는 장사의 이름과 발음이 같기도 했지만 그 뜻은 ‘돌보아주는 큰 아주머니’란 뜻이다.
이 이야기는 김옥균이 이미 고대수를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그녀를 궁 안의 첩자로 활용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입궁시켰다는 말이 된다.

의리냐 대의냐

궁 안에서도 고대수의 외톨이 신세는 변함없었다. 어린 궁녀들은 고대수가 남자 여럿이 달려들어도 능히 그들을 물리칠 것이라거나, 쌀 한가마 쯤은 옆구리에 끼고 성큼성큼 걸어 다닌다며 그녀를 놀려댔다.
고관대작에서 말단 무수리들까지 모두가 고대수를 경원시했다.

그러나 명성황후는 좀 특별했다.
“사람들이 너를 놀리며 네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너의 신중한 몸가짐과 과묵한 입을 어여삐 여긴다. 궁중이 얼마나 말들이 많은 곳이더냐.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보필하도록 해라.”
고대수의 큰 체격은 명성황후의 여자 보디가드로서도 적격이었다.

그녀가 궁 안에 있어야 액을 막는다는 무당의 말 또한 명성황후가 고대수를 아끼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됐다.
김옥균은 궁 안에서 스파이들이 접선하는 것처럼 은밀하게 고대수를 만났다.
김옥균은 고대수에 따뜻하게 대하는 한편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도 말 조차 건네지 않는 자신에게 이 전도 유망하고 잘 생긴 젊은 엘리트는 늘 관심과 자상함을 보여줬고 또 자신감을 주었다.

김옥균이 이야기하는 새 세상, 그들이 실현할 새 세상에서 자기가 맡게 될 보람찬 역할. 고대수는 그것을 기대했다.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하고 평생을 소외 속에 살아야 했던 고대수는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녀는 명성황후전의 움직임을 김옥균에게 낱낱이 보고했다. 고대수를 신뢰한 명성황후는 사소한 일까지도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무수리는 궁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기에 이 정보들은 고스란히 개화파의 핵심 김옥균에게 전달됐던 것이다.

그러나 고대수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청나라에 기대는 명성황후와 일본을 끌어들이려는 김옥균은 어차피 서로의 목숨을 노려야 하는 반대세력이었다.
김옥균은 고종황제를 모시고 민 씨 일족을 몰아내 근대화 된 새로운 조선을 만들고자했다.
그러자면 명성황후는 제거 일 순위다.

명성황후야말로 궁 안에서 유일하게 고대수에게 사랑과 신뢰를 베풀어 주는 고마운 존재 아닌가. ‘아~ 마마 소인을 용서하지 마시옵소서.’
1884년 가을이 되자 김옥균의 개화파가 본격적으로 거사를 준비했다.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졌다.

통명전(通明殿)의 폭발음

고대수가 입궁한지 5년이 지난 1884년 12월 4일 깊은 밤.
개화파는 준비 동안 준비해 온 쿠데타를 실행에 옮긴다.
“우리는 전하(고종)와 중전(명성황후 민씨)을 떨어뜨려 놓아야 하오. 그래서 중전을 따돌리고 민씨 일족을 모조리 처단한 후, 청나라와의 종속관계를 끊고 자주독립된 조선을 선포하는 것입니다.”(김옥균)

“수구파를 처단하고 신정부를 수립하면 문벌 타파, 사민평등, 재정의 일원화, 지조법(地租法) 개정, 경찰제 실시, 행정기구 개편이 수반되면서 조선은 서양 열강들 같은 근대국가의 반열로 가게 될 것입니다.”(박영효)
변란이 일어나 잠시 궁 밖의 모처로 피난해야 한다는 개화파의 주청을 왕비는 의심했다.
‘저것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게야’

그녀는 오히려 궁 중 수비병을 강화하며 꼼작도 하지 않으려 했다.
개화파로서는 왕과 왕비를 어떻게든 궁 밖으로 데려가 자신들의 수중에 확보(?)해야만 했다. 고종도 망설였다.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왕의 침소인 통명전에서 대궐을 뒤흔드는 폭발음이 들렸다.
왕과 왕비, 조정 중신들이 혼비백산했다.

“저것 보시옵소서. 전하. 보통 변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왕과 왕비는 황급히 피난길에 올랐다.
이때 궁 안의 어둠 속 어디선가 에서는 통명전에 폭약을 설치한 무수리 고대수가 이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김옥균은 왕비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런 상황을 대비해 치밀하게 준비해 놓은 히든카드였다. 이런 일에는 누구보다 왕비의 신임을 받던고 대수가 적격이었다.
이 통명전 폭파사건은 갑신정변 성공의 가장 변수 중 하나였다.

고대수는 이 일을 담대히 수행해 낸 정변의 숨은 주역이었던 것이다.
개화파는 다음날 우정국 축하연을 급습해 정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 정변은 청나라의 개입과 일본의 배신으로 3일 만에 평정된다. 물론 주역들은 모두 달아났다.

고대수는 돌무덤 속에서 죽어가면서 김옥균이 말하던 ‘새로운 세상’을 다시 한 번 꿈꿨다.
비록 3일 천하로 끝난 그 ‘새로운 세상’의 또 다른 주인은 바로 천대받던 무수리 고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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