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1명에게 ‘올인’… 저출산 악순환 거듭

 「#1. 영어 유치원 85만원, 영재교육원 27만원, 피아노 개인레슨 14만원, 미술학원 8만원, 가베(교육용 완구) 개인레슨 7만원, 학습지 3만5천원, 할인마트 문화센터 2만원.
총 146만5천원. 중소기업에 다니는 신호영(33)씨가 작년에 딸 서현이에게 들인 한 달 교육비다. 월급의 절반 정도를 딸 교육비에 쏟아넣은 것이다.
홑벌이인 그는 도저히 생활이 안돼 적금을 해지해야 했다.
서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사교육비는 다소 줄었지만 영어학원과 논술학원 등에 여전히 한달에 80만원은 들어간다.
신씨는 “결혼 초에는 아이 3명은 낳자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커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아이를 더 낳으면 제대로 교육시킬 수 없으니 그냥 한 명에게 집중해서 잘해주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2. 5세 아들을 둔 서준태(35) 씨도 최근 둘째를 가질까 고민하다 포기했다.
혼자 벌어서는 도저히 아이 두 명의 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들 것같다는 이유에서다.
서씨는 “맞벌이도 아니면서 아이 둘을 낳는 사람은 주변에서 `용감하다’고들 한다”면서 “실제 둘째를 낳으려면 아내도 일해야 할 것같은데 보모 비용 등을 감안하면 그냥 엄마가 한 명을 제대로 돌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씨나 서씨가 유별난 부모는 아니다.
자식들이 좀 더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혹시나 컸을 때 스펙(대입이나 취업을 위한 경력)에서 밀리지 않도록, 상황이 허락하는 한 모두 해주려는게 요즘 부모다.

그러다보니 자녀를 많이 둬 `아쉽게’ 키우기보다는 한 명만 낳아 `올인(다걸기)’하는게 낫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는 자녀 1명에 대한 투자비용을 과거보다 훨씬 늘려 여러 자녀를 갖는데 대한 두려움을 키우며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만든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4세만 돼도 사교육… 대졸까지 자녀 1명 교육비 1억

아이들이 4〜5세만 돼도 교육에 드는 비용이 월 수십만원은 가볍게 뛰어넘는다.
강남의 유명 영어 유치원은 월 100만원이 훌쩍 넘는 학원비에도 서두르지 않으면 입학할 수 없다.

꼭 영어 유치원이 아니더라도 사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려해도 한 달에 40만〜50만원은 들어가고, 여기에 학원 한 두 곳만 다녀도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100만원에 육박하기 일쑤다.
초등학교 1〜2학년도 영어 학원은 필수고 운동이나 예능 학원 1곳 정도는 빼놓지 않는다.

영어와 수학, 논술, 태권도 학원에 초등 2학년 아들을 보내고 있는 최현철(40) 씨는 “외아들이다보니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라도 학원에 많이 보낸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본격적인 `학원 순례‘에 들어가고 과외를 받거나 요즘 필수코스로까지 여겨지는 해외 어학연수까지 다녀오려면 교육비는 더욱 치솟는다.

대학 등록금도 사립대의 경우, 1년에 1천만원을 웃도는게 예사다.
자녀 1명을 교육시키는데 1억원 정도 든다는 조사결과도 나와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6년 6〜8월 전국 6천787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 이듬해 발표한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에 따르면, 자녀 1명을 대학 졸업때까지 교육시키는데 드는 비용(사교육ㆍ공교육 총괄)은 8천610만원에 이른다.

이 비용은 자녀가 재수없이 곧바로 대학에 입학하고 휴학없이 대학을 4년만에 졸업했을 때를 가정한 수치다.

연 5% 정도 교육비가 상승했다고 가정하면, 올해 기준으로는 9천967만원이다.
 `교육비 무서워서 아이를 못낳겠다’는 젊은 부부들의 하소연이 엄살이 아닌 셈이다.
  
■ “사교육 해결없인 저출산 해결없다”

정부도 자녀 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지난달 미래기획위원회의 제1차 저출산 대응 전략회의에서도 교육비 부담 완화는 주요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제시됐다.


당시 발표된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앞당기겠다는 계획도 취학 전 들어가는 보육료와 교육비를 줄여보자는 고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학교를 1년 빨리 들어가면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반론과 함께 초등학교는 오후 2시면 마쳐 오히려 부모의 보육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어 실제 이행 여부는 불투명하다.

취학 후 사교육비에 대한 대책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사실 사교육은 저출산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기 이전부터 있어왔던 해묵은 과제다. 그만큼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일각에서 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초.중.고 학생들의 학원비에 대해서도 소득공제를 해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취학전 아동의 학원비에 대해서만 소득공제를 해준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게 정부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양육비와 교육비이며, 그 중에서도 교육비가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면서 “교육비 부담을 덜어주지 않고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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