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공제품으로 ‘버섯 열풍’ 다시 한번

  
 
  
 
경기 평택시 대주농산 최봉수(42) 대표는 보통의 농사꾼과는 다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30대 후반 도시생활의 실패 또는 은퇴 이후의 노후를 위해 귀농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20대 중반의 창창한 나이에 도시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농업을 선택했다.

최 대표의 결정은 옳았다. 채워진 부분보다는 채워야할 부분이 많은 조건이지만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농사가 아니라 농업경영을 하겠다는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최 대표는 이미 농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마자 끊임없는 발전방향을 모색했고, 많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해왔다. 또 최근에는 버섯과 김치를 접목한 버섯김치로 가공식품 분야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우리나라 버섯시장은 과도기에 걸려있습니다. 그러나 버섯김치, 버섯육개장, 버섯장아찌, 등 버섯을 이용한 다양한 가공식품으로 소비자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버섯으로 만든 가공식품이 소비패턴을 변화시켜 다시 한번 버섯 열풍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9일 대주농산에서 만난 최봉수 대표의 첫 마디에는 탄탄한 체구와 인상만큼 듬직함이 묻어났다.

버섯열풍 이끄는 농사꾼
지난 9일 평택 대주농산에서 만난 최 대표는 버섯 가격 폭락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낮아지며 위기를 맞고 있는 버섯 농가가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을 수 있다는 신념을 내비쳤다.

그는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항암효과까지 갖고 있는 버섯의 효능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고 있는 이상 버섯산업은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안전한 무공해 먹을거리인 버섯의 가공식품을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원래 영화를 찍었던 예술인이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위암 선고를 받자 귀농을 결심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작은 농지에서 벼농사를 짓고 싶지는 않았다.

“그 때 생각났던 것이 강화도에 사는 아는 형님댁 버섯농사였습니다.”
버섯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14년전 최 대표는 미래밥상의 안전한 먹을거리로 부상할 느타리버섯 재배를 무턱대고 감행했다. 허나 초기에는 수확은커녕 오염으로 대부분의 버섯을 폐기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한다.

“엄청 고생하고 좌절하면서 버섯 재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을 때 1998년에 집중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집은 물론이고 마을전체가 물에 잠겨 한꺼번에 모든 것을 잃었었습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는 말처럼 최 대표는 위기는 기회로 살렸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최 대표는 일반화되지 않았던 병버섯 즉, 플라스틱 병에 담아 재배 방식을 과감히 도입했다. 또 병에 키우는 종균도 고체가 아니라 액체로 투입하는 액체종균기술 상용화에 성공했다.
최 대표는 “액체종균기술은 재배기간을 단축시킬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질 좋은 버섯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다”며 “대량생산의 핵심기술로 친구에게도 비법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은 결실을 나타났다. 50평의 작은 창고에서 시작한 대주농산은 지금은 1천300여평, 하루 2톤의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면서 인근 부대, 지역 주민, 식당 등 150여군데 이상의 직거래처도 확보했다. 연간 매출이 12억원이 넘어서면서 부농으로 인정받아 최 대표는 얼마전 한국을 이끌어갈 신지식인 1천인에 뽑히기도 했다.

구전마케팅과 직거래 적극 활용
최 대표는 단순히 나만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남도 잘 되어야 한다면서 대외적인 일을 하다 보니 스스로의 이익도 더욱 늘어난 대표적인 사례다.

우선 최 대표는 직거래를 통한 구전마케팅을 활용해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했다.
“처음 버섯을 재배해 들고 나갔을 때 그 기분을 아직 기억합니다. 한번 만 써달라고 매달렸던 첫 거래처가 지금은 10년이 넘는 단골로 있습니다. 또 세월이 흐르다보니 지금도 스스럼없이 믿고 거래를 합니다.”

최 대표는 입소문을 타고 주문량이 조금씩 늘어나자 포장재까지 그들의 입맛에 맞추었다. 대주농산의 250그램짜리 2봉 팽이버섯은 없어서 못 팔정도다. 일반 팽이는 100그램 포장재로 만들어져있다. 또한 인터넷 홈페이지는 직접적 구매보다는 농장을 알리는 홍보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농장 방문 고객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현재 대주농산의 버섯 판매는 소비자와의 직거래가 대부분이다. 인터넷이나 전화주문을 물론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구매하는 비중이 무려 90%에 이른다. 유통시장은 이미 한계에 닿았기 때문이다. 서울권의 버섯 업자들은 물량 공급 확대를 요청하지만 최 대표는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더욱 선호한다. 이는 유통마진도 상당한데다 품질 유지를 위해 욕심 부리지 않고 생산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 대표는 앞으로 홍보 전략의 하나로 소비자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농산물 영농주식회사 등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체험농장 등의 형태를 포함한 농산물영농주식회사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주변 지역 농가와 그룹화해서 생산과 유통의 성격을 결합한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최 대표는 한미 FTA 등으로 인한 농촌의 어려움과 관련“농업은 앞으로 4~5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면서“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죽기 살기로 노력해 농사로 돈을 벌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로 최 대표가 시행하고 있듯이 농가에서 농산물을 1차 생산물로만 여기지 말고 가공이나 제조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리 농업의 블루오션을 겨냥해야 합니다.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서 진짜 잘 만든 고가품을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1차 생산물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제조나 가공을 고민하는 2, 3차 산업으로의 농업을 고민해야 합니다.”


인터뷰 - 대주농산 최봉수 대표

“‘죽기살기’가 재산입니다”

대주농산 최봉수 대표는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농사꾼으로 변신한 까닭에 대해 근본적인 이유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이었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20대 중반 한창 사회생활을 할 나이에 직장을 그만뒀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에 만족합니다. 직장생활 때는 영화 조연출을 담당했는데 한계도 느껴지고 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지겹다는 생각과 인생이 참 느리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가 한 달처럼 빨리 지나가고 스스로를 경영할 수 있기 때문에 좋습니다. 회사생활 때는 스트레스로 고생했는데 지금은 낙천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농사하고 농업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먹고살기만 하는 농사가 아니라 농업을 하기 위해 과감히 도시생활을 버리고 전업농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최 대표의 이러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는지 아내 역시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최 대표 역시 자신이 제시한 희망을 믿고 따라준 아내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버섯시장이 무너지고, 태풍이 밀려와 집을 잃었어도 최 대표는 오직 농사로 인생의 승부를 내겠다는 뚝심이 오늘날을 만들었다고 한다.
“죽기살기로 하면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농사꾼들이 많이 힘들지만 언젠가 우리한테도 좋은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곳을 지나가면 들려서 차 한잔 마시고 버섯도 가져가서 먹으라는 그의 말에서 천상 농사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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