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투르크 황제의 어머니가 된 드라마틱한 인생

섬 처녀
‘마르티니크’ 섬.
북미와 남미대륙 사이, 도미니카의 수많은 섬들 가운데 하나인 이 섬은 일찍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됐다.
투명한 카리브 해의 바다 물과 찬란한 태양빛은 파도위에서 아름다운 포말로 부서지며 이 섬의 아름다움을 한껏 빛내주고 있었다.

“에메야 말로 이 아름다운 섬의 여신이라 할 수 있지.”
“그렇고말고 죠세핀도 아름다운 처녀이긴 하지만 에메에 비하면 여주인과 시녀처럼 격이 틀려.”
마을 주민들 이야기 속의 ‘죠세핀’은 후에 나폴레옹의 나내가 돼 프랑스 황후까지 등극하는 바로 그 ‘죠세핀 보나파르트’다.

남북길이 약 80km, 동서가 35km에 불과한 이 섬에서 웬만한 농장주들끼리는 서로 다 알고 지냈다.
에메 뒤부크와 조세핀의 아버지 역시 농장주였으며 에매와 죠세핀은 사촌지간이었다.
이 섬의 부자들은 한 결 같이 더 많은 돈을 벌어 자식들을 프랑스의 유명학교나 수도원에서 교육시켜 본토의 상류사회로 진출시키는 것이 꿈이었다.

“죠세핀 언젠가는 꼭 한 번 프랑스에 가고 싶어. 책으로만 보는 파리의 풍경이 눈앞에 선 한 것 같아. 여기처럼 좁아터진 섬이 아니라 끝없이, 끝없이 펼쳐진 화려한 도회지 풍경에 화려하게 치장한 근위대의 행렬, 귀부인들, 상인들, 온갖 신기한 물건들…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에메 나는 열다섯 살이 넘으면 꼭 프랑스로 가서 능력 있는 남자를 사로잡아 그곳의 귀부인이 될 테야. 귀부인이 되려면 귀족의 눈에 들어야 하고, 왕비가 되려면 왕을 사로잡아야해.” 이제 12살의 죠세핀…당돌한 걸까, 되바라진 걸까?

“죠세핀, 프랑스는 여기에서 바다로 7000km 나 떨어져 있대. 거기 가려면 도대체 얼마나 걸려야 하는 거야?”
이 섬 소녀들은 만났다 하면 본토 프랑스 얘기였다.
소녀들의 부푼 꿈은 대서양을 건너 막연한 동경의 땅, 프랑스에 닿아있었다.
1763년 생 동갑내기 말괄량이 소녀들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운명의 파도
섬을 먼저 떠난 것은 에메였다. 13세 때.
아버지는 그녀를 조신한 숙녀로 키우기 위해 북프랑스의 낭트에 있는 수도원에서 교육받게 했다. 에메와 죠세핀은 밤새 서로를 붙들고 헤어짐을 아쉬워했고 언젠가는 프랑스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다.
3년 후 에메는 친척의 편지로 16세의 죠세핀이 프랑스의 식민지 장관 ‘보아네르’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죠세핀 네 결혼식에도 가 볼 수 없다니...부디 행복하길 바랄께’

에메는 슬픔을 누르고 열심히 공부했다. 엄격한 수도원에서 8년간 교육받은 에메는 지적이고 조신한 처녀로 성장했다.
에메는 교육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를 탔다.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고 싶은 친구 죠세핀을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설레고 있었다.

배는 순풍을 받으며 미끄러지듯 흘러가 비스케이드 만까지 이르렀다.
객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던 에메는 사람의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이어 칼끼리 마찰하는 금속성 소리와 뭔가 타고 있는 냄새도 맡았다.

이 지역에서 악명 높은 해적선이 에메가 탄 배를 습격한 것이다.
배는 두어 시간 만에 해적들에게 점령됐다.
해적들은 선원들을 하나하나 끌어냈다.

“물건들은 갑판에 쌓아 놓고 남자들은 모두 웃통을 벗겨 일렬로 나열시켜라. 튼튼한 놈을 골라 노예로 팔 것이다”
기세등등한 선장의 눈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런데 저기 까만 망토를 뒤집어 쓴 여자는 뭐냐? 여자들은 좀 더 후한 값으로 팔 수 있다. 이리 데리고 와 얼굴을 벗겨 봐라.”
부하 하나가 에메를 끌고 와 베일을 벗겼다.
“아!” 선장은 낮은 탄식을 내뱉었다.

