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농촌, 행복한 농촌생활 만들 것”

  
 
  
 
최근 농업환경이 변하면서 농업 생산과 농산물 가공·유통 등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여성농업인들이 농촌 사회의 주류 그룹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화 생활개선중앙회부회장은 “여성농업인들은 살기 좋은 우리 농업·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농업인 스스로 농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며 “생활개선회는 여성농업인들을 위해 농업 구조의 선진화와 농촌 경제의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23일 이미화 부회장을 만나 지금까지 여성농업인으로써 그녀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생활개선회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교사의 꿈 꾼 여대생
고향이 대구광역시 삼덕동인 이미화 부회장은 대구여고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국어국문과를 2년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국립대와 사립대의 등록금 차이가 엄청컸는데 큰오빠가 서울에서 사립대를 다니고 있었고, 작은오빠는 대구에서 국립대를 다니고 있던 터라 학비부담이 무척 컸다.

이 때문에 부모님은 더 이상 학업 뒷바라지가 힘들다고 했고, 이 부회장은 고민 끝에 학교를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치러 교육공무원이 됐다. 그녀는 아직도 그 때 학교를 더 다니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나름대로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성공할 자신이 있었어요. 자존심 때문에 ‘학교는 내가 벌어서 다니겠다’는 마음으로 휴학하고 사회에 뛰어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야간이라도 다녀서 졸업을 했었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하지만 그녀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딸이 대신 이뤄 그것으로도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그녀의 딸 차정희씨(29)는 현재 구미에서 일본어교사로 재직중이다.

힘겹게 이룬 결혼
그녀는 선배 언니의 주선으로 남편 차정현(56)씨를 만나 26살 때인 1979년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선배 언니의 학과 동기생이었어요. 처음 봤을 때부터 키도 크고 인물도 훤칠하게 잘 생겨 마음에 들었었어요.”

하지만 조건을 맞추다 보니 친정에서의 만류가 많았다. 남편이 장손에 형제도 7남매라 친정부모님이 시집가서 고생할까봐 많이 말렸지만 그녀는 결국 남편이 학생신분인 대학교 4학년때 결혼을 했다.

이 후 그녀는 내조만 하기 위해 5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기업체 회사원인 남편의 직장에 맞춰 서울에서 2년, 부산에서 4년, 창원에서 4년간 생활했다. 남편의 고향이자 시댁이 있는 마산시 진전면에서는 1989년부터 생활하고 있다.

“당시 시할아버지가 병환중이시라 빨리 손주며느리를 보고 싶어하셔서 시댁에서는 제가 아니라도 남편을 결혼시키려고 했었어요.”
그녀는 지금 생각하면 빨리 손주며느리를 보고싶어 하신 시할아버지 때문에 결혼하게 된 것 같다며 크게 웃었다.

뒤늦게 시작한 농촌생활
결혼하고는 남편을 따라 도시생활만 한 그녀는 지금 터를 잡은 마산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친청부모님이 염려했던 고생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시어른들이 다 돌아가시고 농촌생활에 접어들면서 많이 힘들었다.
“도시에서 자라고 도시에서만 생활해 온 저는 모내기부터 시작해 손으로 하는 농사일 모두 너무 힘들었어요. 친정부모님이 결혼을 만류하신 이유를 그제서야 알았죠.”

또 그때까지는 남편도 회사를 다니던 중이라 혼자 낯선 곳에 와서 사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녀는 차라리 젊었을 때부터 농촌생활을 했으면 덜 힘들어했겠지만 나이가 들어서 시골생활에 적응하기는 무척 힘들었다. 남편은 현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농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래도 농사일을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가면서 내 손으로 기른 쌀과 채소를 먹으면서 조금씩 보람을 느꼈어요.”
그녀는 지금 벼농사 3000평만 짓고 있다.

생활의 동반자 생활개선회
생활개선회활동은 지금 살고 있는 진전면에서 1989년에 처음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무슨 활동을 하는 단체인지도 모르고 가입했다고 한다.

“제가 가입했을 때 마산시 진전면 생활개선회는 이미 조직이 구성돼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남편 친구 부인이 소개해서 시작했는데 그 후 점점 제 생활에 또 하나의 동반자가 됐어요.”
그녀는 진전면 평회원에서 진전면회장, 마산시회장, 경상남도생활개선회장을 거쳐 지금은 생활개선중앙회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생활개선회중앙회 부회장은 처음에 권유가 들어왔을 땐 힘들어서 거절했었어요. 하지만 이왕 시작한 일, 저도 그렇고, 옆에서 보기에도 그렇고 정말 잘 한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열심히 뛸거에요.”

다재다능한 생활개선회원들
“우리 생활개선회원들은 1인 다역을 해내는 다재다능한 사람들입니다.”
생활개선회원들은 농사, 가정살림, 활동을 어떻게 다 해내느냐는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이 많지만 모두다 너무 열심히 잘 해낸다고 한다.

그녀는 또 생활개선회는 학습단체이기 때문에 배워서 주위에 보급하는 일로 타 단체에 귀감이 된다고 한다.
“앞으로도 학습단체라는 자부심을 갖고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에요. 그리고 생활개선회원을 비롯해 전국의 여성농업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면 좋겠어요.”

“농촌경제 활성화 이끌 것”
“여성의 시대라는 21세기를 살면서 농촌여성의 역할이 더욱 요구되고 있어요.”
최근 영농형태가 과거 벼농사 중심에서 채소, 과수, 화훼 등의 원예작물 중심으로 바뀌면서 농업 종사자 중 여성 비중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여성의 농작업 시간도 그 만큼 증가해 농촌경제에서 여성농업인의 역할이 크게 증대되고 있다.

농업부문에서도 우리 여성농업인 이러한 문제를 좀 더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10만 생활개선회원들에게 중앙회부회장으로써 “같이 합시다”라는 말이 민망하지 않도록 더 열심히 뛰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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