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뜨는 고개너머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한잔에 시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이는 조선 시대에 큰 삿갓을 쓰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전국을 떠돌며 유랑걸식한 방랑시인 김삿갓의 일생을 노래한 가사 내용이다. 김삿갓은 순조 7년(1807)년 3월13일,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고 본관이 안동 김씨이며, 名은 병연(炳淵)이다. 한국사에서 대표적인 방랑기인으로 알려진 그의 일생을 동양철학인 사주나, 성명학으로 풀어본다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 같고, 시대적인 배경과 가정환경에서 방랑벽이 기인(起因)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김삿갓이 결혼을 한 20세 되던 해에, 영월 관아에서 실시한 백일장에서의 시제(詩題)가 “가산 군수 정시(鄭蓍)의 충절을 현양하고, 선천방어사였던 김익순(金益淳)의 죄를 규탄하라.”였다. 그는 김익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백번을 죽여도 아깝지 않은 만고의 비겁자’라고 경멸하는 시를 쓰서 장원을 차지하였고, 이 사실을 안 어머니가 “바로 그 죄인 김익순이 네 할아버지였다”고 가문이 몰락한 내력을 이야기해 주었다.

김삿갓이 방랑생활을 한 이유라면, 할아버지를 욕보인 죄인이라는 양심의 가책으로 속죄를 위해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어 갓을 쓰고 산천을 유랑한 것이다. 이것이 그에게 최선의 방법이었을 지도 모르나, 다른 입장에서 보면 조상에게 지은 죄를 속죄하는 마음으로 홀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고 아내를 사랑하며, 자식을 잘 기르고 교육을 시켜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현대사회에서도 자의든 타의든 한곳에 안주(安住)하지 못하고 직장을 자주 옮기거나, 또는 사업의 실패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노숙을 하는 사람들, 고등교육을 받고도 평생을 무의도식하며 사주팔자(四柱八字)타령만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대판 방랑자일 것이다.

성명학에서도 방랑자의 이름이 존재한다. 부르는 이름의 음운오행(音韻五行)이 조화롭게 분포되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치우칠 경우에는 사람의 성격이 외곬으로 변하며 융통성이 부족하고,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방랑자가 되기 쉽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적응을 잘하며 성격이 합리적이고 재운(財運)이 넉넉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이름 속에 재성(財星)이 조화롭게 나타난 경우를 볼 수 있다. 명리학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로 ‘재다신약(財多身弱)이요, 관다신형(官多身刑)이라!’ 했다.

‘재물이 많으면 몸이 약해지고, 관이 많으면 몸이 고달프다’는 것이니 이는 곧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다. 즉 재운이 좋다하여 부르는 이름에 정재(正財)와 편재(偏財)로만 구성이 되거나, 또는 관운(官運)이 좋다하여 정관(正官)과 편관(偏官)만으로 이루어진 이름도 방랑자가 되기 쉽고, 성(姓)과 이름이 재성(財星)과 관성(官星)으로만 구성되어도 욕망이 너무 강하여 한곳에 안주(安住)하지 못하고 방랑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방랑자라 하면 어딘가 무능력한 사람들로만 생각될 수 있으나 때로는 지치고 힘든 일상(日常)을 떠나 잠시 방랑자가 되어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을 것 이다. (문의 : 053-791-3166 이재박 원장)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