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수  농촌지도자전라남도연합회 회장
요즘 우리 농업은 우루과이 라운드(UR)에서부터 WTO/DDA, 한미 FTA협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농업을 둘러싼 주변의 여건들이 날이 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매우 어렵게 전개되고 있다. 게다가 세계적인 금융위기까지 겹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상황은 가히 신호등의 빨간불에 비견할 만하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농업인들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농가소득이 2년 연속 감소했고, 농가부채 또한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고유가와 고환율,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농자재값 인상, 영농비 상승 등 농산업 생산비의 폭등으로 우리 농업인들의 신음소리 또한 더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도시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높아져 장보기가 무섭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금(金)배추, 금자, 금토마토 라고 야단법석이랴.

정부 발표를 보면 올해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는 큰 폭으로 올랐지만 농가판매가격지수는 오히려 하락했다고한다. 우리가 생산한 농산물은 싸게 팔리는데, 농산물시장에서의 식료품과 영농자재는 비싸게 팔리는 이상한 유통 현실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정부는 최근의 물가 오름세를 초래한 주범이 농산물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그래서 내놓는 대책이 재고량을 방출하고, 농협 계약재배 물량의 출하시기를 앞당기는 것이다. 또 직거래시장을 늘린다고 하지만 그 물량은 얼마나 될 것이며, 직거래시장에 참여하는 농업인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소비자의 장바구니 물가를 잡으면 다른 여타의 물가도 잡힐 것이라는 정부의 이상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의 이같은 행태가 한 두 해의 일은 아니지만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농업경제와 정부의 대책이 이렇다고 해서 일손을 놓고 포기할 것인가. 아니다. 누구나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하면 이겨내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장 먼저하지 않는가. 방법이 없다고 판단됐을 때 벌어지는 일은 치열한 고민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우리 농업인들은 과거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는 명제아래 국가 경제살리기에 최선을 다해 왔다. 특히 우리 농촌지도자들은 1962년 정부가 발표한 농촌진흥법 공포이후 지도기관과의 상호 유대결속으로 과학영농을 선도적으로 실천해 왔다. 그 결과, 먹을거리가 부족해서 기아에 허덕이고 ‘보리고개’에 시름했던 국민들을 1970년대 녹색혁명과 1980년대 백색혁명으로 구해낸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같은 역사의 주인공들이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주저앉으면 안되는 것이다.

친환경농업으로 소비자에게 신뢰를

그렇다면 어떻게 현실을 이겨내야 하는가? 농업인들 각자의 뼈를 깍는 인내와 고민으로 해결책을 내놓고 실천에 옮겨야한다. 그러한 농업인들의 고민의 한 켠에 필자는 ‘친환경’이라는 세 글자를 놓고자 한다.

필자는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껏 평생을 농업의 한 길만을 걸었다. 녹색혁명, 백색혁명이라는 역사의 주역이었다는 자부심도 크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러한 역사는 화학비료와 농약이 없었다면 어쩌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반성아닌 반성(?) 이랄까, 필자는 10년전 어느 때 ‘친환경’이라는 세 글자를 두고 고민한 끝에 “대세는 친환경이요, 유기농”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던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이고, 우리 농업인이 생산하는 농산물은 그런 것이라는 신뢰를 지켜낸다면, 소비자 선택에 있어 친환경 농산물은 값싼 수입농산물보다도,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생산한 농산물보다도 ‘우선’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10년전 수도작 2,000평과 밤 과수원 4,500평에 대해 저농약인증을 받았다. 2년전에는 감 과수원 2,000평에 저농약인증도 받았다. 내년부터는 저농약인증 제도가 없어지기 때문에 수도작도 무농약인증을 받으려 한다.

현재 기술적으로 제초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를 일체 쓰지 않고도 기존과 같은 생산성을 유지하는데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수준에 있다. 예컨대, 녹비작물인 자운영을 재배해서 화학비료를 대신하고, 유기질 비료만으로도 충분히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친환경농업만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새로 농사를 짓고자 하는 후계농업인(창업농)의 경우 일정한 수준의 생산성과 시장가격이 보장돼야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일률적으로 친환경이나 유기농을 적용하기는 힘들다. 다만, 어찌됐던 ‘저농약, 저비료’는 거부할 수 없는 소비자의 요구라는 점을 간과해서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저농약 농업은 우리 농업인들의 기본자세 여야 한다.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농업에서 빨리 탈피해서 무농약 인증으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신뢰를 얻어내야 한다. 물론 친환경이라고 해서 모두 고품질 농산물일 수는 없다. 고품질 생산기술에 의한 친환경 농산물로 승부수를 던져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해내야 한다.

우리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건강 식단을 책임진다는 각오로 명품 농산물생산에 전념해 나가면서, 고소득 작목으로 전환하는 등 농업인 스스로 보다 경쟁력을 갖춘 소득향상 방안을 찾는 노력을 통해 악화일로에 빠진 농가경제를 되살리고, 더불어 소득 증대에도 기여해 볼일이다. 친환경농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다시한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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