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경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원장

2010년 경인년(庚寅年), 올해는 21세기 두 번째 10년을 준비하는 해이자 한 갑자만의 백호(白虎) 해이다. 백호의 해에 걸맞게 새해부터 전국적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예로부터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하여 모두가 즐거워했다. 그러나 풍년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쌀 소비가 급격히 줄어듦에 따라 이제는 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아돌아 고심하고 있고, 많은 쌀 재배농가들이 쌀값 하락과 함께 판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민족 주곡인 쌀을 자급하지 못하고 혼ㆍ분식 장려운동까지 벌리던 상황에서 우리 선배들이 이룩한 ‘녹색혁명’, ‘쌀의 자급자족’의 혁명적인 성과마저도 퇴색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쌀을 마음 놓고 먹게 된 것은 겨우 3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의 바탕은 이러한 쌀의 자급자족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세계는 식량부족에 따른 위기를 맞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곡물의 4분의 3, 식량곡물의 2분의 1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푸드 마일리지’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어 녹색성장을 위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선진국은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위하여 농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농업투자가 약한 많은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은 식량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 여건에서 우리 쌀 산업은 전 국민을 위한 공공재로서 생산기반의 유지를 통해 식량안보를 반드시 확보해야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시장경제 속에 노출된 소비재로서 국제 경쟁력과 소비시장을 형성해 나가야 하는 두 가지 측면에 직면에 있다.

최근에 이르러 쌀의 수급 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쌀 소비촉진을 위하여 새로운 쌀 가공식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시장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됨에 따라 민간업계의 투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는 쌀 산업의 발전과 쌀의 수급안정을 위하여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농촌진흥청에서는 품질과 밥맛이 최고인 밥쌀용 품종개발과 더불어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가공용 쌀의 가격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공목적별 최적화된 맞춤형 품종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소비시장의 다변화와 고령화, 저출산 등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에 대응하여 색, 향, 생리활성물질 등 품질특성과 건강기능성이 다양한 쌀의 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가공 원료 쌀의 공급가격을 최대로 낮출 수 있도록 초다수성 품종을 활용하고, 밀과 같이 가루가 쉽게 만들어지는 분상질의 쌀 품종 등을 개발함으로써 쌀 가공산업의 활성화를 통하여 새로운 소비영역을 창출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미 가공용도에 맞는 맞춤형 쌀의 산업화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양조전용 품종인 ‘설갱벼’을 이용한 전통주 생산의 산업화에 성공하여 원료곡의 계약재배를 통해 많은 농가에 안정적인 판로를 마련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우리에게 ‘햇반’이라는 상표로 잘 알려진 무균포장밥의 원료 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주안벼’를 가공전문업체와 공동으로 선발하여 이미 시제품을 생산하고 곧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성과들은 쌀의 용도 다양화와 대규모 소비시장의 형성을 통하여 쌀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수급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먹을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쌀밥 중심의 식생활문화는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자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켜온 원동력이다. 인간의 뇌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탄수화물의 섭취는 필수적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민족의 주요 탄수화물 급원은 쌀이었다. 쌀은 밀 등 다른 탄수화물 급원식품에 비하여 식품영양학적으로 우수하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주고 다이어트나 혈당·혈압조절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국민의 비만율이 3.4〜3.5%로 이웃 일본과 더불어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것도 쌀밥 위주의 식생활 덕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여러 이유로도 쌀은 주식인 밥으로 소비되는 게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밥 중심의 소비에는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잡곡을 섞은 쌀밥 중심의 식생활 정립을 통하여 밥 형태의 소비감소를 최소로 줄이는 한편 전체 쌀 소비의 6%에 지나지 않는 가공용 쌀의 소비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이제 일방적인 생산만이 최선이던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농업인의 소득증대는 물론 국민의 건강과 소비자, 업계 등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 맞춤형 쌀 시대가 도래하였다. 적절한 소비와 연계된 생산, 소비자와 산업체가 원하는 용도에 맞는 맞춤형 품종 개발과 더불어 다양한 식용ㆍ비식용 가공제품의 상품화 등이 쌀 소비 촉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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