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남편 죽음…좌절의 시간 보낸 그녀 “이제 인생목표는 아들의 행복 뿐”

  
 
  
 
‘안나의 집’에서 봉사해온 그녀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 칭송자자

아밈반종(36, 충북 청원군 낭성면 지산1리)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험난했다.
가뜩이나 짧은 겨울해는 이미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오후 5시가 갓 지난 무렵인데도 하늘에 별이 총총 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성면. 그곳으로 가려면 굽이굽이 좁은 산길을 통과해야 한다. 아밈반종씨는 태국사람이다.
2001년 한국에서 온 남편 지명균씨와 만나 이곳으로 오게 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승환이도 낳았다.

성실한 남편과 귀여운 아들, 이들 틈에서 그녀는 일상 속 행복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느끼게 됐다.
하지만 아이가 두 살이 되던 2002년,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공사장에 나가던 남편이 그만 추락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울기만 했어요. 왜 이런 일이 우리한테 일어나야 했는지…. 승환이는 아빠 얼굴도 기억 못하는데….”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마루에 같이 둘러앉은 시아주버니와 큰 동서의 눈도 덩달아 젖어 들어가는 것 같다. 벌써 4년이 지났다,
하지만 가족들의 어깨엔 아직 슬픔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감정이 복받치자 아직도 한국말이 서툰 아밈반종씨의 말은 더욱 어눌해져서 알아듣기가 힘들어진다.

아밈반종씨의 시형님 이용순씨(51)는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승환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조용히 말한다.
“남편이랑 제가 ‘승환이는 우리가 키울 테니까 니가 원하면 태국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그랬어요. 만리 타국에 와서 아버지도 없이 애를 키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아직 나이도 젊으니 좋은 사람 만나서 다시 결혼하라고…. 혼자 애 키우는 게 한국 사람도 힘든 일인데, 태국 사람이 한국에서 오죽하겠어요. 몇 번이나 얘길 해봤는데 안 가겠대요. 승환이 키울 수 있다고, 키우면서 열심히 살겠다고….”

시아주버니 내외의 마음 씀씀이도 그렇지만, 아밈반종씨가 한국에 있겠다고 한 것이 놀라웠다.
그녀는 왜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걸까.
“시아주버님, 형님께서 너무 사랑해 주셔서 힘든 줄 모르고 살아요. 승환이 고모님들도 너무 잘해 주시고. 오늘도 전화 와서 같이 울었어요. 승환이 아빠는 없지만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시댁 식구들 때문이에요.”
그녀의 말을 듣고 새삼 시아주버니 내외를 찬찬히 바라보게 됐다.

한눈에도 ‘천사표’ 얼굴이다. 이런 가족을 만난 것도 다 아밈반종씨의 복이라면 복이다. 그녀에게 가슴 아픈 기억일 테지만 태국에서의 삶, 그리고 남편과의 첫 만남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녀의 유일한 버팀목은 가족의 사랑이었다

“우리 집은 방콕에서 차로 8시간 가야 하는 시골 마을이에요. 거기서 벼농사를 짓지요. 집이 무척 가난해서 어렸을 적부터 방콕에 가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벌었어요. 한국 오기 전에는 홍콩에서도 8년 정도 일했구요. 그러다가 종교단체에 다니는 언니 소개로 남편이랑 처음 만나게 됐어요.”
“남편 첫인상은 어땠나요?”

“남편이요? 음. 처음에는….” 여기가지 말하다가 또 눈가가 촉촉해진다.
“처음 남편을 봤을 때 불쌍했어요. 평생 행복이란 걸 모르고 살아온 사람처럼 얼굴에 고생만 가득…. 가슴이 아팠어요. 나중에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한국에서 정말 고생 많이 하면서 살았더라고요. 나도 돈 벌러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남편은 나보다 훨씬 힘들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녀는 언제 남편 생각이 제일 많이 나느냐는 물음에 “승환이가 아빠 보고 싶다고 할 때”라고 대답했다.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에 무관심하던 승환이도 아빠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기울인다.
승환이의 시선은 벽에 걸려 있는 하나뿐인 가족사진을 향했다.

사진 속에는 아직 아기인 승환이, 그리고 엄마, 아빠가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승환이는 아빠를 쏙 빼닮았다.
아밈반종씨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큰아빠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승환이도 평소엔 큰아빠를 아빠라 부른단다.

좋은 엄마 되기가 인생의 최대 목표

승환이는 여느 여섯 살 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 밝고 명랑했다. 똘망거리는 눈매엔 장난기가 가득이다.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얼마나 사랑해 주고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였다.
아빠의 빈 자리를 메우고도 남을 큰 사랑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베풀고 또 베풀었다.
하지만 승환이의 큰어머니는 “우리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승환이 엄마가 워낙 착한 사람이라 고마울 따름”이라고만 한다. 인종도 언어도 국적도 다른 사람이 모여서, 이젠 드라마에서도 찾기 힘든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가족들은 너무 착해 성스러워 보일 정도다. 이런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아밈반종씨의 인생은 ‘아들을 잘 키워내는 것’으로 중심이 옮겨갔다. 먼저 간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승환이를 길러낼 작정이다.

“엄마가 되면 아이를 중심으로 삶을 꾸려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으로선 승환이를 잘 키우는 것, 그것만이 제 인생의 목적이 되었죠. 하늘에 있는 승환이 아빠한테, 그리고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시아주버님, 형님에게 보답하는 길은 그 것뿐이에요. 다만 제가 아직도 한국말을 잘 못해서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한글을 배울 작정입니다. 한국어교실에도 빠지지 않고 나가고 있어요.”

아밈반종씨는 시아주버님의 농사를 돕는 일, 한국어교실에 나가는 일 외에 꾸준히 해오는 일이 있다.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안나의 집’에 가서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일이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을 목욕시키고 빨래도 해드린다.
이 일을 너무나 즐겁고 성실하게 하다 보니 ‘안나의 집’ 측에서 아르바이트비를 주면서까지 계속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

그 덕분에 동네에서 ‘승환이 엄마’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한번이라도 그런 일을 해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실제로 며칠간 계속 이 일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봉사 활동하는 게 너무 즐겁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농림부 자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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