투박한 수도복에 쌓여 있던 에메가 얼굴을 드러내자 순간 배 위에는 환한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에메의 몸을 찬찬히 보던 선장은 이내 저 투박한 옷 속의 에메의 몸 역시 얼굴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것을 경험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선장은 강렬한 음욕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아냐, 이 여인은 나 따위가 손댈 정도 평범하지 않아. 이 여자를 황제에게 바쳐야겠다. 이 정도라면 황제는 어떤 보물보다도 흡족해 하실 거야. 이런 횡재를 하다니...너는 알라신이 나에게 주신 보물이야, 보물’
배는 보스포루스만의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지금의 터키 수도 이스탄불로, 당시 지중해 세계의 제왕이자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였다.
에메의 알 수 없는 인생 역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노예에서 총희(寵姬)로
에메는 오스만투르크 황제 ‘압둘 하미트’의 하렘(궁)에 첩으로 배속된다.
세계 각국에서 잡혀오거나 팔려온, 또는 바쳐진 미녀들 수 백 명이 오로지 황제의 눈에 들기만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에메의 눈에 그녀들은 단지 창녀나 하녀처럼 보였다.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절망과 한숨의 나날이 이어지던 중, 에메의 미모를 눈여겨보고 있던 내시 우두머리 ‘흑색각하’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당시 제국은 내시 우두머리 ‘백색각하’와 ‘흑색각하’가 궁중의 힘을 양분하고 있었다.
백색각하의 배후에는 ‘무스타파’ 왕자의 어머니 ‘시리아 비(妃)’가 있었고 흑색각하의 배후에는 황태자 ‘셀림’의 어머니 코카서스 비(妃)가 있었다.

코카서스 비는 기울어져 가는 국력을 한탄하며 나라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이미 이슬람 제국을 추월한 유럽의 과학과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려면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을 서구문물을 공부한 똑똑한 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얄미운 시리아 비에게서 황제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

“자네의 처지를 생각해 보게. 여기 온 이상 자네는 죽을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네. 코카서스 비께서는 자네의 미모와 지성을 눈여겨보고 계시지. 자네야 말로 늙은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여자라고 믿고 계시지. 평생 수많은 미녀들을 품으신 황제께서는 이제 기력도 많이 달려 웬만한 미모의 여성 아니면 흥미를 느끼지 못하신다네. 자네의 미래가 마음 하나에 달렸어.”

에메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어. 이것도 운명이겠지.’
그리고 마침내 황제의 잠자리에 들기로 마음먹었다.
한껏 치장한 에메의 몸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황제는 에메를 보자 젊은 날의 야성(?)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신혼의 젊은이 못지않은 괴력을 과시한 황제는 이듬해 에메에게서 ‘마흐무트’ 왕자를 보았다.

다시 위기 속으로
코카서스 비는 애매한 라이벌만 하나 더 만든 셈이다. 저 늙은 황제가 설마 아들을 낳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으랴.
한편 시리아 비는 자기 아들을 황제에 올리려고 황태자 셀림과 에메의 아들 마흐무트를 암살하려고 궁중의 친위대와 은밀히 내통하고 있었다.
1789년 26세의 에메는 과부가 됐다. 황제가 죽은 것이다.
황태자 셀림은 ‘셀림 3세’가 돼 황제의 자리를 이었다.

그러나 궁중 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리아 비가 곳곳에 은밀히 심어 놓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황제지만 힘이 없는 셀림 3세는 항상 불안했다.

불안 불안한 세월이 7년이 지난다. 영리한 코카서스 비가 죽자 시리아 비는 마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시리아 비가 권력을 잡으면 내 아들 마흐무트는 죽고 만다. 아들을 살리려면 황제가 실각하지 않도록 그를 도와야 해.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에메에게 희소식이 전해진다.
꿈에도 그리던 친구이자 사촌 죠세핀이 프랑스의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무소불위의 권력자 나폴레옹의 아내라면 전(全) 유럽에서 가장 힘이 센 여인이란 뜻! 에메는 황제를 설득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렵다 해도 어떻게 유럽의 이교도들에게 도움을 청하겠소. 알라께서 노하십니다.”
“자존심 따지실 때가 아닙니다. 프랑스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알라는 당신을 황제로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알라의 뜻일 것입니다.”
고민하던 셀림 3세는 나폴레옹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니 에메가 죠세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겠지.

죠세핀의 청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나폴레옹은 즉각 기마대를 파견했다.
파견 사령관 ‘세바스티안’ 장군을 만난 에메는 그에게 그리운 사촌의 소식을 묻고 또 물었다. 세바스티안 장군은 “황제를 사수해 드리겠노라”고 약속했다.

