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띠 해 범의 웅대한 기상이 여성농업인들께 전해지기를”

“범 잡은 것은 이제는 벌써 20년이 넘은 이야기 입니다. 경인년이 범띠 해 인데  제 이야기가 여성농업인신문 독자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운 이야기꺼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범을 잡아 세간의 화제를 모은 정규호(74) 회장은 ‘경인년(庚寅年)’ 새해가 남다르다.
일반사람들은 우리 밖에서만 봐도 무서운, 날쌔고 용맹한 범을 잡은 지 22년. 또 다시 ‘범띠 해’를 맞기 때문이다.

구랍 26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동 북문빌딩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난 정 회장은 자신이 범을 잡게 된 사연을 담담하게 설명해 나갔다.

정 회장이 범을 잡은 것은 1987년 7월 28일 여름. 당시 수마가 전국을 할퀴고 지나가 국민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때 7월말이라 수해가 있은 후에 덥기도 무지하게 더웠었지. 지방에 출장을 다녀오는데 라디오에서 서울대공원에서 범 한 마리가 탈출해 청계산쪽으로 달아났다는 뉴스가 들렸어. 수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원경찰서장이 전화가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이 온거야.”

그때 당시 정 회장은 수원지역에서는 이름난 엽도인(獵刀人)이었다고 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범 잡으러 숲이 앞을 가려 한 치도 안 보이는 곳에 갔으니 가족들도 난리가 난거야. 현장에 도착해보니 공중에 헬리콥터는 수시로 떴다 내렸다하고, 군경 2천명이 범을 잡으러 나왔던데 어이쿠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하고 감이 오더라고.”

정 회장은 우선 동료 한 명과 함께 진돗개를 범 우리에 넣고 냄새에 적응시켰다고 한다. 숲을 수색하고 내려오는 군경들은 땀에 찌들어 마치 패잔병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오후 5시 20분경 ‘보로닝 2연발 총에 OCB 산탄 2발을 장전하고 산에 오르기 5분 되지 않아서 진돗개는 무언가 감지를 한 듯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자꾸 파고들고, 땀을 비오듯이 흐르는 등 순간 순간 등골이 오싹 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범이 공격해 올지 모르니 무섭기도 하고, 여기 왜 왔냐 싶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들었어. 그렇다고 자존심상 다시 돌아가기도 싫었지. 20분쯤 능선을 따라 오르니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리는거야. 저 놈이 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까 자꾸 신경이 거슬렸지.”

정 회장은 옆의 동료도 그 소리가 신경쓰인다고 하자 범이 그렇게 작은 소리를 내겠냐며 10분정도 산을 더 올라갔다고 한다. 그 순간.

“저기 7미터 정도 앞 소나무 뒤에서 뭔가 웅크리고 있던 것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불빛 같은 것을 비추며 벌떡 일어나 나한테 달려들었던거야. ‘저놈이다’하고 외치면서 순간적으로 그 놈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겼는데 ‘땅 땅 땅 땅 땅‘ 다섯 발이 머리에 맞고 푹 고꾸라지더라고.”

그 범은 점프를 해서 정 회장에게 달려들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총을 쏴 범을 잡은 것이었다고 한다.

“3일을 굶었으니 범도 얼마나 배가 고팠겠어. 1미터 정도 뛰어서 달려들었는데 난 구사일생으로 살은거야. 범이 쓰러지고 혹시나 살았을까봐 계속 총을 겨누고 있었는데 이미 죽었더라고. 나중에 보니 산탄 9발중에 5발이 머리 급소에 맞고 뇌진탕으로 죽은거였어. 그렇게 3일동안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범을 잡은거였어.”

정 회장은 만약 한 발이 머리에 명중이 안되고 다른 부위를 맞았더라면 자신은 이미 갈기갈지 찢어져 범의 밥이 되었을 것 이라고 한다. 또 막상 쓰러진 범을 보니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이후 산을 내려와 벌떼같이 달려드는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쉬 세례를 받고 저녁에 집에 오니 아내가 원망 섞인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엽도인으로 범을 7미터 거리에서 한 방에 잡은 것은 세계적으로 드물꺼야.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찌보면 일생일대의 행운이기도 했지. 하지만 다시는 그런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는거야.”


끝으로 정 회장은 “범을 잡고 나니 우리에 갇혔던 동물이 풀려난 것처럼 해방된 기분이었다”며 “범을 통해 세간에 이름도 좀 알려졌는데 ‘범의 해’인 2010년에는 범의 웅대한 기상과 혼이 모든 여성농업인 독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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