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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임덕규 부안여성농업인센터대표
녹색 꿈 안고 둥지 튼 지 16년,해야 할 일 신념 하나로 버텨
2007년 04월 25일 (수) 16:44:07 여성농업인 fmaster@nongupin.co.kr
  
 
  
 
임덕규 전북부안여성농업인센터대표 :
1998~2000년 전북여성농민회연합 정책부장, 2000~2003년 APWLD(아시아태평양 여성, 법, 개발에 관한 포럼) 여성농민분과위원회 위원, 2002~2004년 전북여성농민회연합 사무처장, 현 전국여성농업인 센터협의회 사무국장, 부안군 여성농민회 부회장.


산, 들, 바다 그리고 넉넉한 농민의 품성까지 배어있는 곳이니 그저 부지런하기만 하면 먹고살 수 있다는 땅 전북 부안.
이곳 부안에서 여성농업인센터를 운영하는 임덕규 대표 역시 도시 출신이다. 16년 전 ‘농민운동’을 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갖고 농촌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정작 ‘농민이 되는 법’을 배우며 행복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였다.

농사를 잠시 미뤄두고 여성 농업인과 아이를 위한 ‘여성농업인센터’ 개소로 지역의 신뢰를 얻어 “100% 순도 높은 농민이 되겠다”는 그의 노력은 개인의 삶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잊지 못한다. 20대 도시 여성이 농사를 짓겠다는데 선뜻 일자리를 건네 준 이곳 농민들이 없었다면 그는 ‘농민’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방과후 공부방, 여성농업인 상담센터, 이주여성 교육을 비롯해 도농교류사업까지 도맡고 있는 여성농업인센터의 업무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발전의 가능성을 믿기에 주 7일 근무하는 현재의 삶이 보람차기만 하다.


수배자로 찾아온 부안에서 농민으로 거듭나기

서울대 영문학과 86학번 임덕규 대표의 이력은 귀가 솔깃할 만큼 드라마틱하다. 1980년대 대학문화를 주도했던 ‘학생운동’은 얌전한 모범생을 ‘투사’로 변화시켰다. 대학 1학년 때 ‘건대항쟁’으로 구속되면서 그의 부모는 착하고 모범적인 딸이 학생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TV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이후 대학 3학년 때 총학생회 농민분과장을 맡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임 소장은 전대협 농민분과장을 지내면서 수배자의 명단에 올랐다.

학생운동을 하며 농촌에서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임 대표의 꿈은 농촌에서 진정한 농민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부안에 온 후 도시 엘리트의 눈이 아닌 농민의 눈으로 농촌을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면서 말 그대로 농민으로 변모해갔다.

‘독한 여자’ 별칭 달고 진짜 농사꾼으로 태어나

임 대표는 부안에 내려온 다음 해 같은 학교 동기생이었던 남편 유재흠 씨와 결혼한다. 그리고 부안에서 살기를 고집하는 임 대표의 뜻에 따라 남편은 고향 춘천이 아닌 이곳 부안에서 농사꾼의 삶을 시작했다.
“농사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무밭 12마지기(2,400평)를 혼자 다 메었다”는 임 대표. 이런 그를 보며 이웃들은 “정말 독하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를 차츰 ‘농민’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에만 살면서 벼의 해충까지 잡아먹는 ‘우렁이를 이용한 농법’에 부안의 80여 농가가 참가하고 있는데, 그의 남편 유씨는 재배에서 판매까지 행정적 업무를 모두 맡아서 처리한다. 때문에 새벽에도 불쑥 들이닥쳐 ‘급한 민원’을 전하는 이웃이 적지 않지만 그들의 방문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그에겐 농사꾼의 마음과 생활이 배어있다.
2002년 여성농업인센터를 시작하면서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아쉽다는 임 대표는 텃밭에서 고추, 참외, 상추,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해 센터 어린이집 아이들의 먹거리로 내놓는 것이 위안이다.

여성농업인 5명이 시작한 여성농업인센터

‘여성농업인센터’를 세우는 일은 그에게 또 지역 여성들에게는 매우 절실한 일이었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것이 농사의 특성인지라 엄마와 아빠가 논과 밭에 나가있는 동안 아이들을 봐줄 곳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부부,고부갈등의 어려움을 풀어놓을 상담기관 그리고 커뮤니티를 통한 정보교환과 교육 어느 것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임 대표는 좋아하는 ‘농사’도 잠시 미뤄두고 센터건립에 몰두했다. 2002년 4월 센터를 개설했는데 정작 지원은 9월부터 가능했다. 시설에 대한 지원은 없었기 때문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 등 세세한 모든 일이 그의 책임으로 돌아왔다.

“나를 비롯해 당시 센터 건립을 위해 참여했던 여성들 5명이 모두 빚을 얻어 돈을 마련하고, 정식 지원이 되기까지 자원봉사를 해야 했어요. 그러다보니 한두 명씩 손을 들고 나가더군요”라는 그의 얼굴에 아쉬움과 미안함이 잠시 스쳤다.

그래도 센터는 지역민들에게 점차 신뢰를 얻어갔다. 특히 근방 3개 면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어린이집, 방과후 교실은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낡은 건물에 첨단 시설도 없지만 아이들을 정성으로 보살피는 7명의 교사가 상근하고 있고, 읍내에서 영어교사를 초빙해 아이들 학습도 도와준다. 센터는 철저히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운영되어야 한다는 그의 고집이 통한 것일까. 지역주민들은 이제 센터를 ‘꼭 필요한 시설’로 꼽고 있다.

이 같은 평가에 대해 임 대표는 “지원비용은 적은데 자꾸 욕심을 내니 교사들을 위한 복지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고 답을 대신했다. 자부담 15%를 포함한 예산총액이 많지 않아 사업규모가 커질수록 오히려 재정이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이러니한 여성농업인센터의 현실이다. 그는 향후 센터를 지역 여성농업인들이 주축이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때까지는 다른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주민을 위한 공간’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아가며 끈기 있게 운영해나갈 것이다.


◆임덕규 대표 성공 2계명 지역민의 정서 배려
여성농업인센터가 개소한 지 이제 4년. 지금까지는 지역민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었다. 지역민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근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진짜 도움을 줄 수 있다.

최소 생활로 최대 봉사
센터 운영에 필요한 정부의 지원은 인건비가 전부다. 예산을 쪼개어 영어 강사를 초빙하고, 일요일에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로 최대한 봉사한다는 그의 좌우명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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