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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루마니아 철권정치의 상징…엘레나 차우체스크
“나는 그대들의 따뜻한 품, 너희 어머니를 죽일 셈인가?”
2008년 05월 28일 (수) 11:17:44 박재호 pjaehool@nongupin.co.kr
  
 
 ▲ 펜타곤 다음으로 루마니아 대통령 궁은 흔히 차우체스크 궁으로 불리며 원성을 받아왔다. 이 건축을 강행하는 동안 루마니아 재정은 막대한 출혈을 입었다. 
 
‘로마제국의 후손’이라는 뜻의 국명을 가진 루마니아는 옛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불가리아등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남동유럽의 아름다운 나라다.

예로부터 투르크(터키)의 지배를 받던 몰다비아공국과 왈라키아공국이 1861년 합병하여 루마니아 공국으로 탄생했는데 1881년에 투르크로부터 독립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동유럽에 눈독을 들이던 소련의 영향으로 1948년에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됐다. 그러나 현대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체스크와 엘레나 차우체스크 부부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67년 권력을 잡아 1989년까지 이어진 차우체스크 부부의 철권독재정치는 루마니아 인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이멜다, 중국의 강청과 함께 현대세계의 3대 악녀 중 하나로 꼽히는 엘레나 차우체스크 이야기다.


위기의 부부

1988년이 되자 부부에게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철옹성 같아 보였던 소련이 붕괴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니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 같은 이웃 국가들의 탈 사회주의 현상이 나타나며 국제정세는 이 부부에게 한없이 불리해져만 가는 것이었다.

“이러다간 정말 큰 일 나겠어요. 국민들을 좀 더 철저히 통제해야 해요. 이러다간 와르르 무너진다니까요.”(엘레나)

지난해만 해도 부부는 자신들의 영화와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느꼈다.
니콜라에 차우체스크(1918. 1. 26~1989. 12. 25)가 루마니아의 권력을 잡은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부부에게는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이었다.

“멍청한 장관 놈들은 2천만 국민 모두가 우리의 열렬한 지지자인양 이야기하지만 그건 다 우리의 비위를 맞추려는 립싱크에 불과해. 우리 앞에서 손 흔들고 웃고 박수치고 있다 해서 순진하게 그걸 다 진심으로 믿으란 말인가...”(니콜라이)

그랬다.
국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통령부부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염증을 넘어 분노로, 분노를 넘어 증오로 변한지 한참 전의 일.

대통령부부만이 이런 사실을 아첨하는 간신들에 둘러 싸여 모르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 부부도 이젠 국민들의 마음이 전 같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여기저기서 폭동과 시위가 터지고 있다는 보고요. 으음~ 몸이나 좀 편해야 뛰어다니며 관계 장관들을 다그치지 원!”

그 즈음의 모든 실권은 아내 엘레나 차우체스크가 거머쥐고 있었다. 그러나 이 달콤하고 유혹적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절대 권력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는 정황을 엘레나는 일부러라도 모르는 체 하고 싶었다.

화학박사?

“화학박사? 웃기고 있네”
“쉿. 조용히 해. 이런 선술집 곳곳에 비밀경찰 끄나풀이 숨어 있다는 것 몰라? ”

“이런 젠장. 자네는 세상 돌아가는 걸 그렇게 몰라? 머지않아 사회주의는 종말을 고하고 말걸세. 우리나라도 곧 세상이 뒤 엎어질 일이 벌어지고 말거야.”

“세상이 뒤 엎어진다니... 이 사람 정말 큰일 날 사람이군. 그런 말을 계속한다면 자네와 술 더 못 마시겠네. 나 먼저 가네.”

“바보 같은 놈. 이보게. 영부인(엘레나)은 화학박사를 자칭하고 다닌다네. 그러나 예전부터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영부인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위를 딸 만한 공부를 했던 적이 없다는 거야. 이산화탄소의 원소기호도 모른대. 근데 화학박사는 무슨…”

“다들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것 아니겠나…자 이제 자리를 뜨세. 불안해서 원”

수도 부크레슈티의 선술집 곳곳에서는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밀경찰의 눈치를 살피느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대통령이나 영부인에 대한 비판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소련의 붕괴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변화인 것이다.

국민들의 불만은 대통령 부부에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빌어먹을 자식. 나디아를 건드리다니.”
나디아 코마네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체조 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체조계의 꽃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루마니아 국민들의 ‘국민요정’이었다.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나디아는 국민여동생이요, 민족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세상에 그런 쳐 죽일 놈이 어디 있나. 이젠 뭐든지 다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구나.”

국민들의 분노하는 것은 차우체스크 대통령 부부의 차남 ‘니크’때문이었다.
그는 나디아 코마네치를 강간하다시피 해서 자기 첩으로 들여앉혔다.

