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믿어주신 부모님…“더 늙기 전에 며느리 집에 다녀오세요”

  
 
  
 
충북 보은군에서 살고 있는 양계석(49세, 충북 보은군 회남면 금곡리)씨 댁은 청주에서 보은군 방향으로 ‘피반령’이라는 높은 고개를 지나 대청댐 물줄기가 흐르는 상류 지역에 위치한 곳이다.
양 씨 집은 지방 국도에서도 여러 번 갈라진 좁은 길을 따라 과수원과 초가집들이 둘러싼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양 씨의 집은 이웃 초가집들 사이에서도 그나마 누가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반듯한 하얀색 가건물이었다.

유독 양 씨의 집은 햇빛이 잘 드는 남향의 집. 동행 취재한 세계항공 한익환 대표는 기자에게 “오늘 처음으로 양 씨의 집에 가본다”며 “집 근처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벌써 몇 년전에 방문하곤 잘 모르겠다”고 말을 건넸다.
또 한 대표는 “양 씨는 국제 결혼을 하고 참으로 성실하게 사는 농업인이고 부인도 별 문제없이 잘 살기 때문에 본인이 자주 올 기회가 없어……”라며 “시간이 약속시간 보다 배 이상 지연돼 미안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한 대표 말대로 양 씨의 집을 찾기란 매우 어려웠다. 다행히 양 씨와 핸드폰으로 10번 이상 통화 후 주민들에게 물어물어 집을 찾게 됐다.
양 씨도 찾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미안한지 집 길목까지 내려와 우리를 맞았다.

양 씨의 집에 도착하자 한 노인분이 3살 밖이 아이를 앉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양 씨의 아버지 양재하(84세)씨와 3살 박이 딸 이었다. 현관문에서 양 씨의 어머니 박정숙(78세)씨와 부인 예금난(26세, 베트남)씨가 인사를 했다.
한 대표가 “딸 이름이 뭡니까! 아이를 낳고 사니 고맙다”고 말을 건네자 양 씨는 “승예이고 3살입니다. 그런데 8월에 돌아가야 하니깐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8월에 부인이 왜 돌아가야 합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양 씨는 “부인이 8월에 출산하기 때문에 아이 낳고 처갓집에 가야 합니다”라고 전했다.

8월부터는 복숭아, 사과 등을 수확하기 때문에 일손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이곳에서 부인의 몫(?)이 절대적이란 것이 그의 설명이다.

양 씨는 이곳에서 복숭아 2,000평, 사과 4,000평 등 약 6,000평의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기자가 결혼은 언제 했는지 말해달라고 묻자 양 씨의 부인 예금난 씨가 “2004년에 왔어요. 2003년에 베트남에서 결혼했어요”라고 대신 말했다.

한 대표는 “2003년에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4개월 후인 2004년에 들어왔다”며 “약 4개월 정도 걸렸고 그 당시 신부가 매우 빠르게 들어온 경우”라고 강조했다.

40대 중반에 결혼한 양 씨에게 결혼이 늦어진 이유를 묻자 “떠돌아 다녔다. 경기도 구리 등지에서 혼자 살다보니 결혼도 늦고……”라고 밝히고 “목수, 용접, 자동차, 발파 기술도 있지만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농사일을 누군가 해야 하기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양 씨는 처갓집에 가서 집을 만들어 주고 왔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부인과 함께 한 달여 동안 베트남 처갓집에 다녀온 양 씨는 벽돌로 벽을 세우고 두꺼운 양철 판으로 지붕을 만들어주는 등 인부 1명과 생활비, 인건비, 항공료 등 약 600여만 원을 지원했다고 한다.

양 씨는 “부인과 결혼 전에 처갓집에 방문하고 나서 집을 새롭게 만들어 주겠다고 부인과 약속했다”며 “이제야 부인과 약속을 지켰을 뿐이다. 살다보니 부인을 믿게 됐고 이 때문에 해준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부인 예금난 씨는 “너무 좋아요! 집을 새롭게 짓게 돼 남편에게 너무 고맙다”며 “한국에서 살아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머니 박정숙 씨는 “3년 동안 며느리와 살아보니 예의바르고 착하다”며 “우리 집안에 사람이 잘 들어와 고맙다”고 말했다.
또 박 씨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줘서 고맙지만 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났다”며 “아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제 아들 하나만 낳아주면 여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양재하 씨는 “우리 손녀딸을 포함해 외국인하고 결혼한 자녀들이 매우 걱정”이라며 “혹시 왕따를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할아버지로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양 씨는 “손녀딸이 눈에 아른거릴 정도로 하루가 즐겁다. 몸이 아프지만 손녀딸하고 운동 삼아 나들이도 가고 늘 함께 있어 기분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부인의 한글공부에 대해 양 씨는 “결혼하고 나서 한글을 직접 가르쳤고 결혼 후 6개월 정도 지나서 군청에서 한글책을 보내왔다”면서 “딸하고 부인하고 말하기가 아직은 비슷하지만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양 씨는 부모님이 더 늙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베트남에 갔다 올 계획이다. “부모님이 아내의 친정집인 베트남에 방문해야 진정으로 며느리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양 씨의 앞마당 옆길에서 산더덕을 손질하고 있던 한 할머니가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서울에서 기자가 오긴 온 거요! 아까 손님이 온다고 하던데”라고 말하고 “누가 이런 산골짜기에서 살겠어요! 외국 여자니깐 살지. 그 집 며느리 참 착하다”고 말을 이었다. 또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여기 살다가 이혼하고 가버린다”며 “이 집에 사는 며느리가 외국 여자고 맘이 고와서 사는 것 같다. 앞으로 이혼 안하고 살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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