황제의 안전을 보장하는데다 그리운 죠세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으니 에메의 마음은 한 결 가벼워졌다.
그런데 변수가 생기고 만다.
“큰일 났습니다. 프랑스 기병대가 철수한답니다.”

“무슨 말이오. 장군이 우리를 지켜주기로 철석 같이 약속했는데...”
“세바스티안 장군의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산욕열로 죽었답니다. 자국의 전쟁이 아니라면 그 정도 일을 당하면 집에 가보는 것이 관례라 합니다.”

세바스티안은 병력을 이끌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시리아 비는 때를 놓이지 않았다. 친위대를 이끌고 순식간에 궁정을 장악했다. 황제와 에메의 아들 마흐무트는 감금됐다.

적당한 때가 되면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이 들을 죽일 것이다.
에메는 오랜만에 ‘기독교’의 하나님에게 기도했다.
‘주여~ 우리를 이 사자우리에서 꺼내주소서.’

지존의 어머니
시리아 비의 아들 무스타파는 황제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의 세상은 길지 못했다. 무스타파 황제와 어머니 시리아 비의 폭정이 세월이 지나면서 도를 넘어선 것이다.

황제가 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고 예전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던 시리아 비의 학정에도 반감은 더 해갔다.
바다 건너 불가리아의 자사 ‘파샤’가 대군을 이끌고 들어왔다.

그는 “무스타파를 타도하고 셀림 황제를 복귀시킨다.”고 외쳤다.
그는 무스타파 황제와 시리아 비를 축출하고 모자(母子)를 감금했다.
뜻은 이루었지만 더 큰 일이 발생했다.

셀림 3세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벌어져 셀림이 그만 사망한 것이다.
“그렇다고 폭정으로 내쳐진 무스타파를 다시 황제에 앉힐 수는 없지 않은가. 황제의 자리는 위대한 ‘압들 하미트’의 적자이신 ‘마흐무트’ 왕자님께서 이어야 한다.”
파샤 장군은 이렇게 외쳤다.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마흐무트 2세가 황제의 오르자 에메는 자연히 황제의 어머니가 되었다.
‘정신없는 세월이 벌써 20년이 지났네. 아무것도 모르던 얌전한 규수로 해적에 납치당해 이곳에 끌려온 것이 엊그제 일 같은데...‘

아들의 등극을 바라보는 에메의 가슴은 벅찬 감격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세계제국 오스만투르크 황제의 어머니 자리는 ‘지존’의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후
마흐무트 2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서구문물을 많이 받아들였다.
프랑스 문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며 이슬람문화와 서구 문물의 장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서구에서도 그를 표트르 대제의 화신으로 칭송했다.
위대한 모후의 영광을 빛내기 위한 시녀들이 하루 종일 에메를 시중했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죠세핀도 황비가 된다.
마르티니크 섬의 촌뜨기 섬 처녀 친구들이 세계 최강국 프랑스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황비와 황모가 된 것이다.
오스만투르크와 프랑스의 밀월의 세월이 계속됐다.

그러나 1809년 이 밀월은 끝나고 만다.
나폴레옹이 죠세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의 황녀 마리 루이즈와 재혼하자 격노한 에메는 프랑스와의 모든 우호관계를 단절한다.

1812년 프랑스가 러시아 원정을 떠나자 오스만투르크는 적국 러시아와의 전쟁을 멈춘다.
죠세핀을 버린 나폴레옹에 대한 복수였다.
1814년 3월 러시아·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 패한 나폴레옹은 귀양길에 오른다.
그해 5월 폐렴에 걸린 죠세핀이 51세로 세상을 떠난다.

3년후 인 1817년 죠세핀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난다.
에메의 아들 마흐무트 2세는 위대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황제)로 선정을 펼쳤다.
오스만제국은 그 후 5명의 황제를 더 배출한다.

에메와 죠세핀은 에메가 13살 때 프랑스로 떠난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에매의 일생, 에메와 죠세핀의 일생은 너무나 극적이어서 역사적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역사 속 여성이야기는 오늘 이야기를 끝으로 마감됩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짧은 지식과 거친 글로 독자들을 피곤하게 했던 것 아닌가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세계사 속 동서고금 파란만장 했던 여걸들의 이야기를 다뤘던 이 시리즈는 지난 2005년 초부터 지금까지 매주 여러분을 찾아 뵈었습니다.
그동안의 격려와 성원 감사드리며 독자님들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바라마지 않겠습니다.
큰 절로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