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胎)에서 새 세상이 나왔느니라”

  
 
  
 
◇극한의 생존
불쌍한 후엘룬 가족을 버린 것을 꾸짖던 노인을 창으로 찔러 죽인 사내는 후엘룬의 시위에 눈에 핏발을 세우고 씩씩거렸으나 그녀까지 죽이지는 못했다.
“먹고 살던지 죽던지 알게 뭐야. 우리도 다 굶어죽게 생겼는데 저 많은 입을 어떻게 책임지나?” 무정한 타이치우드 부족민은 여름야영지로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변변한 가축도 없던 후엘룬 가족은 그야말로 막막했다.
예수게이의 또 다른 아내 소치겔은 그야말로 무능력, 억척스런 맛이 전혀 없는 여자였으므로 어린 아이들의 생존은 오로지 후엘룬의 몫이었다. <몽골비사>의 기록에 따르면 ‘후엘룬은 모자를 단단히 눌러쓰고 치마를 바짝 여미고, 굶주린 자식들을 위해 밤낮으로 오논 강가를 오르내리면서 작은 열매와 풀뿌리 심지어 초원의 쥐까지 잡아 아이들에게 먹여야 했다. 뼈를 날카롭게 갈아 화살을 만들고 물고기를 잡기 위한 낚시 바늘을 만들었다. 이 가족은 개와 쥐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추위를 피했으며 초원에 죽어있는 썩은 짐승의 고기를 숱하게 먹어야했다’고 한다.

후엘룬과 그 가족들의 비참한 생활은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후엘룬은 이 밑바닥 생활 속에서도 무럭무럭 커가는 아이들을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형을 죽인 테무진
테무진은 배다른 큰 형 벡테르를 아주 싫어했다. 권위적이고 위계질서를 지나치게 강요하는 형 벡테르와 테무진은 숱하게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이러한 엄격한 위계질서는 초원의 유목민족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테무진이 벡테르를 살해한 비극적 사건은 아주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 테무진이 화살로 쏘아 잡은 종달새를 벡테르가 가져가 버린 것이다. 한번은 테무진이 잡은 물고기를 가로챈 적도 있다. 후엘룬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테무진에게 “형을 존경하고 그 말에 순종하라”고 늘 타일렀다.

그러나 비슷한 일이 벌어진 어느 날 오후, 테무진은 자기보다 활을 잘 쏘는 동생 카사르에게 활을 들고 초원에 앉아있는 벡테르의 앞으로 가서 활을 쏘라고 시켰다. 자신은 벡테르의 뒤로 가서 활을 쐈다. 벡테르는 이때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고 자신의 친동생 벨테구이만은 살려달라는 부탁하고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테무진, 즉 칭기스칸의 잔인한 일면을 볼 수 있는 어린 시절 이야기다.

이 소식을 들은 후엘룬은 울부짖었다.
“살인자! 살인자여! 내 자궁에서 나올 때 뜨거운 핏덩이를 쥐고 태어나더니 너는 자기 태를 뜯어 먹는 들개와 같은 놈이구나.”
“사나운 표범, 참지 못하는 사자, 산채로 잡아먹는 괴물이여! 이제 너희에게는 너희 그림자 외에는 친구도 동지도 없을 것이다.”
후엘룬은 죽어도 테무진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테무진은 살인자로서 도망자 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타이치우드 부족은 테무진을 붙잡아 목에 칼을 씌우고 그를 어느 가족의 노예로 넘겨주었다. 그러나 그 가족의 인정 많은 할아버지는 테무진이 탈출할 수 있도록 방조(?)했다.

◇납치된 며느리
테무진의 수년간의 노예시절은 후엘룬과 그 가족들에게도 고난의 시간이었다.
테무진은 탈출에 성공한 뒤 아버지의 친구인 케레이트 부족의 추장 ‘옹 칸’을 찾아갔다. 테무진의 재능을 눈여겨 본 옹 칸은 그에게 작은 단위의 부대를 맡겼다.
1178년 16세가 된 테무진은 어린시절 아버지가 정혼한 부르테를 데리러 갔다. 둘은 정혼한지 10여년이 지나서야 부부로서 한 천막에 묵을 수 있게 됐다.