(나디아 코마네치는 몇 년 후 루마니아를 탈출 미국으로 망명, 미국 체조 국가대표 코치로 활동했다.)
그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전세 내 오케스트라에게 연주하게 하면서 모두 뒤 돌아서 등을 보이고 연주하라고 명령해 단원들에게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좀 더 어린 시절에는 어는 파티에서 애인을 알몸으로 벗겨 춤추게 하는 등 망나니 같은 짓거리를 멈추지 않았다.
민심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니콜라이

엘레나 차우체스크는 루마니아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부모 밑에서 가난하지만 비교적 평온하고 행복하게 자랐다.
십대 후반에는 방직공장에 들어가 직공으로 일했다.

1939년 얌전하고 예쁜 섬유공장 아가씨는 잘생기고 야심에 찬 청년 ‘니콜라이 차우체스크’를 만나게 된다.
“나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11 살 때 부쿠레슈티로 이주하자마자 구두 수선공 견습생이 됐지. 그런데 거기서 일을 배우다가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한 녀석을 만났어. 녀석은 귀족, 자본가, 배운 놈들 모두를 증오했지.

그 녀석이 소개한 ‘사회주의’는 내 마음을 흔들었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빈부와 귀천이 없는 노동자의 세상…참 멋지지 않아? 그래서 나는 공산당에 가입한 거야.”(니콜라이)

“하지만 니콜라이. 공산당은 불법이라고 하던데…괜찮을까요? 항상 조심해야 해요.”
니콜라이 차우체스크는 1932년 당시 불법이었던 루마니아 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열렬한 공산주의 활동으로 정부에 의해 요주의 선동가로 낙인찍혔다.
그는 1936년 체포돼 2년간 형무소에서 생활했다.

엘레나를 만나 연애에 불타던 니콜라이는 엘레나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에 불타올랐다.
그러나 엘레나와의 연애가 한창 무르익던 1940년 니콜라이는 다시 체포됐다.

엘레나는 니콜라이와 빨리 결혼하고 싶었지만 급기야 니콜라이가 1943년 강제수용소에 수용되며 둘의 결혼은 사실상 물 건너가고 말았다.

니콜라이는 수용소에서 ‘게오르게 게오르기 우데지’라는 공산주의 운동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게오르게를 평생의 스승처럼 여기게 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니콜라이를 비롯한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에게 기회가 왔다.
소련의 영향이 깊숙이 개입된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한 것이다.
니콜라이는 공산청년연합 서기관 직을 맡으며 몸이 부서져라하고 일했다.

니콜라이가 풀려나오고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엘레나와 니콜라이는 1946년 꿈에도 고대하던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니콜라이는 엘레나와 결혼하면서 당에서도 승승장구했다.
젊은 ‘차우체스크’ 부부에게 세상은 장밋빛으로 보였다.

권력에 오르다

1947년 소련을 등에 업은 루마니아 공산당은 정부를 전복하고 전권을 잡았다.

게오르게가 이끄는 루마니아 공산당에서 니콜라이는 요직을 두루 거쳤다.

당 중앙위원 ·국방차관 ·당 정치국원후보를 거쳐 정치국원이 됐다.

게오르게에게 바치는 니콜라이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1949년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국한 게오르게는 이제 갓 30살이 된 니콜라이 차우셰스쿠를 2인자처럼 신뢰했다. 따라서 주변의 시기도 많았다.

그러나 게오르게가 사망한 1965년 3월까지 니콜라이의 정적들은 이상하게도 암살과 섹스스캔들,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게오르게가 죽었을 때 이미 니콜라이를 대적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오르게가 죽자 니콜라이가 서기장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967년이 됐다.
“여보 당신이 드디어 루마니아의 최고 권력자가 됐어요.”

“고맙소. 당신의 헌신적인 도움 때문이었소.”
“강하고 잘사는 루마니아를 만들어 봐요.”

49세에 국가평의회 의장에 올라 루마니아의 국가원수가 된 차우체스크 부부의 각오는 비장했다.
‘이 나라 루마니아를 가장 강력한 나라로, 인민의 낙원으로 만들어야지.’
부부의 다짐이 영원했으면 좋았으련만…

1985년 차우체스크는 4선에 성공했다.
권력기반은 공고했고 루마니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점점 초심을 잃어가는 차우체스크 부부는 더 이상 사회주의 루마니아건설을 위해 헌신하고 투쟁했던 예전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권력의 정점에서 그들은 괴물로 변하고 있었다.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추악한 포식자들로…

그들만의 세상

권력에 오른 차우체스크 일가에게는 걸림돌이 없었다.
루마니아의 요직은 차츰 부부의 친인척들로 채워졌다.

