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만해도 주말에는 가족들과 외식도 했습니다만 요즘은 주말이면 외식하자고 할까봐 일부러 밖에서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곤 합니다.”(대구 이곡동 회사원)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의식주 소비도 줄어드는 등 자린고비형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국민들은 생활패턴이 불황에 적응하기 위해 줄이고 또 줄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세계 경제의 한파로 우리나라 실물경제까지 영향을 받자 새 옷을 사입기 보다는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식생활 패턴도 외식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자와 인스턴트 식품 등 가공식품 구매를 줄이는 대신 식품재료를 사서 조리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또 소득이 감소하면서 큰 집이나 새 집으로 가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를 접고 있으며 자동차는 바꾸고 싶어도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소비 주체들이 소득 감소와 실업에 대한 공포로 지갑을 닫고, 기본적인 생활 소비마저 줄이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의식주가 이 정도로 동반 침체하는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처음 본다”며 “정부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소비가 줄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현재 국면이 경기 침체의 초입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한계계층이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악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9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시작된 미국발 금융 쓰나미가 그해 11월과 12월에 실물 경제를 덮치면서 의복 구입과 외식 그리고 주택 및 자동차 구입 등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줄고 있다.

의류 구입 ‘뚝` 옷, 가방, 신발판매 저조 경기불황

경기가 좋을 때 상승세를 타는 의류시장은 아예 꽁꽁 얼어붙었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가정용 직물 및 의복 판매액(불변가격 기준)은 2조8천29억 원으로 3조 원을 하회했다.

2005년 12월 직물, 의복 판매액은 3조3천763억 원, 2006년 12월 3조4천838억 원, 2007년 12월은 3조4천254억 원으로 최근 4년간 12월에 직물, 의복 판매액이 3조 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해가 유일하다.
통계청은 2005년 1월부터 관련 통계를 보유하고 있는데 직물, 의복 판매액은 통상 10월에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해 12월에 고점을 찍고 1월에 하강곡선을 그린다.

지난해의 경우 10월 2조7천428억 원, 11월 3조301억 원으로 오름세였지만 12월에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면서 2조8천29억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성수기는 커녕 전달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12월 직물, 의류 판매액의 지난해 같은 달 대비 증가율은 -18.2%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1월 이후 3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 주체들은 옷뿐 아니라 신발, 가방 구입도 큰 폭으로 줄였다. 작년 12월 신발, 가방 판매액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11.5%로 지난해 들어 월별로는 딱 한 달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2006년 이후 최저치다.

“외식은 무슨…시장으로 가자” 삼겹살, 자장면 등 10% 올라

지난 4분기 일반음식점업의 생산은 전년 동기보다 5.6% 감소했다. 이는 1999년 이후 최악의 감소율로, 카드사태 직후인 2004년 1분기의 -3.2%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이처럼 외식이 줄어든 것은 지난해 밀가루 등 원자재값을 포함해 전반적인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9월 이후에는 금융위기 여파로 실물경기가 급하게 가라앉은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4분기 외식 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4%나 상승, 외환위기의 여파가 휘몰아친 1998년 1분기(7.2%) 이후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품목별로 보면 삼겹살(10.9%), 자장면(13.2%), 피자(12.5%), 삼계탕(9.2%), 칼국수(9.9%) 등이 10% 안팎이나 올랐다.

두드러진 식생활 패턴의 변화는 가공식품 판매액이 작년 1분기부터 4분기 연속으로 감소한 반면 비가공식품은 4분기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이는 물가 변동의 영향을 제거한 불변지수 기준이다. 이들 통계는 2005년 이후 집계된 만큼 과거와 비교하기에는 적절치 않지만 가공식품 판매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작년 1분기가 처음이다.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가공식품 구입을 자제하는 대신 원재료에 해당하는 비가공식품을 사서 직접 조리해 먹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장 보러 가는 횟수도 줄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조사한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작년 12월 대형마트 및 백화점의 구매건수는 전년 같은 달에 비해 대형마트는 4.6%, 백화점은 0.6%가 각각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매건수 감소는 장 보러 다니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장 보는 횟수를 줄이면 그만큼 불필요한 구매도 적어지면서 알뜰 살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집이 최고 살림살이 구매도 미뤄

글로벌 금융위기는 안그래도 얼어붙었던 전국의 부동산 시장에 ‘설상가상’이 됐다. 작년 11월 전국의 아파트 거래량은 5만3천여건, 12월은 5만7천여건으로 2년전인 2006년 11월의 15만2천여건, 12월의 11만6천여건과 비교할 때 3분의 1~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울은 작년 11월 3천400여건, 12월에는 4천700여건이 거래되는데 그쳐 경기가 호황이던 2006년 11월의 2만8천여건과 비교하면 6분의 1~8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작년 12월에 1만여건만 거래돼 작년 4월의 2만2천여건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주택 수요가 줄면서 건설사들의 건축 수주도 급감했다. 작년 11월의 건축 수주는 전년 동월 대비 47.7%나 감소했다.

집 다음으로 목돈이 들어가는 자동차에 대해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구입을 미루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자동차가 안팔리고 있다. 현대차는 국내외 판매를 합해 17만9천44대로 전년 동기 대비 26.7% 줄었다. 국내에선 31.8%가 떨어졌고, 해외에선 25.3%가 줄었다.

이 같은 추세는 작년부터 이미 나타나 지난해 12월 자동차 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26.0%나 감소했고 출하도 25.7% 줄었다.

더구나 올 1월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작년 동월 대비 48.4% 감소한 18만9천360대에 그쳤다. 이는 파업에 따른 조업차질이 극심했던 2006년 7월 이후 최저치로, 자동차 업체들이 소비자의 구매 감소로 벼랑 끝에 몰렸음을 보여준다.

경기 침체는 가구나 컴퓨터 등 주요 살림살이 구입도 뒤로 미루게 했다. 지난해 12월 내구재 판매는 전년동월대비 14.5%나 감소, 준내구재(-13.7%)나 비내구재(-0.1%)에 비해 감소 폭이 컸다.
경기불황기에는 당장 필요한 음식이나 옷 등의 소비는 대폭 줄이지 못하지만 가구 등 한번 사면 오래 사용하는 내구재는 소비가 큰 폭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작년 11월부터 두드러져 내구재 소매판매액이 전년동월 대비 16.3%나 감소했다.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통신기기, 가전제품 판매도 부진하다. 작년 12월 반도체.부품 생산은 42.8%나 줄었고 휴대전화가 포함된 영상음향통신은 -24.8%, 컴퓨터는 -35.0%를 기록했다.
TV판매도 주요 업체의 경우 지난해 10월부터 5% 가량 감소했으며 냉장고나 세탁기 등 여타 가전제품들도 판매량이 늘지 않아 기업들이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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