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정 수  농촌지도자전라북도연합회회장, 전라북도의회 의원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농산물, 세계 각국과 계속적인 FTA추진, 치솟아 오르기만하고 떨어질 줄 모르는 농자재가격 등 어느 것 하나 녹록함이 없는 지금 농업·농촌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녹색혁명, 백색혁명의 시기가 농업·농촌의 부흥기이며 가장 희망이 있었던 시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흘러 세상은 좋아졌지만 신자유주의의 무역기조에 밀려 오로지 경쟁만이 살 길이고 경쟁력을 강화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훈훈하고 넉넉했던 농촌의 정과 도시의 기성층이 찾는 촌스러움 마저 앗아가 버렸으니 하는 말이다.

과거 국가 1위 산업이었던 농업은 힘들고 고된 일을 하는 직업으로 바뀌었고, 힘든 일을 자식 대에 내리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생각으로 농촌은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어린아이의 뛰어노는 소리도 듣기 힘든 고령화된 사회, 고된 노동만이 있는 사회로 판단되고 있다. 농업·농촌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그동안의 성장위주정책과 농업보다는 2·3차 산업을 우대하는 정책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산업의 발전을 위해 희생당하기 일쑤인 농업은 우리나라 산업의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듯 수출위주의 경제성장 구조에서 대외수출의 유리한 조건을 맺기 위해 농업은 양보의 대상이었다. 그런 협상의 대가로 농업분야에 대한 농업보조 및 지원책을 약속하기는 했으나 수입농산물과의 경쟁력을 갖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값싼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가격 경쟁력이 줄어든 농가들이 고소득 작목으로 편중되고, 생산량은 늘어났지만 농산물의 소비는 되지 않는 기형적인 구조 또한 낳게 되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농업인들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성향에 맞추어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고, 지역의 특색을 살린 브랜드를 개발하는 등의 새로운 사업 개발로 소득향상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농업선진화에 대한 내용을 보면 또한번 우리의 힘을 한번 빼어 놓는다.
그동안의 우리나라 농업의 근간을 이루며 이끌어왔던 중소규모 가족농과 고령농업인에 대한 배려는 없이 오로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규모화 된 전업농과 기업농육성, 젊은 농업인 육성 등이 그것이다. 현재의 농업개선을 위한 진정한 고민 없이 외국의 특정사례만을 모델로 하여 거기에 끼워 맞추려는 일련의 행동들로서 그간의 우리 농업인들이 해왔던 노력을 한순간에 뒤엎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은 것 같은 농업분야가 아직까지 지지부진해 보이니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고, 이를 확 뜯어 고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한 수치로만 우리 농업을 외국의 농업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좀 더 우리 농업현실을 살피는 혜안이 필요할 것이다.

농업을 규모화하고 기업농을 육성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간척지처럼 수백만평의 농토가 조성되고, 물류여건이 갖춰지는 등 뛰어난 입지조건을 갖춘 지역에서는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농을 육성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경쟁력이란 미명하에 농업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안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농업의 수출산업화와 경쟁력 강화 등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자칫 의도와 다르게 영세농과의 경합할 경우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정부에서는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대규모 농어업회사의 생산품을 수출위주로 하고 수입대체 효과가 있는 작물만 국내에 팔 수 있게 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으나 대규모 농어업회사들이 수출이 여의치 않을 때 생산품을 썩히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걱정때문이다. 이렇게되면 정부는 이를 완전히 막을 수 없을 것이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대규모 농어업회사의 생산품이 국내 시장을 순식간에 잠식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영세농업인은 몰락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부분의 안전장치를 확실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농어업선진화란 어떤 것일까?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틀에 농업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시군의 여건에 맞는 사업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려주고, 새로운 투자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기반시설을 연계해 활용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며, 농업인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 사업을 강화하여 농업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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