한번은 말썽장이 차남 니크가 어떤 여자에게 빠져 결혼을 하려고 했다.
엘레나는 대통령궁 경비대의 책임자 중 한사람을 불렀다.

“잘 알겠지?”

“차질 없이 처리하겠습니다.”

“니크에게 공적인 임무를 맡겨 잠시 외국에 나갔다 오게 할 테니 잘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니크가 여행에서 돌아오자 니크의 책상에는 알몸으로 외간 남자와 엉켜있는 애인의 사진들이 올려져 있었다.
어떻게 했는지 경비대는 애인의 불륜사진을 만들어 왔다.

분노에 미쳐 길길이 날뛰던 니크는 애인을 찾아가 죽지않을 만큼 폭행을 휘두르고 돌아왔다.
“에잇. 빌어먹을 년. 저 그 여자랑 결혼 안할래요.”
그날 저녁 엘레나는 경비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고했어요. 일 처리 잘 했군. 보안은 철저히 유지해줘요.”
차우체스크 부부는 국가부채를 수치라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내놓은 정책은....

“경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인구가 필요해요. 왜 아이들을 안 낳으려 하는 거야? 이렇게 하도록 해요.”

엘레나의 대책은 이랬다.

“아이가 없는 부부들에게는 특별세를 부과하도록 해요. 아이 낳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만들어요.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부인들은 매달 의무적으로 부인과 검사를 받도록 해요.”

“일반 가정은 40와트 전구 하나만 써야 합니다. 아무리 추워도 난방은 절대로 안돼요.
버터와 계란, 빵은 철저한 배급제로 운용합니다.\`

국민들은 빡빡한 통제와 철제한 통제에 시달렸다.
대통령일가를 비난하는 글이나 삐라가 나돌았다.

“모든 타자기의 글자체를 특징이 있도록 하고 타자기마다 고유번호를 지정해요. 그러면 우리를 비난하는 자들을 좀 더 효과적으로 색출할 수 있겠지요.”

개인의 자유나 존엄은 철저히 짓밟혔다.
1989년 100억 달러나 되던 루마니아의 빚이 없어졌다.

“그것 봐요. 그 많던 외채를 다 갚았잖아요?”
엘레나는 우쭐했다.

그러나 그 공치사 한 마디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인민들이 궁핍에 시달려야 했던가.

비참한 동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국민들의 분노는 표면으로 표출되기 시작한다.
아무리 철저한 통제와 눈가림, 입막음에도 국민들은 알 것 다 알고 들을 것 다 듣고 있었다. 세상이 격변한 것이다.
차우체스크 대통령은 1971년 북한을 방문한 후로 북한 주민들에게 신격화되며 추앙받고 있는 김일성을 크게 부러워했다.

“우리 부부도 루마니아에서 그런 존재가 됩시다. 그(김일성)는 중국의 모택동보다도 더 신격화 돼 있소.”

그들 부부는 1989년까지 자신들의 신격화를 꾸준히 진행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즉 외채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내핍생활을 강요했던 그 10년 동안 식량, 난방, 가스, 전기, 생필품이 절대 부족했다.

미국의 펜타곤 건물에 이어 세상에서 두 번 째로 크다는 호화의 극치 ‘대통령 궁’에는 황금욕조에 밍크코트, 다이아가 박힌 구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는 소문이 국민들 사이에 퍼졌다. 1989년이 되자 국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1989년 12월 수도 부크레슈티와 인근 대도시에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다.

너무도 많은 수의 국민들이 동시에 들고 일어났으므로 군경은 아무런 방어수단이 되지 못했다. 12월 22일 비밀경찰과 군은 시위대에 항복했다.

“군마저 시위대에 굴복했다고...?”독재자 부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중앙위원회 건물은 시위대에 포위돼 있습니다. 어서 옥상으로 오르십시오. 탈출헬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일단 북한으로 피신해야겠다. 거기라면 우리를 받아줄 거야.”

부부는 일단 인근의 농가 근처 안가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한 농부의 신고로 임시정부군에 넘겨진 부부는 12월 25일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바로 그날 오후 6시 성난 군중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서로 총살을 집행하겠노라고 나선 사병들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니콜라이의 몸이 걸레처럼 난자됐다.
“나는 그대들의 어머니가 아니가? 자식들이 어미를 죽이려는가?”

엘레나의 절규에 돌아온 한 사병의 차가운 대답은
“당신은 우리의 어머니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들을 죽인 원수다.”
엘레나는 등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현대 루마니아의 반세기를 풍미한 독재자 부부는 그렇게 한 날 한 시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89년 12월 25일은 루마니아의 모든 인민에게 최악의 독재자가 사라진 축복의 성탄절이었고 부부에게는 최후의 심판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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