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내가 더 사랑해도 될까요?

“엄마 때문에 진짜 못 살아...”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들자식부터 챙길 때, 홀로 딸 예찬론을 펼친 우리엄마, 마음은 고맙지만 바쁘게 일하는데 그냥 전화하고, 보고싶다 찾아오고, 별 이유없이 귀찮게 구는 엄마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나도 결혼 5년차에 딸까지 둔 초보맘인데 엄마눈에는 아직도 품안의 자식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만날때마다 티격태격하고 말았지만 이제 나도 그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거 같다.

“난 너 때문에 사는디...?”  어린시절부터 말도 잘하고 똑 부러지던 우리딸 지숙이. 공부만 잘하는게 아니라 미스코리아 뺨치는 외모까지 무식하고 촌스러운 내속에서 어떻게 이런 예쁜 새끼가 나왔을까 싶다. 혼자 서울가서 대학 다니며 밥은 잘 챙겨 먹는지 걱정이 태산이지만...일해서 번 돈으로 용돈도 보내주고, 결혼한다고 남자도 데려오고, 벌써 애기엄마까지 되었다. 품안의 자식 같았던 우리 딸이 이제 내 품에서 떠나려나 보다.

“34년동안 미뤄왔던 그녀들의 생애 첫2박3일 데이트..”  가을이 깊어지는 어느날, 지숙은 연락도 없이 친정집으로 내려와 미뤄왔던 효녀 노릇을 시작하고...반갑기는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딸의 행동에 엄마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과연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췌장암 말기의 딸과 친정엄마와의 마지막 2박3일을 그린 영화 <친정엄마>의 자막이 올라갈 무렵 시사회장은 여기저기 숨죽인 흐느낌이 가득했다.
“엄마! 미안해!” “니가 뭐시가 미안혀!” “미안한 거 많지! 곱게 말하지 못해서! 엄마 외롭게 해서.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한 것도 미안하고, 맨날 전화 먼저 끊은 것도 미안해!” “아니여! 아니여! 아가! 그런 말 허지 말어! 너는 미안한 게 한 개도 없어! 엄마가 미안혀! 엄마가 미안혀! 엄마가 미안혀! 엄마가 미안혀! 엄마가 미안혀! 엄마가 미안혀!”

엄마와의 2박3일을 지내고 자신의 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모녀는 부둥켜안고 그동안 마음에 묻어두었던 말들을 꺼내놓고 꺼이꺼이 운다.

“하도 울어서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어요. 이불 속에서 서로 등을 대고 우는 대목에서는 눈물조차 안 나오더라구요.”

<친정엄마>로 열연한 ‘막내 국민엄마’ 김해숙씨는 아직 영화에서 헤어나지 못한 듯 그 장면을 얘기하면서 또다시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말하기 창피하지만, 역에서의 모녀이별 장면에서 감독의 ‘컷’ 사인이 떨어지고 30분 동안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어요. 머리카락까지 경련이 일 정도로 온몸이 찢어지는 듯했어요. 연기생활 30년에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일그러진 얼굴로 딸이 탄 기차를 따라가는 장면을 화면으로 보고 ‘저게 나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달리는 기차를 따라잡다니…. 이제 제 나이도 오십 중반이거든요.”

영화는 별난 것도, 특이한 것도 없는 전라도 고창의 모녀 이야기. 위로 첫아이를 잃은 엄마는 딸을 애지중지 기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콤플렉스가 있는 아비는 툭하면 아내를 두들겨 팬다. 딸이 행여 학교에서 기죽을까, 멍든 얼굴을 화장으로 덮고, 있는 옷 없는 옷 차려입고 가지만 딸은 창피하다며 문전에서 돌려보낸다. 하지만 서울 유학길에 오르는 딸한테 딸려 보낸 무거운 보따리에는 콩나물 500원어치를 집어오면서 400원 던져주고 남긴 동전들이 라면봉지에 한가득이다. 없는 집 딸을 며느리로 맞을 수 없다는 장래의 사부인 앞에서 “우리 딸을 어떻게 키웠는데… 결혼 얘기는 없던 일로 합시다”라고 당당히 말하지만 딸의 행복을 위해 다시 찾아가 무릎을 꿇는 엄마다. 하지만 딸은 “엄마 때문에 못 살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흔네살 엄마의 딸이기도 한데, 저의 모습과 소름 끼치게 겹치는 거예요. 엄마가 항상 제 옆에 계실 줄 알았던 거죠. 지금은 쓰러져 누워계세요. 꽃을 좋아하시는데 같이 가고 싶어도 쉽지 않아요. 부모는 물질적인 선물보다 짧게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김해숙씨의 엄마 연기는 벌써 12번째. 꽃처럼 예쁜 역을 건너뛰고 국민엄마로 매김된 게 아쉽지는 않을까? “저는 배우이지 여배우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 잘할 수 있는 배역이 엄마가 되었기는 하지만 배우로서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어요. 모성은 하나지만 엄마는 다 다르잖아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를 연기하고 싶어요. 이제는 ‘국민엄마’로서의 책임감까지 들어요.” 영화는 4월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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