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했지만 황제를 능가하는 치적 세운 여걸

  
 
 ▲ 여태후는 절대권력을 장악해 사실상의 황제 노릇을 했다.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행동과 비정한 숙청을 주도했지만 한나라가 고대 중국을 넘어 세계 제국으로 성장하는데 발판 역할을 했다. 그녀는 타고난 정치적 감각과 명석한 판단, 즉각적인 실천력을 갖춘 어떤 제 
 
잔인한 어머니 ‘여태후’
기원전 202년, 유방(재위 기원전 202~195년)은 항우를 제압하고 전한(前漢)의 초대황제가 됐다. 그는 후계자로 마음 여린 아들 ‘혜제’보다는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비(妃) 척부인의 아들 ‘여의’를 태자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대신들의 만류와 태후의 눈물어린 읍소로 왕위는 여태후의 아들인 혜제가 잇게 되었다.(기원전 195년)
그런데 여태후는 뜻을 이뤘음에도 척부인과 그 아들을 그냥 두지 않았다.

우선 척부인을 궁녀들과 섞여 살게 하며 머리를 삭발해 버리고 하루 종일 방아를 찧는 중노동을 시킨다. 마음 착한 혜제는 자기 어머니를 만류했다. 어머니가 동생인 ‘유여의’를 죽이려고 호시탐탐 노린다는 것을 알고 늘 자기 곁에 두며 침식까지 같이 할 정도였으나 어느 날 새벽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니 ‘유여의’가 독약을 먹고 죽어있었다.

혜제는 그런 어머니에게 눈물로 호소했다. “여의야 어차피 죽었으나 작은 어머니만은 살려달라”고. 그러나 여태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척부인의 음부를 사정없이 짓밟아 버리고는 죄수들에게 그녀를 능욕하게 했다.
두 눈을 빼버리고 귀에 유황을 부어 귀머거리로 만든 후 혀도 못쓰게 해 벙어리로 만들었다. 손발까지 잘라 사지를 못 쓰게 하더니 오직 고통을 느끼는 감각만 남긴 후 그녀를 돼지우리 분뇨통에 쳐 넣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질투에 눈이 어두워졌다해도 악마가 아니고서야 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이었다.
“아아! 진정 우리 어머니가 한 짓이 맞단 말인가? 우리 어미가 어떻게 저렇게….”
이때부터 혜제는 어머니에게 완전히 질려 크게 상심하고는 모든 정사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평생을 주색잡기로 일관했다. 권력이고 재물이고 사람의 도리고 만사가 귀찮아졌다.

“바보 같은 놈. 저렇게 마음이 약하니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여태후는 모든 실권을 손에 쥐고 사실상 대(大) 한(漢)의 황제 노릇을 하게 됐다.

천하에 귀하신 상(相)
여태후(기원전 241~180년)는 진(秦)나라 때 지금의 산동성 단현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여치(呂雉)’라 했다. 아버지 여공(呂公)이 패현(沛縣)으로 이주하고 몇 해가 흘렀을 때 길가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여공은 평소 관상학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들 눈에는 거의 중늙은이가 다 돼가고 있는 영락없는 ‘날건달’ 하나가 그의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 세상에 저런 관상이 다 있다니 저것은 천하를 차지하고도 남을 만한 귀인의 상이 아닌가?’ 그 날건달이 바로 유방이었다.

그는 바로 유방에게 달려가 말했다. “당신의 형상은 하늘이 내린 귀인중의 귀인의 상입니다. 아무 말씀마시고 우리 딸을 드릴 테니 배필로 삼으십시오. 아무것도 없어도 되고 실컷 일만 부려먹어도 좋습니다.”
유방이라는 이 한심한 청춘에게는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동네에서 그저 술 마시고 빈둥대는 일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둘이 부부의 연을 맺은 후 몇 해가 지났을 때 마을에 이상한 행색의 노인이 들어왔다. 여치는 아들(후의 혜제)과 딸(후의 노원공주)을 데리고 밭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노인이 부인에게 와서는 말을 걸었다.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오. 이 아이들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인물들이 될 것이오.”

유방은 멀리 밭에서 웬 노인과 마누라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 밭으로 나갔다. 그런데 유방의 얼굴을 본 노인은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닌가!
“아! 세상에 이럴 수가…. 이것은 천자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상인데….” 노인의 말이었다.
‘옛날 우리 아버지도 저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 오늘 이 말들은 우연이 아니야.’
몇 날 며칠을 생각에 잠겨있던 여치가 남편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떨치고 나섰다. 개고기를 광주리에 이고 다니며 팔아 돈을 모으기 시작한 여치.