후엘룬은 이때서야 비로소 아들을 용서할 수 있었다.
테무진은 독특한 매력과 리더십, 군사적 재능, 적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작전으로 부족끼리의 소규모 전쟁마다 연전연승을 이어가면서 ‘옹 칸’의 세력을 확장시켜 주었다. 마침내 옹 칸은 테무진을 자신의 양자로 삼고 케레이트 부족의 대장군으로 승격시켰다. 후엘룬 가족은 생활이 풀렸고 젊은 시절의 뼈를 깎는 고생을 벗어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케룰렌 강 상류의 초원지대에서 게르(천막)를 치고 잠을 자던 후엘룬은 어느 깜깜한 새벽녘에 사방을 진동하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원래 후엘룬이 시집가기로 했던 메르키트 부족(원래 약혼자 칠레두의 부족)의 군대가 그 옛날 후엘룬을 납치한 예수게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려 18년이 지나서 그의 아들 테무진에게 복수하러 온 것이다. 그들의 기습작전은 성공했고 테무진과 그 일행은 혼비백산 해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숲 속으로 피신했다.

그런데…… 아내 부르테가 보이지 않는다! 메르키트부족은 테무진의 아내를 납치해 가버렸다. 후엘룬은 자신이 납치돼 끌려갈 때의 그 공포와 칠레두와 헤어지면서 느꼈던 가슴 찢어지는 슬픔을 상기했다.
‘내 귀여운 며느리가 지금 그 고통을 당하고 있다.’ 후엘룬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받아들여라”
메르키트는 강력한 부족이었으나 테무진은 싸우기로 결심했다.
테무진은 수개월 동안 치밀한 전략을 준비해 기습작전을 완벽하게 성공했다. 테무진의 기병대는 메르키트의 야영지를 급습해 닥치는 대로 죽이고 약탈하며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때 테무진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부르테는 한 천막에서 미친 듯이 뛰쳐나와 테무진에게 달려왔다. 둘은 힘차게 끌어안고 감격의 포옹을 했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 테무진은 하루 종일 울부짖으며 미친 사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사랑하는 부르테가 임신을 한 것이다. 납치된 후 메르키트 부족의 어떤 자의 씨를 수태한 것이다. 후엘룬은 괴로움에 모든 것을 팽개친 테무진을 설득해야 했다.
부르테는 서러움과 수치심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테무진은 부르테를 한 천막에 감금하고 수치심을 자극하며 학대했다.

“왜 그때 자결하지 않았는가?” 잔뜩 취한 테무진이 부르테에게 소리 지를 때는 광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후엘룬은 아들의 마음을 다잡지 못하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르테를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 아이도 받아들여라. 너의 장자요, 나의 손자니라.”

후엘룬은 이때 좌절에 빠진 아들의 마음이 예전에 타이치우드 부족에게 버림받고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의 혹독함보다 훨씬 큰 고통임을 알 수 있었다.
후엘룬은 테무진을 설득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이야기했다.

“여인들이 무슨 힘이 있느냐? 그런 불행은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일이다. 네가 사랑한 부르테의 뱃속의 아이도 결국 초원의 위대한 신의 섭리다. 부르테의 자식이라면 결국 너의 자식이다.”
테무진은 마침내 부르테를 받아들였고 그 아이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했다. 그 아이는 훗날 현재 러시아 땅에 ‘킵착 칸국’을 세우는 ‘주치’ 황제가 된다.

◇정복자 꾸짖는 어머니
부르테 납치사건은 몽골사에서 중대한 사건이다. 아직 어렸던 테무진이 자포자기 해 폐인 같은 생활을 몇 개월만 더 계속했으면 그의 부대는 틀림없이 붕괴됐을 것이다.

후엘룬은 방황하는 아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았고 이것은 결국 세계사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전열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린 테무진은 그 후 주변의 부족들을 하나하나 연파하고 흡수하면서 마침내 전 몽골의 모든 부족을 통합하고 ‘칭기스칸’에 올랐다.(1206년)

후엘룬은 이후에도 세계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요 정복자인 아들을 꾸짖고 질타하고 설득하고 영감을 주면서 아들을 성장시켜 나갔다.

그녀는 칭기스칸을 몹시 혼 낸 어느 날 밤, 자신의 게르에서 숨을 거뒀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나이는 50대 후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