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네 살짜리 손녀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었다.
풀밭으로 소가 지나가며 김이 솟는 똥을 떨어뜨리자 풀들이 외쳤다.

“이게 뭐야, 아이구 냄새!”
똥은 수줍은 듯 말했다.

“나야, 어제 소에게 먹힌 네 친구잖아.”
“내 친구라구? 어림없는 소리야, 네 모습이 어떤지 모르겠니?”
똥을 슬펐다.

그때 햇님이 속삭였다.
“슬퍼하지 마. 너는 소에게 힘을 주었거든.”

잠시 후 반짝이는 날개를 아름답게 퍼덕이며 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풀들은 반기며 소리쳤다.
“어서 와서 놀다 가요. 내게는 영롱한 이슬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풍뎅이는 쇠똥에게 가서 “저어, 내 아기를 좀 길러 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쇠똥은
“내가 어떻게? 나는 이슬도 맺힐 수 없는 똥일 뿐인걸요.”

“아니에요, 우리 아기는 당신 가슴의 따뜻함이 필요하답니다.”
풍뎅이는 쇠똥 속에다 알을 낳고는 날아갔다.
얼마후 따사로운 기운으로 알들은 깨어서 쇠똥을 먹으며 무럭 무럭 자라고, 똥이 거의 없어질 무렵 그들은 어린 풍뎅이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풀들이 말했다.

“어, 똥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갔지?”
그때 하늘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나 여기있어, 얘들아”

풀은 쇠똥이 되고 쇠똥은 풍뎅이가 되어 비사한 것이다. 동화를 들려주던 내가 오히려 전율을 느꼈다.
먹이의 순환은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생명현상이다. 풀과 소와 풍뎅이는 겉으로 서로 크게 다른 개체들이지만 실은 저 동화처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생명의 왕래이다. 생태계의 그물에 의존해 살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몸은 물고기와 해조류, 육류와 과일, 채소와 곡류들이 남긴 영양소의 결집이다.

그들이 아니면 내 삶은 없을 것이다. 나를 형성하는 모든 기관은 온갖 생명의 집합체이다. 음식물로서 내몸에 들고나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뜨고 지는 해와 달, 산천초목, 사계절 바뀌는 온갖 풍상, 한평생 내게 오고 갔던 삼라만상의 형태와 소리와 향기가 모두 다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았는가.

광막한 우주를 생각할 때 먼지만한 나를, 사실은 이 우주의 전 조재가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죽으면 분해되어 저들만상 속에 다시 스며들 터이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가르쳤던 선인들의 혜안에 고개를 숙이고 인간 이외의 존재를 가벼이 보던 내 터무니없는 자존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풀이 쇠똥이 되고 쇠똥이 풍뎅이가 되듯 종을 초월하여 순환하고 있는 생명이여, 원소여, 이 거대한 유기체의 순환 속에 살아 숨쉬는 내 작은 육체의 신비여, 어디까지가 너이고 어디서부터 나인가?


공 옥 자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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