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천덕꾸러기가 된 늙은 남편을 일컫는 ‘젖은 낙엽’은 ‘황혼 이혼’과 함께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신조어다. 전통적 가부장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살던 여성들의 권리 찾기에서 파생된 이런 말들은 ‘은퇴 남편 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이라는 ‘병’까지 낳았다.

지난 14일 EBS TV 시사다큐멘터리 ‘젖은 낙엽-은퇴 남편 증후군’은 영국 BBC가 제작해 올 1월 방송한 것으로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경험하고 ‘단카이(團塊) 세대’의 대거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전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0년대 후반 일본은 베이비붐을 맞았다. 격렬한 학생운동과 급속한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일본 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이들은 ‘단카이세대’라고 불린다.

급속한 경제개발의 필요성과 가부장적 관습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직장을 위해 가정을 등한시했던 가부장적 남편들과 살며 평생을 참아왔던 일본 아내 중 남편의 정년퇴직을 전후해 ‘은퇴 남편 증후군’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은 것.

아직까지 대다수 단카이 세대에게 이혼은 금기 중 하나라서 황혼 이혼을 실제로 감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나 올 4월 개정된 이혼법이 실행에 들어가면 사정이 바뀔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젠 부인도 결혼기간 중 남편이 납입한 연금의 50%까지를 지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사카에 사는 데라카와 부인은 남편과 같은 집에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통과 피부발진에 시달리고, 남편과 자신의 옷을 한꺼번에 세탁하지도 못하며 수백 개의 봉제인형을 수집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데라카와 씨는 “남편이 집에 있다는 생각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고 심한 위통이 찾아왔다. 어떤 때는 먹은 걸 모두 다 토해내기도 했다. 남편하고 같은 방에 있기만 해도 몸이 아팠다”고 말했다. 또 도쿄 외각에 사는 아오야마 부인은 남편이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게 너무 막막해 퇴직을 미루도록 남편을 설득했으며, 엔카 가수에 빠져 스트레스를 푼다. 남편과는 한 달에 한 번만 만난다고 할 정도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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