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는 그렇게 우리 곁에 털썩 내려앉았다. 수천 명, 수만 명, 아니 수백만에 달하는 애끓는 농심들의 피맺힌 절규는 우리 경제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섰다는 홍보나팔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자동차와 휴대전화기를 앞장세운 나팔수들이 개선행진곡을 연주할 때 축산농가와 감귤농가는 이 땅의 생업을 장사지내야 할 장송곡을 연주해야만 했다.

이제 협정의 세부내용이 공표되면 또 얼마나 많은 작목의 농업인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서야 할는지 알 수도 없다. 소떼를 선두로 돼지, 닭, 오리 등이 달려오고 콩을 비롯한 밭작물과 사과 같은 과수작물까지 그 끝이 어딘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

소위 대통령의 ‘합리적 쇠고기 개방’ 발언은 주무부서인 농림부가 이제껏 주장해왔던 원칙을 한순간에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결국은 미국이 그토록 원하는 뼈있는 쇠고기까지 전면개방으로 가는 순서를 약간 흩뜨려놓은 것뿐인데 농림부가 애써 변명할 필요가 있을까?

5개월 령의 송아지고기 생산을 위해 전혀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둬놓고 특수사료를 공급하는 그들의 사육방법이 선진축산기술이라 말할 수는 없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골분이나 혈분 따위의 동물성사료를 투여하여 미친 소를 만드는 기술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말이다. 국제정치는 힘에 의해 좌우된다. 개방이 어쩔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지킬 수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면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미친 쇠고기를 앞에 두고 미쳐가는 농업인들이 그저 세상을 움직이는 한낱 부속품이 아니다. 그깟 지원금 몇 푼으로 고향을 등지고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미친 소는 몽둥이질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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