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들이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한 일반적 방식은 도매시장의 중도매인들에게 위탁 판매를 의뢰하는 것이다. 물론 마케팅에 일찍 눈떠 전자상거래나, 대형유통매장 직거래를 통해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작목반 단위나 마을단위로 중도매인을 경유한 판매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에서 생산자와 판매 대행자간 신뢰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지난 3일 판매액을 조작해 돈을 가로챈 서울 가락시장 중도매인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는 소식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다.

농산물은 자연과의 끊임없는 교감과 농업인의 땀 흘린 정성이 어울려져 이룩한 성과다. 기계적 과정을 통해 자동으로 생산되는 공산품과는 그 격이 다르다. 그래서 상품이라기보다는 자식과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자식을 믿고 맡긴 어버이가 배신을 당했을 때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울시 농수산물관리공사에 반입 및 정산신고를 할 때 조작된 판매대금이 적힌 위장장부를 사용하고 실제 판매 내역이 기록된 장부는 폐기하는 수법으로 이들이 빼돌린 금액은 무려 1억여 원에 달했다니, 가히 강도가 따로 없다. 경찰이 철저한 수사로 이들을 응징하겠지만, 무너져버린 신뢰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수확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입장에서 불신의 눈초리로 다시 중도매인에게 생산물 판매를 의뢰할 수밖에 없는 농업인들은 이래저래 답답하기만 하다. 깨진 신뢰가 회복되려면 또 수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거쳐야겠지만, 관리·감독기관인 서울시 농수산물관리공사에서도 중도매인에 대한 시스템을 개선해 소 잃고 외양간고치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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