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노우 유 노우>,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아들은 아버지를 선망하고 경외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 원망하다 증오하기도 한다. 그런 아들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의 나이를 살게 된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하려 애쓰기도 하고, 이해시키려 들지 않았던 아버지를 상처로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끝은 대개 연민이다. 이런 연민을 품고 그리움으로 아버지를 되살리는, 같으면서도 너무나 다른 영화 두 편이 나란히 찾아왔다. 4일 개봉한 <아이 노우 유 노우>와 27일 개봉을 앞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다.

두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을 다뤘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많다. 우선 모두 영국 영화이고,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나온다. <트레인스포팅>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고 <풀 몬티>로 이름을 널리 알린 로버트 칼라일은 <아이 노우…>에서 아빠 찰리를 연기했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맘마미아> <싱글맨>에 출연한 콜린 퍼스는 <아버지를…>에서 아들 블레이크로 나왔다.

더욱 핵심적인 공통점은 실화라는 데 있다. <아이 노우…>는 이야기가 끝나고 고백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칩니다.’ 마약과 섹스에 찌든 영국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린 <휴먼 트래픽>으로 <트레인스포팅>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저스틴 케리건 감독이 추억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를…>은 아예 처음부터 ‘실화’라고 터놓는다. 소설가 블레이크 모리슨의 자전적 작품이 원작이다. 들머리에 주인공의 목소리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의 아버지는 실패하지도 않고, 패배하지도 않고, 심지어 죽지도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진짜 아버지를….”


<아이 노우 유 노우>


<아이 노우 유 노우>는 한편의 영화 안에 스릴러, 액션, 가족, 성장,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혼재된 독특한 영화이다. 비밀 첩보원이라는 찰리의 직업은 주변에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스파이의 임무를 수행 할 때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감이 넘친다. 어린 아들 제이미도 전문가 못지 않는 솜씨를 발휘하며 아빠의 첩보 파트너의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맛은 어딘지 남들과는 달라 보이는 부자(父子) 찰리와 제이미의 관계에 있다. 싱글 대디인 찰리는 제이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게 아들을 아끼고 있고, 어린 아들에게만은 항상 강하고 멋진 아빠의 모습만을 보이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자라기 마련이고, 또 어린 아들이 성장한 만큼 아버지의 크기가 작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다. 항상 보호받던 아들이 아빠를 지켜줄 만큼 자라고, 아들의 성장에 감격하면서도 영원히 강한 수퍼맨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 속에 엉켜진 감정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며, 많은 질문과 따뜻한 교훈을 전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주인공 ‘블레이크’는 나레이션을 통해 ‘우리의 아버지는 실패하지도 않고, 패배하지도 않고, 심지어 죽지도 않을 것 같았다.

당신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입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진짜 아버지를…’라고 묻는다. 이는 보는 이들에게 가슴을 울리는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이 영화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누구보다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부자 관계지만 영화 속에 그려진 ‘아서’와 ‘블레이크’는 이상적인 부자 관계는 아니다. 아들 ‘블레이크’에게 아버지 ‘아서’는 닮고 싶지 않은 인물이거니와 ‘증오’와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아버지를 이해 못하는 그는 빨리 어른이 되어 가족의 곁을 떠나고 싶을 뿐이다.


단 한번도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 없는 그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가 못마땅한 그는 대화의 단절과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괴팍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블레이크’는 기억하고 싶지 않던 과거를 생각하며, 아버지가 자신과 가족에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만의 애정 표현 방식과 사랑을 깨닫고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블레이크’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버지에 대한 존재와 그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메타포이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세상 누구보다 가깝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존재가 가족, 특히 끈끈한 애정으로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두 영화가 추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아이 노우…>의 11살 소년은 엄마 없이 아빠와 살지만 신난다. 영국의 위성사업과 관련한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스파이 아빠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긴장감 넘치고 불안하지만 아들은 “이번 임무를 마치고 큰돈을 받아 미국으로 가자”는 아빠를 신나게 돕는다. 문제는 임무를 마친 뒤다. 돈을 줄 사람은 어디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아빠가 빠진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나선 제이미는 곧 눈치채게 된다. 반전이다. 첩보물이었던 영화에, 아버지에 대한 감독의 연민이 고스란히 드러나면 당혹감마저 든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을 넘어 더 큰 산이어야 할 아버지의 초라한 모습, 영웅이었던 아버지의 실체를 본 11살 소년의 놀라움과 안타까움은, 소년 시절 불안하게 목격했던 아버지의 슬픈 뒷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첩보영화로는 물론, 멜로드라마로도 어설픈 구석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마지막 고백이 오래도록 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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