몇 해 동안 여치는 그렇게 남편의 ‘자본’을 모았다. 여치는 남편이 사람들을 사귀는데 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유방의 등을 떠밀어 작은 일이라도 관청의 일을 맡아볼 수 있도록 힘을 썼다. 어차피 남편은 농사일이라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 아닌가.
이 후 이상하게 유방의 주위에는 영웅, 호걸, 재사, 문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는 일마다 운이 따랐고 성공이 그의 뒤를 쫓아다니는 듯했다.

분명히 주변 인물들 하나하나와 비교해 보면 유방이 그들보다 나을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그들은 유방을 주군처럼 모시기 시작했다. 패거리가 3000명쯤으로 늘었을 때 진나라에 진승과 오광이란 자들이 난을 일으켰고 남쪽의 항우라는 젊은 장수와 연합하여 이를 평정해 인정받기 시작했다.

천하를 얻은 유방
사람들은 점차 진나라의 가혹한 형벌과 엄격한 법률에 질리기 시작했고, 진시황이 죽은 후 그의 아들의 실정으로 진나라는 다시 붕괴돼 갔다.
유방과 항우는 세월이 지나며 천하를 양분하는 영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기원전 206년 항우가 황제로 추대 받던 의제(義帝)를 살해하자 유방은 이를 명분삼아 항우에게 선전포고를 한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천하쟁패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기원전 202년 항우가 유방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할 때까지 항우는 유방을 앞서 있었다. 한때 유방은 항우의 신하를 자청하며 갖은 비굴함을 보이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항우의 부하들은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항우를 채근했다.
이때 여치는 놀라운 담대함과 당찬 기백을 보여준다. “내가 항우의 진영에 잡혀있으며 그를 안심케 하겠습니다.” 그녀는 두 아이들과 함께 항우의 진영에 인질로 잡혀있기를 자청함으로써 결정적인 위기에서 유방을 구해냈다.

항우로 하여금 “처자식이 잡혀 있는데 지가 뭘 어쩌려구…”라는 방심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 항우가 마음을 먹고 유방을 죽였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황제를 능가하는 치적
한나라 초기 대부분의 치적은 여태후가 달성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개국공신들의 세력을 깨끗이 쓸어내 버림으로써 한나라라는 대제국의 기초를 놓았던 중요한 일을 해냈다.

그녀는 유방의 평생의 책사였던 한신과 호랑이 같던 장수 팽월을 제거했다. 모두 그녀의 계략에 의해서였다. 유방이 죽고 혜제가 왕위에 올라 정사에서 손을 놓아버리자 그녀의 솜씨는 더욱 빛을 발했다. 기원전 188년 혜제마저 죽고 소제(少帝)가 왕위를 이었다.

소제는 그녀가 죽인 척부인의 작은 아들이었다. 소제는 어느 날 자기 어머니를 죽인 여태후를 원망하는 말을 했다가 태후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상산왕 ‘유의’를 데려다가 황제 자리에 올렸다. 혜제와 소제 연간의 16년을 ‘호령일출태후의 시기’라고 하는데 이는 이 두황제의 시기에 사실상 여태후가 황제였음을 일컫는 말이다.
이 시기 여태후는 가혹한 형벌과 무거운 세금을 경감해 백성의 근심을 덜어주었고, 학문을 장려해 제자백가시대의 눈부신 성과를 이어나갔다.

효과적인 농업정책으로 식량생산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사마천은 그의 역사책 사기(史記)에서 여태후를 일컬어 <백성들을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했으며…(중략)…여성으로서 황제의 직권을 대행하여 모든 정치가 방안에서 이루어졌지만 천하가 태평하고 안락했다. 형벌을 가하는 일도 드물었으며 죄인도 드물었다. 백성들이 농사에 힘을 쓰니 의식(衣食)은 나날이 풍족해졌다>고 칭송하기에 이른다.
잔인한 여인의 눈부신 치적, 인격과 능력은 전혀 별개의 것인가?

그러나…
여태후는 죽을 때가 돼 뒷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국 유씨가 아닌 여씨의 천하를 만들려고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씨 문중의 측근들을 불러 “내가 죽으면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우리 여씨들을 없애려 할 것이니 빨리 군대를 장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원전 180년, 천하의 여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누우니 한낫 힘없는 할머니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62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그녀가 죽자 신하들은 여씨 일족을 모조리 주살했다. 여씨의 천하를 다시 유씨의 천하로 돌려놓은 것이다. 결국 여태후는 놀라운 기백과 억척스러움으로 남편을 보필해 황제 자리에 오르기까지 내조했고 황후에 오른 후 실질적 정권을 장악해 역대 어떤 황제보다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며, 한나라가 세계제국으로 도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소한 질투와 지독한 성취욕, 권력에 대한 탐욕 때문에 덕을 잃고 말았고 자기 일족은 그로 인해 멸문의 화를 입게 됐던 것이다.
전한시대 초기 최고의 여걸은 사후 자기가문의 비참한 몰락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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