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함께한 생활개선회 “인생의 절반”

  
 
  
 
유난히 짧게 예측되는 봄을 시샘이라도 하듯 4월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 김용남(54) 감사를 만나기 위해 청양군 정산면 대박리로 향했다. 대박리는 특이한 이름만큼 많은 농지와 넉넉한 인심으로 소문난 곳이다.
시원한 웃음으로 기자를 반긴 김 감사는 첫 마디에서 “20년동안 함께 한 생활개선회가 자신 인생의 절반”이라고 할 만큼 생활개선회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다.
지난 16일 김 감사를 만나 그녀가 갖고 있는 생활개선회에 관한 생각과 한 가정의 며느리, 아내, 부모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찰떡궁합 부부’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대박리에서 농사와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용남 생활개선중앙회 감사는 지난 1975년 남편 강춘식(59)씨와 22살에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충남 공주가 고향인 그녀는 10살 무렵 청양 대박리로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녀는 학교 졸업 후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우연하게 같은 마을에 살던 남편을 만나 연애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당시 친정아버지께서 너무 엄하셔서 자유연애는 꿈도 못 꿨어요. 그런 아버지께서도 남편의 인정 많은 모습을 보고는 허락해주셨어요.”
결혼 후 차분하고 인정 많은 남편과 늘 도전적이고 쾌활한 그녀는 주위에서 찰떡궁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무슨 일을 하던 남편은 저랑 먼저 상의를 해요. 그렇게 서로 존중하는 생각 때문에 농사나 사업이나 아직 크게 실패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내내 잘 하라고 응원을 보낸 남편 강 씨는 누가 뭐래도 그녀의 든든한 동반자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청양고추 보다 매운 시집살이
그녀는 결혼 초기에 어린나이와 엄한 시부모님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결혼 초에는 시동생들이 어리고 모두 학생이어서 도시락도 많이 싸야했고, 살림과 농사를 다 잘 하기 힘들었어요.”
그녀는 시부모님들도 집에서 살림하고 농사짓는 것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정말 청양고추 보다 더 매운 시집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부모님이 5년간 서울의 시동생 집으로 가서 생활했을 때 비로소 결혼 초 겪었던 어려움은 끝이 났다고 한다.
“시부모님이 서울 시동생 집으로 가시고 난 후에 처음으로 두 다리를 쭉 펴고 잤어요. 그때부터 사회활동도 조금씩 시작했어요.”

욕심없는 나의 남편
본격적으로 나서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 그녀는 남모를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점집을 했으면 많은 돈을 벌지 않았을까 해요.”

농사 초기에는 율무농사로 올린 소득을 다른 곳에 땅을 매입해 이득을 봤으며 사업장 운영 등 시작해 하는 일 마다 이득을 봤다. 하지만 그녀는 욕심 없는 남편 때문에 때로는 속상했던 적도 있었다.

“남편은 안정적이고 착한 성격이라 욕심이 없었어요. 뭔가 소득이 되는 일을 더 해보려 해도 남편의 만류가 많았어요. 가끔은 남편하고 저하고 성격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 생활속에서도 과거에 오랜 시간 어려운 시절을 겪은 남편이라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작은 것에도 늘 감사하며 사는 모습을 그녀는 배웠다고 한다.

인생의 절반 ‘생활개선회’
결혼 후 평범하게 농사만 짓다가 농촌지도소의 선진농업에 관한 교육을 받으면서 생활개선회를 시작한 그녀는 그로부터 꼭 20년째인 지금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생활개선회는 살아가면서 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해요. 나머지 절반은 저와 가족이고요.”
그녀는 생활개선회가 아니었으면 농사짓고 밥하고 빨래하는 평범한 아낙네로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생활개선회는 이름 그대로 생활적인 면에서 살림에 많은 보탬이 됐고, 개인적으로는 일과 행복을 안겨줬어요.”

그녀는 생활개선회를 하면서 자신도 사회에서 무엇인가 활동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고 지금도 농업기술센터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올 해 생활개선회 감사에도 연임 돼 자신의 인생의 절반이라고 생각하는 생활개선회를 위해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다 힘들지만 우리 생활개선회도 자산이 부족해 늘 힘들어해요. 2년 임기동안 예산 기금 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싶어요.”

그녀는 앞으로 더 많은 회원들이 가입 해 농업 현장에서 한국 농업을 이끌어갈 여성농업인들이 많이 배출됐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다.

또 다른 모습 ‘여성CEO’
그녀는 현재 ‘청양식품’이라는 구기자와 맥문동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여성농업인 CEO다.
지난 1992년 농업기술센터의 농촌여성 일감갖기 운동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많은 성장을 한사업장에서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업이 아마 생활개선회, 당시 ‘생활개선회원부’ 최초의 일감갖기사업일거에요.”
그녀는 처음에는 귀찮아서 잘 안달여 먹는 구기자를 달여서 판매해보자는 생각에 마을회관에 사업장을 설치했고, 농업기술센터직원들과 생활개선회원들의 도움으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지금의 맛을 찾아냈다고 한다.

“사업장을 처음 시작할 때는 공간도 협소하고, 무엇보다 식품회사라 화장실, 수질검사 등 허가를 받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농업기술센터 소장님과 직원들의 격려와 질타도 많았고요.”

그녀는 수없이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힘을 주는 주위 사람들로 인해 버텨낼 수 있었고 또 인근의 작은 행사 하나 하나마다 홍보를 한 결과 건실한 사업장을 만들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앞으로 이런 일감갖기사업이 더 많이 활성화 돼 여성농업인들이 경제적인 안정을 찾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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